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멍해야 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
1.3년만에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저번달부터 내년엔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써볼까 생각하다가 이번달 초에 몇개 사이트를 뒤져가며 적당한 다이어리를 고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새해를 맞기 전에 새 페이지를 펼쳤다. 빳빳한 새 종이에 이번달 일정과 매일매일의 일기를 적어 내려가며 무언가 '새 출발'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고작 다이어리를 사는데도 기분이 사실 묘했다. 어릴 때부터 정리벽이 있어서 중학교 땐 시험기간 한달 전부터 노트에 공부계획을 짰고, 고등학교 땐 스터디플래너를 사서 매일매일의 일정을 정리해왔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는 플래너에서 다이어리로 옮겨가 공부 계획, 교지 회의, 약속, 과외일정 등등을 꾸준히 정리해갔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작년 겨울,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글을 쓰고는 나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대학을 세상의 전부라 믿었고, 거기에서 나오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더욱 가치 있었다. 강의실과 연구실은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대..
악몽같았던 지난 밤이 잦아들고, 올 한해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늘 여기 내가 있다 그러니 괜찮다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다행이다. 당신은 내게 몸과 마음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 말했다. 나는 당신의 그 말이 고맙고 미안하고 아프고 사랑스러워 눈물이 나왔다. 내 나약함이 당신에게 짐이, 아픔이 될까, 그리하여 당신을 지치게 할까 나는 그게 두렵다. 그래도 항상 안아주고 말을 건네주는 당신이 있어 고맙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돌아오면 어두운 밤 나는 혼자다. 그건 생각보다 외롭고 지치고 나를 소모케하는 일이어서 그 시간을 조곤조곤 함께해주는 그대가 위안이 됐다. 걱정하는 마음이 진심임을 알기에.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는 게 이젠 자연스러워진 나는 당신이 걷는 길이, 내가 함께 갈 길..
1."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전에는 뭐 똑같지, 라거나 그냥그냥 지내,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최근엔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해"라는 대답을 찾곤 종종 그렇게 답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 조용한 나날들이지만 내 마음을 챙기고 즐거우려 노력한다.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들이 있다. 잠들지 못해 뜬눈으로 뒤척이며 밝아오는 새벽을 맞고, 속이 안좋아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일도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텅빈 상태가 못견디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즐겁게 지내려 노력해. 노력하다보면 또 괜찮아질 때가 있으니까. 행복하다, 행복하네, 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때도 오니까. 오늘은, 지금은 잘 안되더라도 또 다음은, 내일은 즐겁게 지내자. 2.쉬는 동안에는 쉼없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