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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고백하건데, 내가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년 전 4월16일 그날의 세월호였다. 도저히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번의 울음을 삼킨 끝에 나는 "그곳에 가자"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었다. 그게, 지금의 나를 이끌었다.
1년 전, 4월, 광화문광장에서 보낸 한달은 내 생애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그곳에서 나는 아직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해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께 "아이가 좋아하는 일본에 유학보냈다" 거짓말했다는 아버지를, 마음 약해질까 봐 꿈에서조차 딸이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며 눈물을 뚝, 뚝, 흘리는 어머니를 만났다. 애석하리만큼 비가 쏟아지던 날, 모두가 울었지만 실은 침묵과 고요만이 가득했던 4월2일 삭발식의 절규를 떠올리면 눈앞이 아득해졌다. 삭발은 목숨을 건다는 뜻이래요, 나는 그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부모님이 목숨을 걸게 된 걸까요, 울먹이며 언니누나동생들은 1년 만에야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됐다.
한달의 시간을 오롯이 그곳에서 보내면서, 몇번이고 아득한 기분에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울 수가 없었다. 겨우 내가, 울음을 터뜨리기엔 가혹한 시간들이었다. 또 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였고, 길이 막혔고, 여러번 넘어졌다. 물대포와 캡사이신과 피와 땀이 뒤범벅된 그 거리를 끊임없이 뛰어다녔다. 나는 지금 울 자격이 없었다. 아직 삶은 지속되고 있고, 싸움도 그랬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마 기레기였고 또 기회기도 했을테다. 가치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글을 쓸 자신이 없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연명하기에 벅차다. 나 자신의 싸움에 지쳐 실은 마주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삶은 벌써 또 한바퀴를 돌아 이곳에 왔다. 그리하여 나는 2년 전 나를 이끌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리고 1년 전 그날의 광화문을 떠올리며 도저히 그냥 잠들 수가 없는 거다. 회의감과, 분노와, 그래도 하는 절박함이 끝내 해소되지 않아.
그들은 여전히 답을 듣지 못했고 과제는 산적해있다. "아프도록 비관적인" 전망 속에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공동체의 위기를 해소할 답은 내려질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오늘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수밖에는 없으니. 나는 아마 1년 전 오늘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곳을 찾을 테다. 기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나는 비참하리만큼 무능하다. 그래도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교지관악의 마지막 글을 썼을 때의 그 생각을, 감정을, 다시 되새기며 잊지 않길 바라는 거다. 아무도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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