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어질 글에서 아프기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만 두려움에 차서 인생을 보낸다면 바보 같은 일일 거라고, 미래의 너는 고통받고 많은 것을 잃게 되겠지만 고통과 상실은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1.가만히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기 좋은 계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하늘이 아름다운 시월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서 어디든 산책 나가기 좋아, 무작정 걷고 싶어진다. 엇그제는 선유도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고 애인님과 함께 캐치볼을 하고 돌아왔다. 공놀이에는 재주가 없지만 잘못 던져서 공이 빠져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쳐도, 즐거우니까 좋다. 가볍게 땀이 나고 한껏 불어온 바람은 기분 좋게 흩날려서 지금의 시간을 쭉 늘여놓고 싶어져. 어제도 손을 맞잡고 도림천 산책로를 걸었다. 행복으로 충만한 주말. 내 일상에 당신이 있어 좋다. 2.6주간 이어졌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상담이 끝났다. 찾아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먼 길을 돌고돌며 방황하면서도 오롯이 나만을 ..
놀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즐겁게 놀았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관대했어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길로 가는 게 어때서. 그래, 그럴 수 있지. 좋은 경험을 했으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스턴트맨 일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 수도 있지. 왜냐하면 젊은이란 건 조금은 낭비되어도 상관없을 만큼 넘치고 넘치는 것이니까. 길을 잘못 들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도 '어랏, 아직도 시간이 남았네'라고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두 가지나 세 가지로 구성돼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대략 5억만 개 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1.잠깐- 하는 사이 시간이 부쩍 흘렀다. 되도록 많은 기록을 남기자는 다짐에도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벅차 일기를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것을 정돈된 글의 형태로 남기는 것도 막상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일상으로의 회복은 더디고 나는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거나 머물러 있기를 반복해서 노력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도 마음만큼 되지 않는다. 밑 빠직 독이 된 것만 같아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꾸역꾸역 채워넣어도 돌아보면 전부 흘러가버려서 또다시 텅 비어버려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그래도 되도록 놓아버리지 않을 만큼만 힘을 내고, 점차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희망해. 돌아보고, 가만히 들여다 봄으로써, 곱씹고 소화해내야지만 너를 떨쳐내고 ..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