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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깐- 하는 사이 시간이 부쩍 흘렀다. 되도록 많은 기록을 남기자는 다짐에도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벅차 일기를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것을 정돈된 글의 형태로 남기는 것도 막상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일상으로의 회복은 더디고 나는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거나 머물러 있기를 반복해서 노력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도 마음만큼 되지 않는다. 밑 빠직 독이 된 것만 같아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꾸역꾸역 채워넣어도 돌아보면 전부 흘러가버려서 또다시 텅 비어버려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그래도 되도록 놓아버리지 않을 만큼만 힘을 내고, 점차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희망해. 돌아보고, 가만히 들여다 봄으로써, 곱씹고 소화해내야지만 너를 떨쳐내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테니까.
그래도- 즐겁게 지내려 노력한다. 평소였다면 궁금해만 하다 지나쳤을 영화를 챙겨보러 가고, 한주에 한번씩은 전시회나 작가와의 만남, 무대인사를 찾아간다. 돌배 작가님의 첫 전시회 리셉션 행사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김보통 작가님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작가번개에 참석해 사인을 받고, 문소리 감독 겸 배우의 '여배우는 오늘도' 무대인사가 그리는 제4막에 귀기울인다. 그리고 때론 웃고, 때론 가슴이 먹먹해져 뚝뚝 눈물이 떨어지려는 것을 참는다. 토해내듯 시간들은 켜켜히 쌓이고, 그 속에서 나는 이따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표정들을 짓는다. 그래도 그런 시간 시간들이 모여, 마음 한켠에 안정을 가져다 준다. 괜찮다, 즐겁게 지내자.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한거니 너무 스트레스 받고 그러지 말고."
2.
매주 금요일마다 1대1 상담을 받은 지도 벌써 4주차다. 이제 이번주, 길어도 다음주면 선생님과 매주 한시간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끝이 난다. 그 사이엔 생각지 못했던 감정들이 꽤나 오고가서, 덕분에 한달의 시간을 지나면서 마음이 조금 단단해짐을 느낀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또 들음으로써 무언가 나아지는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지쳤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안에서 달라지는 게 있는지도 도통 알 수 없었다. 상담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뭔지, 혹은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불명확했다. 다만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수렁에 더는 나를 몰아넣어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이끌었을 밖이었다.
그런 의구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위로는 전해질 수 있더라. 선생님은 끊임없이- 서슴없이 문제의 본질을, 그리고 나를 꿰뚫는 질문들을 던졌다. 설핏 '당했구나' 하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나도 알지 못하는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에 당혹스럽기도 했어. 하지만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한가운데에 '도망친다'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문제/내가 문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내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몇번을 되새기듯 말해줬지만, 마음 한켠에는 내가 문제인 걸까 하는 망설임이 남았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될 땐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었다. "네가 이만큼 왔다는 건 이만큼 해낸 거지 포기한 건 아니야.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이건 승부가 아니니까. 혼자 이만큼 해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줘. 그래야 다음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새로운 연료가 될테니까." 그래도 나는 도망쳤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레이가 도망쳤다는 기억을 갖고 싶지 않았던 것만큼, 나는 끝까지 부딪혀 보고 싶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번 도망쳐 버리고 나면 다시 맞서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힘겨움을, 버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젠 더 못하겠다고 뒤돌아서고 말았다. 용기를 내야할 때 그만두고 말았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주저앉고 말았다.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내게 말해준 건 당신이 해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실상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내 잘못으로 돌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만둘 수밖에 없을 때까지. 소모되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3년 전 약속한 시간을 버텼고, 괜찮아지길 기대하며 하루, 일주일, 한달을 견디어 냈다. "혼자 이만큼 해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자. 아직은 자신이 없고, 여전히 울 것 같은 기분이 될 땐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어.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다. 괜찮을 수, 있다. 마음에도 연습이 필요해. 그걸 잊지 말아. 내게 내밀어진 손을 잊지 말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네 앞에서는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니까.
3.
잠깐 그만뒀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다. 두달만에 찾은 도장에선 오랜만에 보는 이들이 반겨줬다.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무슨 일 있나 걱정해주고 궁금해 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조금 기쁘기도 했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어.
나 없는 사이 그들은 모두 승단시험을 통과해서 검은띠를 따는데 성공했고, 이제 도장에 흰띠는 나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게 조금 아쉽고 나도 어서 검은띠를 따고 싶다는 욕심도 든다. 오뉴월까지만 해도 품새도 다 외우고 발차기도 제법 잘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쉬고 나니 팔다리가 제멋대로 나가고 방향도 뒤죽박죽이다. 힘들지 않게 했던 마무리 2세트 운동만으로도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 중요한 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하고 경쟁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지기를.
4.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kt위즈팬의 애인을 3년간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6시30분마다 스포츠 항목을 찾아보게 됐다. 그 수많은 덕질들을 그만뒀는데,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덕질이 찾아와서 막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고 새삼 일상에 생기와 활력이 돋는다. 창단 3년째 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극한취미 kt위즈팬<< 이지만 눈길이 가는 선수도 생기고, 못할 땐 같이 욕하고 잘할 땐 같이 기뻐하며 취미를 공유할 수 있어서 더 좋아. 내년에는 좀 더 잘해서 야구장 데이트도 자주 하고 싶다 :). 시즌 끝나면 이제 뭐하고 놀지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
5.
지나간 시간은 다독이며 잘 접어 넣어두고, 새로운 장을 펼치려 애쓴다. 언제나처럼 나를 최우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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