교지에 들어와 지금까지, 철거민, 노동문제 등을 둘러싼 투쟁사업장을 여러 곳 돌아다녔다. 아무 것도 몰랐던 첫 학기에 앞서 가는 이의 뒤를 따라 처음 두리반을 찾아갔고, 이후 다른 편집위원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 카페마리, 시간강사, 재능교육, 쌍용자동차, 그리고 포이동에 이르기까지 적지만 또 많은 곳들을 찾아갔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딴에는 혼자 여러 고민을 많이 했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말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태도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까, 내가 이곳을 찾아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따위의. 우물쭈물 문화제가 벌어지는 곳 옆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냥 서있었던 때부터 “서울대학교 교지관악에서 왔습니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기까지, 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을 하든, 죽든 혹은... 누구를 죽이든.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안다. 누구도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살던 세계는 무너졌고,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그 방법이야 다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는 같을 것이다. 무너진 그 지점이 바로 출발선이라는 것. 그 순간의 진실을 직시하고 껴안아야 비로소 이후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껴안은 진실은 아플 것이고, 가까스로 잡은 사랑은 그 무게에 휘청 흔들릴 것이며, 다시 시작된 일상은 여전히 외롭고 위태롭겠지만, 어쩌면 삶이란 원래 누구에게나 고된 것이다. 무겁고 고단한 삶을 등에 진 채 우리가 원하..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1. 생각이 많아질 때면 '집'이 아닌 '방'에 사는 것이 참 갑갑하게 느껴진다. 옥상 평상에 누워 바람을 쐬고 싶은 밤이다. 2. 종강하기 전 잡았던 방학일정은 내일로 끝이 난다. 남은 두달 가량의 시간이 짧고, 또 길다. 처음 타지에서의 홀로나는 생활을 시작한 친구의 외로움을 덜어주기엔 내 생활이 퍽퍽하고, 고향을 벗어나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인 아직 준비가 안된다. 그 아인 내게 너도 그때 그랬어? 하고 물었는데, 혼자 생활하는 외로움을 이제와 논하기엔 지나온, 그리고 남은 날들이 벅차서, 이미 수년전에나 생각했던 별거 아닌 문제를 너는 겨우 끙끙거리고 있구나, 하고 괜한 짜증이 일었던 내가 혐오스러웠다. 나와 그는 아마 끙끙거리면서도,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리라 생각하지만. 너는 어떨까. 내..
나는 원래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을수록 말을 못했다. 입안에 맴돌고 머릿속을 붕붕 떠다니는 글자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나가기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망설이고 삼키고 다시 떠올랐다 가라앉곤 해서, 첫운을 떼기가 참, 힘들었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몇년만에 당신을 만났다. 목소리는 그간에도 몇번 들어왔지만 그날 이후 직접 만나는 것은 정말 몇년 만이었다. 묻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그리고 함께 나누고픈 일상들도 많았다. 하지만 끝내 나는 당신에게 묻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제 와 다시 생각하는 거였다. 그때 그것을 물었더라면, 그때 그 말을 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 관계가, 그리고 그 상황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그 관계를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