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은 아니라고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아까 소월길에서 들었던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떻게 내 영혼에 생긴 상처를 어루만졌는지, 그 아리아를 들으며 멀리 보이던 도시의 불빛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순간, 어떻게 갑자기 지난 일 년 동안의 외로움이 물밀듯이 내게 밀려왔는지, 이별의 기억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었는지, 그 아리아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아리아가 끝나고 난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1. 하루에 한심이라는 생각을 대체 몇번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는 모 과목 두번째 중간고사 친 시험지를 받았는데 무려 90점에다가 두페이지에 걸쳐 good!이란 표시가 세번이나 되어있어서 기뻤지. 근데 문제는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내가 지금 과제 하나를 일주일 째 안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고,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 준비를 진짜 '한 글자도' 못해서 이기도 하고, 기말보고서 준비를 안해서 이기도하다. 사실 정작 내가 '한심'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학업이나 성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레이의 말마따마 "도망치지 않았다는 기억"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도망치는 것이고 무엇이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서도. 이미 한 번 도망쳤다는 기억..
1. 지난 일요일에 아, 이제 한숨 좀 돌릴 수 있으려나- 하고 일기를 남기겠다고 이 포스트를 쓰다가 말고 잠에 들었다. 시월 중순부터 계속됬던 '바쁨'이 거의 만성적인 상태가 되어서 새벽에 잠들어서, 수업가기 전에 간신히 일어나고, 수업 끝나고 쪽잠을 자다가, 과외가기 전에 다시 헐레벌떡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수면패턴이 엉망이라서, 또 그만큼 방이 어지러워졌다가 다시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챙겨먹는다. 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매일 할 일은 조금씩 쌓여간다. 그래도 이제는, 결국 이 꼬여있는 매듭을 풀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잠시 내려놓고 있다가도 하나하나 치워 나가다보면 생각외로 실마리를 찾는 것은 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 남아 있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