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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By.Heart

나비, 그리고

은유니 2014. 7. 25. 05:45
교지에 들어와 지금까지, 철거민, 노동문제 등을 둘러싼 투쟁사업장을 여러 곳 돌아다녔다. 아무 것도 몰랐던 첫 학기에 앞서 가는 이의 뒤를 따라 처음 두리반을 찾아갔고, 이후 다른 편집위원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 카페마리, 시간강사, 재능교육, 쌍용자동차, 그리고 포이동에 이르기까지 적지만 또 많은 곳들을 찾아갔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딴에는 혼자 여러 고민을 많이 했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말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태도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까, 내가 이곳을 찾아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따위의.

우물쭈물 문화제가 벌어지는 곳 옆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냥 서있었던 때부터 “서울대학교 교지관악에서 왔습니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기까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때부터 여전히 어색하지만 또 애써 괜찮은 척 하며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건네게 되기까지, 고민은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과연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힘은 무엇일까. 이렇게 적은 수의 사람들이, 혹은 내가,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결의 중심에는 ‘연대’라는 단어가 있었다. 여전히, 곳곳에 ‘현재진행형’인 장기투쟁사업장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연대를 필요로 하고, 그리고 또한 여전히 사람들은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함께 한다.

처음 교지에 들어와 홍대의 두리반을 찾았을 때, 강제 철거된 다른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공간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티어 서 있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때론 전기와 수도마저 끊겨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 맞는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힘에 부친 한 뼘의 공간이었으나, 두리반은 시와 음악과 문화제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그렇게 오래간 제 자리를 지켜나갔다. 시멘트가 다 드러나 있는 곳이 공연장이 되고, 다닥다닥 사람들이 둘러앉아 익숙한 사람들의 익숙한 노래를 듣는 모습은, 사진으로는 채 담기지 않을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두리반이 끝내 투쟁을 마치고 ‘칼국수 집’으로 새롭게 열렸다는 기사를 보며 환호로 쉽게 내뱉어지지 못한 저릿함을 느꼈었다. 그 곳을 철거된 폐허가 아닌 ‘두리반’으로 유지시켰던 것은, 그리고 마침내는 함께 둘러앉아 먹는 칼국수 집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두리반을 방문했던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이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기적과도 같았기에.

교지에 들어와 지금까지, 여러 장소와 여러 상황에서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밥을 매개로 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바랐던 것은 사실 그리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여러 문제의식과 무수히 많은 글자들을 나열했지만 결국은, 그 ‘함께 하는 것’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전달할 수 있었으면 했다. 길가에서 만난 그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짧은 기억들이 모여 빚어내는 건 그저 단순한 한 시간 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나와 그들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관계맺음’이었고, 연(緣)이었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힘없는 그 한 걸음이, 특별한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기엔 너무도 나약한 그 한 끼의 밥이, 끝내는 이와 같은 나비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한없이 나이브하고 철없는 그 믿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한 절실함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은 그 마음을 담아.

그래서 잘 전달이 되었는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혹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하고 바란다. 누군가 나와 같이,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공간이 생기기를, 몇 시간이고 폭설이 내리거나 몇 시간이고 폭우가 쏟아질 때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를, 그리고 그 만남과 만남이 이어져 무언가 특별한 기적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이천십삽년 봄



그간 많은 집회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집회는 지금껏 가보았던 어느 집회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었고,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건 그저 고요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광경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여태껏 보지 못한 수만의 사람들. 분명한 구호하나 외치지 않는 노래와 시낭송. 울음조차 사라진 자리. 그러다 터진 불빛 하나. 시청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가는, 걸어서 오분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점거하고 있던 경찰들 사이에서, 빗물은 뚝, 뚝, 떨어져내렸고 그들은 흩어지지 않았고, 길은 사라져 있었다. 몇 시간이고 폭우가 쏟아질 때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폭우 속에, 길 위에,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잔인했던 사월이 지금껏 지속되기를 상상한 적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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