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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From.To.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은유니 2009. 1. 30. 19:37

「어떤 하루」

열 살 난 큰아들 녀석이 독감에 걸려
벌써 몇 사람 죽었다는 무서운 독감에 걸려
열이 사십 도를 오르내리는데도
춥다고 두꺼운 이불 뒤집어쓰고
턱을 덜덜덜덜거리며 말했다.

"아버지, 제 은행 통장에 삼만 칠천 원 있어요.
제가 모은 전 재산이거든요.
오늘 밤에 저 죽고 나면,
그 돈 다 찾아서 양로원 할머니들께 전해 주세요.
오늘 신문에,
기름 떨어져서 찬방에서 잔다는 그 양로원에……."

조그만 녀석이 몸에 열이 나니
별 헛소리까지 다 한다고 나무라던 아내가,
어른들이 밥을 굶더라도
큰아들 녀석 보약 한 재 달여 먹여야겠다던 아내가
밤새 코를 훌쩍거리던 깊은 밤이었다.

철없이 던진 큰아들 녀석 말 한마디가
늦가을 단풍보다 더 빨갛게 더 노랗게
내 가슴을 물들이던 깊은 밤이었다.



「그리움 다 남겨 두고」

남편 일찍 여의고, 사십 년 남짓 혼자서 농사짓고 살던 생비량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둡도록 방에 불빛이 없어 들여다보니 앉은 채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마을 이장님과 할머니 수첩 속에 적힌 자식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 사는 큰아들은 "차가 꽉 막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 사는 둘째 아들은 "맞벌이하는 마누라 돌아오면 함께 가겠습니다." 부산에서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큰딸은 술에 취해 "정말 돌아가셨습니까? 유언 같은 거 안 했습니까? 논밭들이 많은데……." 마산 역 앞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막내딸만은 울면서, 소리내어 막 울면서 "예에, 지금 당장 가겠십니더. 고맙십니더."

생비량 할머니는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 얼굴 한 번 못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죽는 것도 어렵다고, 죽으면 살아 있는 사람 귀찮게 한다고, 그래서 낮에 죽더라도 자식들 퇴근하고 돌아올 무렵에 알려달라더니, 마지막 소원대로 그 무렵에 돌아가셨습니다. 낡은 벽지만큼이나 오래된 그리움 다 남겨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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