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 y Luna - 5화. Secreta(세크레타)] by.유니 풀잎 하나를 입에 물고서 언 듯 푸른빛이 어른거리는 청회색 머리의 남자가 투명한 하늘아래에 잠이 들어 있었다. 나즈막이 내쉬는 그의 숨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던 풀잎은 그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써 한 시간 남짓 하고 있던 차였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렸다. 그 바람의 손짓에 그의 입에서 머물던 풀잎은 결국 바람의 자락에 얹혀 날아가더니 지붕 맡에 내려앉았다. “…늦는데.” 어린 바람의 장난에 잠이 깬 것인지 그가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공중에 나부끼게 하던 바람의 행동에 귀찮다는 듯 그는 손을 올려 흩날리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눈을 뜨지 않았..
[Sol y Luna - 4화. Sesar Wika (세사르 위카)] by.타로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는 보글거리는 거품 소리와 함께 접시 그릇들의 노랫소리처럼 느껴졌다. 싱크대 위에 난 네모난 하늘은 점점 짙푸르러져, 겨울의 차가운 면모를 띄었다. 바람은 얇은 치즈 조각처럼 뜬 구름들을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시리아의 시선은 창가에서 찬장에 붙은 네모난 메모로 옮겨갔다. 붙인지 얼마 안 된 듯한 베이지색 메모에는 앳된 마음을 가진 어린애가 갑자기 어떠한 연유로 자라 무리하게 어른의 글씨체를 흉내 낸 듯한 필체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물론, 시리아는 아직 14살 밖에 안 되었다. 굳이 무언가가 자랐다면 그건 마음이겠지. 「카레, 샐러드, 향차 (데이지, 허브, 이슬)」 향차는 시리아만의 특별 메..
[Sol y Luna - 제 3화. 만남 그리고..] by.은유니 ‘시리아.L.유리에…’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루시엔은 길을 가다 말고 쿠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소녀는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 적이 없었다.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루시엔은 계속해서 혼자 피식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꽤나 신비로운 분위기의 소녀였다. 투명한 별빛과도 같은 정령들에게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던 그 모습, 그리고 너무 맑고 투명해서 깨질 것만 같이 아슬아슬한 그 순수한 사파이어 빛 눈동자…. 두근두근. 루시엔은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겨우 몇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인데도, 무엇인가 소녀를 향해 있었다. 마치 열병에 시..
[Sol y Luna - 2화. Puella (푸엘라) : 소녀] by.타로 소녀는 말갛게 빛나고 있는 정령들에게 나지막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은은한 달빛처럼 내리쬐는 빛이 우거진 숲을 뚫고 들어가 겨우 닿은 얼굴은, 살짝 내리깐 은빛 눈썹과 그 아래로 투명하게 빛나는 사파이어빛 눈동자 때문인지 깨질 듯 투명해 보였다. 소녀는 분명 그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희미한 음은 정령들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두근두근. 소녀는 갑자기 느껴지는 심장박동과 미세한 통증에 고개를 들었다. 열에 들뜬 듯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같았다. 소녀는 심장이 애타게 부르는 그것을 찾아 눈을 돌렸다. 그리고 부서지는 듯한 태양빛을 등지고 이쪽을 바라보는..
[Sol y Luna - 1화. Puer (푸에르) : 소년] by. 은유니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도는 밤의 하늘은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투명한 공기로 감싸 안고 있어서 새로운 날의 시작 느끼게 해주었다. 새벽은, 그 맑은 영혼의 목소리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 보다도 시작 이라는 예의 그 새로운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가져다주었다. 만월이 다가오는 듯 점차 차오르는 달은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벽의 이슬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소년은 그 신비스러운 빛으로 자신을 비추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의 그림자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표정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달빛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는 듯 소년은 그렇게 이내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