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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너머 쪽에서 소금강의 얼음이 쩍쩍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어느덧 따사로워진 햇볕에 얼어있던 강이 녹아 이제 그 본디 줄기를 타고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강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겨울이 끝나가는 즐거움에 와아-하면서 강물로 뛰어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곤 하였다. 겨우내 차가운 기운을 감추고 있었던 강바닥에 닿은 발에서 영하에 가까운 수온이 저릿저릿하게 전해져왔다. 그러나 어느새 발아래의 감촉에 무뎌진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망설이며 바깥에서 지켜보던 나머지 녀석들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한가득 강물에 아이들이 들어찼다.
염료를 구하러 나섰던 옌은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언덕 위쪽까지 그 웃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워, 지난겨울의 숨죽이며 소란히 지나갔던 일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것에 손발이 근질거려 못 참던 녀석들은 물이 채 따듯해지기도 전에 얼음이 그대로 떠 있는 소금강을 찾아갔던 듯했다. 숨 막혀 기다렸던 겨울의 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것은 역시 그 아이들이었다.
빙글 웃으며 돌아서던 옌은 건너 쪽에서 소년을 발견했다. 아직 차가운 땅바닥에 맨발을 서로 비비며 라고는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체구만 봐서는 그들의 틈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려 보였지만, 라고는 그저 옆쪽에 누워있는 개의 털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 역시도 순스를 떠날 거라던 이야기를 다 바트에르덴에게 전해 들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걸 눈 깊은 곳에 간직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라 옌은 그의 시린 맨발이 눈에 밟혔다. 소리 없이 라고는 개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살짝이 숨을 내쉬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입김이 뭉글거리며 퍼져나갔다. 아직은 겨울이 끝나지 않아, 추위 역시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소년이 둘 만의 여행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바짝 다가오지 않는 봄바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떠나려는 걸음을 멈추어 세울 수는 없었기에 옌은 두 눈에 다 담아내지 못할 순스의 마지막 모습을 한가득 온몸으로 품으려는 듯 앉은 라고의 곁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다른 이에게 힘을 구하지 않고 혼자 해내려 하는 라고의 성격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였을까, 그의 집을 찾아온 소년의 모습에 옌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예전에 몇 번인가 옌에게서 일을 부탁받은 소년이 작업실 정리를 도와주러 온 적은 있었지만 직접 그의 집에 부탁을 하러 온 일은 처음이었다. 잔 숨을 내쉬는 개의 숨소리에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본 옌은 작업실의 문짝을 붙잡고 선 라고를 발견하였고, 옌은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멈추어선 소년을 손짓을 하며 불러들였다. 라고는 머뭇거리며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고는 한쪽 귀퉁이에 물러서 앉았다.
하시던 일, 마저 하세요.
종이에 적어 내려간 라고의 글은 그답게 조심스러웠다. 옌은 자그맣게 빙글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소년이 처음으로 손을 내밀며 구하는 마음이 무엇일지 조금은 궁금했던 탓이다.
"괜찮아. 부탁하고 싶은 것이 뭐니?"
라고는 여전히 머뭇거리더니 잠시 허리 숙여 자신의 무릎께에 기대어 앉은 개의 북슬북슬한 털을 매만지다가 글을 적어보였다.
무차를 위한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하고….
생각지 못한 부탁에 멍해져 있던 옌은 이내 라고의 말을 이해하고는 작게 웃었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남아있는 목재를 찾아 잠시 수납장을 뒤적이다 여전히 개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어느새 자라난 소년의 몸이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소매를 스치고 봄바람이 불어올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정하구나, 라고는."
자신을 위한 것보다도,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또한 앞으로도 함께할 무챠란 개를 위한 것을 앞서 생각하고 있어.
예? 갑작스런 칭찬에 당황한 듯 라고가 머리를 긁적였다. 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라고에게 찻잔을 건네었다. 잠시 앉아서 몸이나 녹이며 기다려 줄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은 입 밖으로 말해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소년의 선물을 준비해줄 밖에. 힘들게 내보내졌지만 은연히 주위를 감싸고도는 소년의 다정함에 옌은 문득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라고 혼자가 아니라 곁에 무챠가 있기에 둘은 제대로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보다도 앞서 그 선택의 행로를 인지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선물을 준비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스윽 스윽 조각칼이 스친 사이로 떨어져나간 나무가 옌의 발밑에 점차 쌓여가고, 문 밖에 가득 내렸던 눈이 녹으며 그 위로 언뜻 봄의 향내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곧 바람마저 따스해지는 그날, 소년의 앞에 햇살이 가득 내리기를.
:마지막 미션을 하기 전에 라고님께..아니 시그마님께 드리는 선착 하나.
2010년 1월 10까지의 마지막 미션을 끝으로 오랜 기간 인연을 함께 해왔던 에투겐도 떠나갑니다. 하시르 옌은 순스에 남았지만 대부분 떠나시는 분들이 많아서 더욱 아쉬운 걸까요 :-)... 그래도 떠나는 이들에게 축복을 기리며 남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요. 이것은 또한 라고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되겠네요. 참 라고군은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못해요. 그래서일까 더욱 적어내려가는 글 속에서 마음이 은은히 전해져와서 참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으아 무슨 이런 비루한..ㅠㅠ
언덕 너머 쪽에서 소금강의 얼음이 쩍쩍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어느덧 따사로워진 햇볕에 얼어있던 강이 녹아 이제 그 본디 줄기를 타고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강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겨울이 끝나가는 즐거움에 와아-하면서 강물로 뛰어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곤 하였다. 겨우내 차가운 기운을 감추고 있었던 강바닥에 닿은 발에서 영하에 가까운 수온이 저릿저릿하게 전해져왔다. 그러나 어느새 발아래의 감촉에 무뎌진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망설이며 바깥에서 지켜보던 나머지 녀석들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한가득 강물에 아이들이 들어찼다.
염료를 구하러 나섰던 옌은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언덕 위쪽까지 그 웃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워, 지난겨울의 숨죽이며 소란히 지나갔던 일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것에 손발이 근질거려 못 참던 녀석들은 물이 채 따듯해지기도 전에 얼음이 그대로 떠 있는 소금강을 찾아갔던 듯했다. 숨 막혀 기다렸던 겨울의 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것은 역시 그 아이들이었다.
빙글 웃으며 돌아서던 옌은 건너 쪽에서 소년을 발견했다. 아직 차가운 땅바닥에 맨발을 서로 비비며 라고는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체구만 봐서는 그들의 틈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려 보였지만, 라고는 그저 옆쪽에 누워있는 개의 털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 역시도 순스를 떠날 거라던 이야기를 다 바트에르덴에게 전해 들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걸 눈 깊은 곳에 간직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라 옌은 그의 시린 맨발이 눈에 밟혔다. 소리 없이 라고는 개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살짝이 숨을 내쉬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입김이 뭉글거리며 퍼져나갔다. 아직은 겨울이 끝나지 않아, 추위 역시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소년이 둘 만의 여행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바짝 다가오지 않는 봄바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떠나려는 걸음을 멈추어 세울 수는 없었기에 옌은 두 눈에 다 담아내지 못할 순스의 마지막 모습을 한가득 온몸으로 품으려는 듯 앉은 라고의 곁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다른 이에게 힘을 구하지 않고 혼자 해내려 하는 라고의 성격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였을까, 그의 집을 찾아온 소년의 모습에 옌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예전에 몇 번인가 옌에게서 일을 부탁받은 소년이 작업실 정리를 도와주러 온 적은 있었지만 직접 그의 집에 부탁을 하러 온 일은 처음이었다. 잔 숨을 내쉬는 개의 숨소리에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본 옌은 작업실의 문짝을 붙잡고 선 라고를 발견하였고, 옌은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멈추어선 소년을 손짓을 하며 불러들였다. 라고는 머뭇거리며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고는 한쪽 귀퉁이에 물러서 앉았다.
하시던 일, 마저 하세요.
종이에 적어 내려간 라고의 글은 그답게 조심스러웠다. 옌은 자그맣게 빙글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소년이 처음으로 손을 내밀며 구하는 마음이 무엇일지 조금은 궁금했던 탓이다.
"괜찮아. 부탁하고 싶은 것이 뭐니?"
라고는 여전히 머뭇거리더니 잠시 허리 숙여 자신의 무릎께에 기대어 앉은 개의 북슬북슬한 털을 매만지다가 글을 적어보였다.
무차를 위한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하고….
생각지 못한 부탁에 멍해져 있던 옌은 이내 라고의 말을 이해하고는 작게 웃었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남아있는 목재를 찾아 잠시 수납장을 뒤적이다 여전히 개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어느새 자라난 소년의 몸이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소매를 스치고 봄바람이 불어올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정하구나, 라고는."
자신을 위한 것보다도,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또한 앞으로도 함께할 무챠란 개를 위한 것을 앞서 생각하고 있어.
예? 갑작스런 칭찬에 당황한 듯 라고가 머리를 긁적였다. 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라고에게 찻잔을 건네었다. 잠시 앉아서 몸이나 녹이며 기다려 줄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은 입 밖으로 말해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소년의 선물을 준비해줄 밖에. 힘들게 내보내졌지만 은연히 주위를 감싸고도는 소년의 다정함에 옌은 문득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라고 혼자가 아니라 곁에 무챠가 있기에 둘은 제대로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보다도 앞서 그 선택의 행로를 인지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선물을 준비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스윽 스윽 조각칼이 스친 사이로 떨어져나간 나무가 옌의 발밑에 점차 쌓여가고, 문 밖에 가득 내렸던 눈이 녹으며 그 위로 언뜻 봄의 향내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곧 바람마저 따스해지는 그날, 소년의 앞에 햇살이 가득 내리기를.
:마지막 미션을 하기 전에 라고님께..아니 시그마님께 드리는 선착 하나.
2010년 1월 10까지의 마지막 미션을 끝으로 오랜 기간 인연을 함께 해왔던 에투겐도 떠나갑니다. 하시르 옌은 순스에 남았지만 대부분 떠나시는 분들이 많아서 더욱 아쉬운 걸까요 :-)... 그래도 떠나는 이들에게 축복을 기리며 남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요. 이것은 또한 라고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되겠네요. 참 라고군은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못해요. 그래서일까 더욱 적어내려가는 글 속에서 마음이 은은히 전해져와서 참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으아 무슨 이런 비루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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