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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 y Luna - 제 3화. 만남 그리고..]
by.은유니
‘시리아.L.유리에…’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루시엔은 길을 가다 말고 쿠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소녀는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 적이 없었다.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루시엔은 계속해서 혼자 피식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꽤나 신비로운 분위기의 소녀였다. 투명한 별빛과도 같은 정령들에게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던 그 모습, 그리고 너무 맑고 투명해서 깨질 것만 같이 아슬아슬한 그 순수한 사파이어 빛 눈동자….
두근두근.
루시엔은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겨우 몇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인데도, 무엇인가 소녀를 향해 있었다. 마치 열병에 시달리듯이,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끊이질 않았다. 마치, 어딘가에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의….
그 하얀 빛의 세계를 지나자 소년은 어느새 숲을 지나 마을을 향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어떠한 생각에 빠져 걸음을 걷던 소년의 발길은 어느새 사부님의 집 앞에 가있었다. 아니, 사부님의 집이자 자신의 집이기도 하지만.
루시엔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사부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휴우- 다행이다. 늦었다고 특별코스 받지는 않겠어.’
그 특별코스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탁- 하고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손길에 소년은 어깨를 움찔했다.
“이 녀석아, 분명 내가 정오까지는 오라고 했잖아 !”
다짜고짜 자신을 향해 터지는 과함 소리에 루시엔은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전개된다면 필시 특별코스는 면하지 못할 것이다.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뒤돌아보는 루시엔을 보고는 사부님은 ‘큭큭’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잔뜩 긴장해가지고는. 밥은 먹어야지, 여태 뭘 하다 온 거냐.”
방금 전까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소년을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그렇게 웃으며 밥 이야기부터 꺼낸다. 그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듯, 웃어 보이는 루시엔의 모습이 서로 잘 어울렸다. 서로의 눈을 향한 그 웃음은 ‘가족’ 의 느낌이 물씬 풍겨져 나왔다.
“오늘은 무슨 반찬이에요?”
금빛 머리를 긁적이던 루시엔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으음- 오후에는 특별 B코스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A 정식으로 갈까나..”
“…사, 사부님 !!”
흠칫하며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어디엔가 라도 닿을 듯.
루시엔의 목소리는 언제나 무언가 태양을 닮은 활기가 있어서, 곁에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귀 기울이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비출 듯한 그것과 닮아 있어서, 어디에라도 퍼질 듯한 그런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있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내내 루시엔의 그 목소리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들떠있는 듯 하면서도 살짝 낮게 스며오는 아련함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보지 못할 만큼이나 미세했지만, 소년의 사부는 그 자그마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있죠, 사부님-”
“뭐냐.”
아무런 말없이 스튜를 먹고 있던 루시엔의 사부, 이칼리프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살짝 귀찮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루시엔이 늦게 와서 자신이 점심을 준비해야 했다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더욱이 제자가 해주는 밥에 비해 전혀 먹을 만한 식사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짜증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서. 밥 먹을 땐 개도 건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왠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느낌 든적 있어요?”
살며시 물어오는 목소리, 들떠있다.
“글쎄, 있었던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을 계속해가는 이칼리프. 그에 비해 루시엔은 눈을 반짝이며 정말이지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소년은 문득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끼곤 얼굴을 연하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문득 고개를 들어 소년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던 이칼리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안 가본 곳 없이 여기저길 돌아다녔으니까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났었지.”
생각하는 모습마저도 멍해 보이는 사부의 모습에 루시엔은 살짝 웃어버렸다.
“프셀리 숲에 사는 정정한 노인에서부터, 라이칸 바닷가에서 힐러의 집을 운영하던 어느 마녀도 만나보고… 처음 보는데도 익숙하다 정도의 느낌이야 우리들한텐 별고 아니었지.”
그의 대답에 루시엔은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더니 사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느낌이 아니라, 마치 언젠가부터 인연이 있어왔다거나, 무언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말이에요…….”
‘그렇다는 건, 내가 그 소녀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소년은 다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그런 루시엔의 반응에 이칼리프는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밥은 다 먹었나 보지, 그럼 치우고 밖으로 나와. 특별 B코스를 시작할 테니까.”
“아, 아직요!”
루시엔은 말을 하다 말고 급히 고개를 숙여 남은 스튜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입속에 넣었다. 사부님의 음식 솜씨야 어릴 적부터 익숙해져서 루시엔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딱-
‘아, 아파라..’
뭔가 딱딱한 게 씹힌다 싶더니 자그마한 돌이 나왔다. 사부님이 만든 음식을 먹으려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고 애써 괜찮다 생각하면서 루시엔은 살짝이 한숨을 쉬며 한 스푼 정도 남은 스튜를 입속으로 흘렸다.
그날 훈련은 정말이지 지독했다고, 주변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
어느새 태양의 빛이 사라지고 푸른 달의 모습이 눈 속으로 비쳐 들어왔다.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루시엔은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강한 신념으로 가득 찬 두 눈은 언제나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두운 밤 달빛 아래 있을 때면 태양빛의 그것도 살짝 흔들리곤 하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무한히 빛나는 자신의 금빛이, 저 달빛을 가려버린다고 혼자 조바심을 내듯이.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사부님의 목소리에 루시엔은 고개를 들고 베시시 웃어버렸다.
이칼리프는 양손에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홍차를 들고서 푸른빛을 받으며 마당에 홀로 앉아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컵을 하나 건네더니 자신도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홀짝이며 홍차를 마셨다.
“인연이라… 어디 예쁘장한 아가씨라도 하나 꼬신 거냐.”
…라고 다짜고짜 물어오는 사부님의 말에 루시엔은 홍차를 입에 갖다 대다말고 푹-하고 황급히 컵을 빼더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다는 듯 사부님을 쳐다보았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사부님의 반응에 소년은 으쓱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컵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말없이 있었던가. 은은히 비쳐오던 달빛도 어둠의 손길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이내 주변은 그 검은 그림자로 가득찼다.
“거짓말 말고, 어디 한번 데려와 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싶더니, 이내 사부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아, 아니라니깐요!!”
루시엔은 발끈하고는 그렇게 외쳤다.
그런 소년의 반응에 이칼리프는 ‘큭큭’ 웃더니 다 마신 홍차 컵으로 소년의 머리를 탁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늦었다, 피곤할 테니까 빨리 들어와서 자.”
루시엔은 피식 웃으며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탈탈 털었다.
“네, 사부님도 잘 자세요.”
손을 휘저으며 문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아’하더니 그가 돌아서며 말했다.
“점심하고 저녁 설거지 안했으니까, 그거 하고 자. 안하면 아침 없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루시엔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투덜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밝은 금빛 뒤로, 소녀를 닮은 하얀 달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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