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열 살 난 큰아들 녀석이 독감에 걸려 벌써 몇 사람 죽었다는 무서운 독감에 걸려 열이 사십 도를 오르내리는데도 춥다고 두꺼운 이불 뒤집어쓰고 턱을 덜덜덜덜거리며 말했다. "아버지, 제 은행 통장에 삼만 칠천 원 있어요. 제가 모은 전 재산이거든요. 오늘 밤에 저 죽고 나면, 그 돈 다 찾아서 양로원 할머니들께 전해 주세요. 오늘 신문에, 기름 떨어져서 찬방에서 잔다는 그 양로원에……." 조그만 녀석이 몸에 열이 나니 별 헛소리까지 다 한다고 나무라던 아내가, 어른들이 밥을 굶더라도 큰아들 녀석 보약 한 재 달여 먹여야겠다던 아내가 밤새 코를 훌쩍거리던 깊은 밤이었다. 철없이 던진 큰아들 녀석 말 한마디가 늦가을 단풍보다 더 빨갛게 더 노랗게 내 가슴을 물들이던 깊은 밤이었다. 「그리움 다 ..
눈을 크게 뜨고 이 세상을 감상하렴. 네가 좋아하는 푸른 젊은 날이 한 순간 한 순간씩 가고 있다. 네가 졸고 있는 그 순간에도, 네가 눈을 뜨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러니 민감해지렴. 아직은 습기가 없는 바람에 후두두 날리는 나뭇잎의 소리를 들어보렴. 울타리에 핀 장미의 그 수많은 가지가지 붉은 빛을 느껴보렴. 그들은 뻗어 오르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마치 너의 젊음처럼. 그러면 그 나뭇잎이 바람과 만나는 소리 속에서, 장미가 제 생명을 붉게 표현하는 그 속에서 너는 어쩌면 삶을 한 계단 오를 수도 있을 거야. 너는 무언가에 대해 질문을 가지게 될 것이고 질문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위녕, 좋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루 종일 공부해야하는 너는 어쩌면 이런 날씨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후배가 있으면 자기 자신에게 절실히 묻고 또 물어보라고 한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는가? 꼭 이것이어야 하겠는가? 하고. 열 번 물어서 열 번 다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는 사람만이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면 한다.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면 그 때부터는 거기에 모든 자존심을 걸라고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아무 일에나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오로지 소설에만 자존심 상해하면서 언제나 소설 곁에 있어야 한다. 비단 소설만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꿈이 다 그럴 것이다. 꿈이 있으면 늘 그 꿈을 잊지 말고 늘 그 꿈 곁으로 가고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설령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그 가까이에는 가 있을 것이기에. 자료 :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
그의 소설은 흥미롭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새로운 시각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그 특유의 재미있는 발상 등이 피부로 와닿을 만큼 짜릿하게 다가온달까. 그리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책' 이 그의 모든 책속에 '책'으로서 등장하고, 실제로 그 책이 '책'으로서 발간되기까지 했다는 게 묘한 반가움이 느껴진다. 내가 그의 소설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느낀 것은, 한권의 책 속에서 두가지 이야기를 같이 전개하며 그 두가지 이야기 사이에 연대를 이루다 마지막에 이르러 두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 독특한 전개방식. 특히나 에서 그랬고, 그리고 와 요즘 읽고있는 에서 그랬다. 와 에서도 역시. 처음엔 아무 감흥없이 번갈아 전개되는 두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두 이..
[로이X에드/새드] 푸른 달빛 TO. 은 '쏴아아-' 비가 내렸다. 어둠속을 밝히는 등을 지우려고 하는 듯, 비가 끝없이 내렸다. "저- 로이 이제 안갈꺼야?" 왠일인지 자신을 돕는다고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로이에게 에드가 슬쩍 물었다. 더구나 오늘밤은 비가 내렸다. 불꽃의 연금술사인 그에겐 아주 치명적인 타. 연금술을 쓸때만이지만, 그는 그런 일이 아니여도 비를 너무나 싫어하는것 같았다. 로이가 읽고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힘없이 에드를 바라보았다. "하가레노. 옛날부터 이렇게 살았나?" 그는 피곤한듯 눈을 껌벅였다. 에드는 윤기나는 자신의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는 머쩍은듯이 애꿏은 낡은 책만 바라보았다. "뭐- 알을 위해서라면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로이가 눈을 살짝 감으며 물었다. "가끔은 ..
정지용 /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삶이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자. ― 우리는 내일을 꿈꾸지만 내일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영광을 꿈꾸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 날을 꿈꾸지만 새 날은 이미 와있다. 우리는 전쟁에서 도망치지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우리는 부르는 소리를 듣지만 본심은 다른 곳에 있다. 미래의 희망을 품고 있지만 미래는 계획일 뿐 지혜를 꿈꾸지만 날마다 그것을 피하고 있다. 구원의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구원은 이미 우리의 손안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두려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中 Ca..
세계.. 란 단어가 있다. ― 「..있잖아, 미카코. 난 말이야..」 「난 말이야, 노보루군..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거든. 예를 들면 말이야..」 「예를들면, 여름을 동반한 시원스런 비라든가, 가을바람의 내음이라든가,」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라든가, 봄 흙의 부드러움이라든가, 한밤 중 편의점의 평온한 분위기라든가,」 「그리고 말이야.. 방과후의 서늘한 공기라든가,」 「칠판 지우개의 냄새라든가,」 「한밤중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라든가,」 「소나기 내리는 아스팔트의 냄새라든가, .. 노보루군, 그런 것들을 나는 줄곧..」 「나는 줄곧.. 미카코와 함께 느끼고 싶었어.」 「..있잖아, 노보루군. 우리들은 광장히 굉장히 멀리 또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지만 마음만은 시간과 거리를 초..
나의 아버지는 내가 .. -앤 랜더스 네살 때 -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섯살 때 -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여섯살 때 -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여덟살 때 -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열살 때 -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진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열네살 때 -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스물한살 때 - 우리 아빠말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스물다설살 때 -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오셨으니까. 서른살 때 -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서른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