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Yunee:/Diary―

2014년 하반기 ~

은유니 2015.01.02 08:11
1. "할머니는 밤중 화장실에 갈 때 할아버지를 동행하며 몇 번이고 당부한다. “당최 어디로 가시지 마오. 내가 무서워 그래요.” 사랑과 동시에 사랑의 완성인 죽음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되었다."

2. "아들의 유품이 택배로 올라온다는 전갈을 받은 엄마는 택배 기사와 마주칠까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안절부절못합니다. 유품을 받으면 그때는 아들을 진짜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준비가 안 돼서입니다. 이틀을 피하다 엄마는 유품을 받았습니다. 바닷물에 있던 아들 교복이 삭아버릴까봐 빨리 세탁을 하려는데 이번엔 아이의 여동생이 유품 상자를 열지도 못하게 합니다. 상자를 열먼 바다 냄새가 된 오빠가 온 집 안에 퍼질 텐데 그러면 자기는 집에 못 들어올 거 같다고요. 곤혹스런 아빠는 아들 교복이 든 유품상자를 차 조수석에 태우고 일을 다닙니다. 아들과 단둘이 있고 싶다면서요."

3. "You can’t become what you are until you know what you’re not."

4. 여러 보고싶었지만 보지 못했거나/않고 지나간 경우가 많고 크게 아쉽지도 않았지만 공무도하는 꼭 보고싶다. 아니 사실 할머니랑 손잡고 같이 보고 싶다. 울 할매 영화관도 안가봤을 거 같지만 :). 할머니는 날씨만 추워지면 멀리 서울에 있는 손녀가 걱정이다. 바쁘다고 먼저 전화못했던 손녀대신 먼저 전화해 부츠 사줄까, 바지사줄까, 우에 옷은 있나, 파카 하나 사주까 하고 애가 탄다.

5. "쌍용차 26번째 희생자는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70미터 굴뚝에 오른 첫날 그리고 해가진 지금 난 26번째 희생자 소식을 접했다. 자판 쓸일 없겠거니 생각하다가 만에 하나 모를일이라고 자판기 하나 챙겨 왔더니 첫 보도자료를 동료 임종을 알리는 일이다."

6. 오늘은 새벽부터 아침을 거쳐 저녁까지 이래저래 힘든 하루였지만 어쨌든 (새벽에 몰래 온 눈을 제외하고!) 첫눈을 같이 맞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7. 개인적으로 인터스텔라를 보고 느낀 건 재미나 감동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우주에 홀로 남겨진다는 공포. 이제 더 이상 살아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간절함. 닿을 수 없다는 서러움.

8. 때론 어떤 단어나 표현을 그것이 사용된 맥락이나 그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저 누가 언제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좋아하고 또 싫어하게 된다.

9. 어릴 때 주말에 심심하다며 엄마한테 부대끼곤 했는데, 그럼 엄마는 항상 심심하면 공부해라~고 하시곤 본인이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는 듯 막 웃으시면서 일로와 같이 티비보자 하며 자리를 내어주시곤 했다. 그건 참 즐거운 오후의 여유였다.

10. 대체로 이 감정에는 이유가 없다. 주변과 발밑을 살피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또 내가 잘못했구나 싶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어쩌면 반복해서 그 말을 듣게 될 것만 같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어디서부터 글러먹은 건지 모르겠다, 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조금씩 의식하고, 노력하고, 하다보면 변화는 올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의식과 노력이 끊임없는 불안과 초조함을 동반할까, 다시 그것을 불편하다 여길까 무섭다. 그래도 걸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것밖엔 해답은 없다.

11. "이것들 전부, 아픈 굴레잖아. 너를 괴롭히는 기억들은 내가 가져갈 거야. 내가 대신 기억할게. 네가 아프고 힘들다는 걸…. 내가 대신 기억하고, 내가 대신 아플게. 당장 행복하냐고 묻지 않을게. 재촉하지 않고, 옆에서 같이 기다릴게. 그냥 조금만 열어두자. 고통으로 단정짓지 말자. 넌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니까."

12. "인재 몇 명이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싫었다. 그렇다면 서울에 이렇게 많은 빌딩이 왜 필요하고, 많은 창문과 책상은 왜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13. "4월 16일, 바다는 평온했다."


14. 아버지는 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오빠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썩 맘에 들어하지도 않았다.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점도 그러했다. 오빠때문에 내가 공부를 포기하는거 아니냐는 부채감을 여전히 느끼시는 듯했다. 나는,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지연에 가깝지만, 나 스스로도 나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데 내가 감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은 20년 뒤에도 이 일을 해야하냐 물으셨고 난 아니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끔찍하다.

이건 다 욕심이고 한낱 내 자존감이고 자존심일테다. 부채의식을 느껴야 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였을텐데. 나였을텐데. 새벽마다 당신이 겪어온 삶의 퍽퍽함을 온전히 안다고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모르지는 않다. 그 앎이 굉장히 무겁다. 노동자인 당신을, 양복대신 작업복을 입은 당신을, 그리고 아침도 저녁도 아닌 비와 바람과 밤에 익숙한 당신을 결코 원망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서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강한 부채감과 죄의식만이 가득 폐부를 찌른다.

그런 내가 유난히, 참, 자신이 없고 싫었다. 지금까지 해온 게 다 무엔가 싶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하는 삶이 싫어 도망치듯 나왔는데도 오히려 내 걸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차라리 지금이 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끝나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더욱 의욕은 있어도 의지나 야심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온전히 나나 너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끝끝내 당신과 나를, 아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 같다.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다시 돌아와 우리가 된다. 언제고, 언제까지고.


15. 사소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16. "친한 친구를 통해서도 회유가 들어왔어요. ‘다친다, 그거 하지 마라’. 그런데 그런 말을 안 들었다면 끝났을 문제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약한 저인데도 굴복하기 싫었어요. 대들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다친다는 말엔) 굴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17.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사 한 번 간 적 없이 이십년을 꼬박 살았던 본가가 마냥 그립지도 마냥 편하지도 마냥 변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는 것 또한 사실이다. 뿌리뽑힌다는 느낌을 받았던 그때처럼, 그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은 아직 무섭다.


18. 내가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당신이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당신이 당신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어쩐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19. 어쩌다 그런 세세한 부분들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리며 끔찍해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닌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는 건 때로는 행복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잊어도 되는 기억은 없다고 믿지만, 그것은 그저 함께가는 것인지 언젠가는 극복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그 작은 종이쪼가리같은 기억도 좀먹어가는데, 상상의 영역 바깥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별거 아닌 일, 정말 흔하디 흔한 일, 그리고 사소한 일. 그것을 과대포장하고 지나친 의미부여를 해서 극복하지 못할 것처럼 트라우마라 지칭하는 건 결국 자신이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같다. 지치지도 않게. 다시, 원점으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슬프게도 어느 누구도 미워할 수 없어서. 화낼 힘조차 없어서. 쫓아갈 의지를 잃고 주저앉기엔 두려워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고 실제로 그러했다. 손안에 가득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게 눈에 보여 서럽다.

그것을 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공감할 수 있다 말하기엔 너무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어딘가 닿아 있는 지점이 있었다. 쿡쿡, 쑤시는 정도로 남아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쉽기도 하다.

차리리, 쉬웠다, 너무도.

내가 하지 못하는 몇가지 행위들은, 아니 내가 가진 몇가지 행위패턴들은 거기에서부터 작동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20. 아프다고 딸기모찌 사주는 사람도 있고, 힘들다고 초코케익 사주는 사람도 있고, 참 좋다.

21. 그 앞에서 나는, 쫓아갈 힘을 잃는다.

22.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당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음의 장소는 어디인가. 당신은 항상 이곳에 있고, 저곳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가든 당신의 영혼이 머무르는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이 바로 우리의 꿈이 발아하는 장소, 그리움이 머무는 장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되는 장소가 아닐까."

23. 당신이 당신이여서 다행인 거처럼, 나도 나여서 다행인 사람이고 싶다.

24. "사랑한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게 아니다. 더하여 엄청난 희생과 상처만 남기고 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패배자로, 상대를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안 좋은 일이 생겼으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 된다. 인생이 원래 좋은 일만 있지 않듯, 사랑해도 아프거나 비참할 수 있다. 나에게만 일어난 불행이라거나, 내가 뭔가 '노련하지 못해서' '잘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25. "자기 옆지기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그런 주장은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것보다 더 허무한 일이야. 눈 뜨고 주변을 살펴. 구름 위로 걷지 말고 발을 땅에 딛고 걸으란 말이야."

26. "All I know is that I care about this problem and I want to make it better. And having seen what I’ve seen and given the chance, I feel my responsibility to say something."

27. "상민이가 시타를 사랑하는 만큼"

28. 내 삶에 그대가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다.

29. "… 그 말에 떠오른 것은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는 나와 여기 내가 있을 곳을 찾는 나와 그곳에 익숙한 벤치에 앉아 햇볕에 기대고 있는 나였다. 그립다거나 보고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여기에서 앞으로 반복될 계절과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람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전보다 더 더뎌지고 있는 걸음걸이를 다시 원상복귀시키길 바라는 마음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어 마음 졸였던 지난 4월처럼- 봄이, 과거의 봄이 아닌 지금 다가올, 내가 기다리는 그 봄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30.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31. 당신의 말처럼, 돈은 중요하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게 결국 돈때문이라는 그 말이 싫다는 거다. 당신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또 실망할 게 뻔하고, 진심이 아니라 할지라도 배려심 없는 태도에 화가 난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서 늘 화를 내거나 말을 삼키거나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찌꺼기처럼 남아서 몸속을 빙빙 돌다가 뱉어낼 곳을 참지 못하고 어딘가 쌓인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늘고, 그만큼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도 는다.

고개숙인다는 표현 좀 안 썼으면 좋겠다. 후회할 거라거나 후회했을 거라는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말해주지 않으니 언제까지고 난 그저 냉정한 시선을 숨길 수가 없다. 당신의 그 말이 나는 이제 우습다. 더 이상의 감정소모는 않겠다. 난 당신을 버리지 않겠지만 당신께 의지하지도 않겠다. 돌아갈 거란 기대는 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착해서' 그것을 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32. 꿈에서 시험대열로 놓인 책상에 앉아서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험이 시작할 시간이 되니까 뭔가 힘들어서 그사람한테 가서 붙잡고 매달렸다. 나 못할 거 같다고 역시 안될 거 같다고. 그는 전에도 잘 해냈잖아 하고 위로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해낼 수 없는 문제를 해낼 수 있다고, 그러니 너는 해야만 한다고 등떠밀리는 기분에, 붙잡아 지탱할 것 없는 불안감이 닐의 그것과 닮아 있지 않을까.


34. 그걸 모르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화가 나고, 이해하고 인정하더라도 용서할 수는 없는 거다. 잘못임을 알고 용서를 빈다 할지라도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내뱉어진 말은 담을 수 없고, 그렇게 명명된 순간 기록은 어디에나 남는다. 그것이 설사 명문화된 무언가가 아닌 한낱, 찰나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간 순간들이 쌓이다 못해 한순간 터뜨려지는 거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발현되는 것은 자기보호의 본능일까 자기파괴의 충동일까. 알 수 없다.

글쎄 용서라는 건 대체 누가 누구한테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서받는다고 할지라고 그 사이의 시간이 없었던 게 될 수는 없다. 그럼 대체 그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용서이고 시간인가. 용서할 사람도 용서받을 사람도, 용서할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그럴 수 있지도 그러고 싶지도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happily ever after이란 말은 너무도 잔인하고 서러워서 두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용서를 구하는 그와, 용서를 구해야한다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그와, 용서할 수 없는 그를, 모두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그 방향이 화살을 돌려 나를 향하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차라리 끊어낼 수 있다면 싶어진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이루어질 수 없겠지. 할 수 없겠지. 해서도, 안되겠지.

웃음기가 사라지는 상황이 싫다. 하지만 억지로 웃어야 하는 상황은 더 싫다. 그 미묘한 간극 속에서, 항상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괜찮은 척 웃다가, 웃기조차 힘들어지다가.


36. "섬은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섬이다. 내가 보지 않는데도 정말로 섬인지 아닌지를 보고 싶었지만 내가 계속 보고 있다면 내가 보지 않는데도 섬인지 알 수 없다. 난 어떻게 하면 그걸 볼 수 있을까? 그걸 볼 수 있을까?" -보노보노 봇


37. 그것이 나를 향한 말이 아님을 알고, 그것이 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나는 그 말에 끊임없이 침잠해들어 스스로를 갉아먹곤 한다. 말할 수 없다는 공포를, 마찬가지로,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닐이 부럽다. 결국은 질식해버렸고, 질식할 것 같다는 느낌에서 벗어났으니까. 그렇지만 닐은 우리에게 희망보단 절망을 가져다 주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체자로서 결의문과도 같은 개화시구인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삶이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자' 라는 말을 어겼으니까."

원문이 어떻고 다른 판본이 어떻든 간에, 내가 저 문구를 좋아했던 것은 포기하지 '말라'가 아닌 포기하지 '말자'였기 때문이다. 그건 함께하자는 의미였고 그래서 더 위안이 되었다.


38. "고통 앞에서 중립적일 수 없었다"

39. "기억해 힘을내 my friend"

40. "매슬로은 인간의 욕구가 '생리적 욕구' '안정에 대한 욕구' '정서적 욕구' '사회적 인정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5단계로 나뉜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돼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단계를 건너뛰는 일은 불가능하다."

41. "삶과 죽음의 가장 큰 차이는 가능성이다. 행이든 불행이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가능성을 추구하는 존재다."


42. 중학교 2-3학년 즈음 <죽은 시인의 사회>와 키팅 선생님은 당시의 나를 지탱해주던 여러 작품들 중 하나였다. 친구와 셋이서 나란히 앉어 자유롭게 책을 찢고, 연극을 하고, 운동장을 돌며 박수치고, 책상 위를 올랐던 장면을 봤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삶이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자. seize the day, carpe diem.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 떠나는 키팅 선생님에게 캡틴을 부르짓던 모습은 <맨 오브 라만차>에서 심판을 받으러 떠나던 세르반테스를 합창으로 배웅하던 죄수들의 모습과 겹쳐서, 참 오래고 기억되곤 했다.


43. (드립의) 한계치가 높다든가 엄격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건 진짜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예민한 거다. 그래서 그것을 웃으며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보통의 경우 아예 그걸 거부하게 되는 거 같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건 싫지만 그 곳에서 웃으며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 자체가 너무도 싫어서 대체 이건 누굴 위한 웃음인가 싶어지는 거다. 내가 그것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고 한편 그랬다면 진짜 난 어떻게 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어제 봤던 모 전시품 중에는 분노를 느낄 때마다 연필을 깎고, 스티커를 붙이고, 카운터를 넘긴다, 며 분노를 수치화 혹은 시각화한 작품이 있었는데 친구와도 이야기했던 거지만 각자가 예민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종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감정의 총량에서도 다를테고, 각각의 감정에서도 다를테다. 그 작가처럼 천번이 넘는 분노를, 새연필이 몽당연필이 되게끔 만드는 분노를 나는 느끼지 않겠지만, 다른 감정이 된다면 혹은 모든 감정으로 대상을 바꾼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감정은 담아두기보다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관계성과 결부되는 순간 난 숨죽이지 않을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글쎄 싶다. 웃음도 울음도 쉬운 사람이지만 그것이 내것이 아닌 타자를 향하는 순간이 항상 어렵고 조심스러워진다. 그건 아마 나 스스로가 느끼는 그 예민함에서 비롯된 거 같기도 하고. 그저 나는 너에게 상처이지 않기를 바랐던 것처럼 나는 그네들에게 희화나 동정따위의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한낱 내 자존심일테다.


44. “그 곳에 아직 뉴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45. "결국. 그렇게 극단적인 일도, 그렇게 절망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 삶엔 극단적인 일도, 극적인 일도 실제로 일어난다. 그저 그게 적어도 무섭거나 피하고만 싶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이왕이면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그리고 아마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역시 하나일 것이라는 걸 알고, 그 '앎'이 '믿음'으로 이어져서, 그 언젠가를 지탱해줄 수 있는 한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와 별개로, 신기한 일이 많은 하루였다.


46. 그것이 너를, 그리고 나를 갉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표정을 볼 수 없어 나는 늘 괜히 초조하다.


47. 마루야 마루야. 마루를 볼 때마다 본가의 몽이가 보고 싶다. 몇달만에 내려가도,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봐도, 매번 새롭다는 듯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무릎께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생각난다. 네가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 주어서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은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개들과 함께 했는데, 어릴 땐 무섭고 신기했고, 나중엔 외롭고 심심하겠다 싶었고, 지금은 보고 싶고 함께여서 다행이다 싶다. 오래오래 그곳에서 함께였음 좋겠다. 아프지말고, 담에 볼땐 같이 마실 나가자. 어릴 땐 지금보다 더 잔정이 없는 아이였어서 개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크게 애정을 가지진 않았었는데, 이제와 내가 없는 곳에, 어딘가 비어있고 누군가 떠난 그곳에 너라도 함께여서 참 다행이고, 그래서 가족이구나 싶다. 몽아 몽아 여름 잘 지내고 있니?

대학와서 오히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그래도 역시 그네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영향이 크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언젠가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때, 그리고 너의 삶을 함께할 용기가 날 때, 그때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매번 고민하는 거였다. 과연 그때가 올까. 결국 평생을 그리기만 하고 살지도 모르겠지 ;) 그래도 고향엘 내려가면 반겨줄 그 아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마 당신은 늘 그랬듯이 어느 순간 또 작은 한 생명을 데려올테니까.


48. "가정이란 걸 우습게 보지 마.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누구나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이 아닐 수도 있어."


49. 캣니스가 게일에게, 그리고 피타에게 각각 가진 감정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게일이 캣니스에게 가진 감정 역시 아마 사랑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피타는 어떨까. 그의 어디까지가 진실이었을까. 캣니스 역시 어느 순간엔 진실이었을까.

아무것도 아니었던 여자아이가 혁명의 상징이 되는 이야기, 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내가 원작에서도, 그리고 영화에서도 강하게 느끼는 건 결국 이건 캣니스가 상징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징이 되기를 '강요당한' 이야기에 가깝다는 거다. 캣니스 불타는 소녀, 아니 불타버린 소녀. 그 최후에 너에겐 대체 뭐가 남았을까.. 그날 이후 너에게 평화는 올 수 있었던 걸까.

헝거게임에서의 캣니스가 피타에게 가진 감정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도구'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불과했다면, 캣칭파이어에서 캣니스가 피타에게 가진 감정은 '죄책감'이라 할 수 있을테다. 하지만 모킹제이에서의 감정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피타가 캣니스에게 보이는 감정이 진실, 혹은 진심이라면 캣니스가 피타에게 보이는, 혹은 피타에게 요구하는 감정은 평화와 안정, 삶에 가까운 거 같다. 캣니스가 게일이 아닌 피타를 선택했던 것 역시 캐피톨도 반란군도 아닌 삶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캣니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대상은 프림과 루 정도였다는 게 내 생각. 물론 ㅅㅍ님께서 언급해주신 'the final real or not real question' 부분에 대한 해석은 진짜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겠지만.

헝거게임을 혁명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특징을 나누어볼 수 있다면, 적어도 내게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 물론 연인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가족애와 동료애 혹은 이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감정까지 모두 포함해서.


50. 모 연극을 볼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연예인이나 선망하는 대상에게 팬이란 존재는, 그리고 팬에게 우상이란 존재는 대체 뭘까.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아니고, 하물며 직접 만날 수도 없고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일텐데 그 관계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내 일도 아니고 하물며 내 일이 될 수도 없는 대상에게 왜 우리는 선망하고, 열광하고, 또 좋아하고, 슬퍼하고, 안타깝고, 걱정하고, 화내고, 안도하고, 행복해하는 별별 감정들을 가지는 것인지. 이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사실 ㅍㅋㄹ활동같은 걸 해본 적도 없고, 가수를 좋아해본 적도 없어서 그쪽 문화는 또 잘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도 그냥 부럽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10년 뒤에도 니가 연기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거, 변하지 않았음 좋겠다는 거.

51. “그것이 진짜 외교다.”

52. "모두가 나에게 객관적인 이 세상에서 끝없이 예뻐해주는 한사람을 네가 가질 수 있다면 보답같은 건 상관없다."

53. "우리는 요즘 이 화두로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싸우지는 않는다. 싸운다는 것은 자기입장을 고수하며 의견을 대치하는 것인데, 우리는 결국 같은 결과를 원하니까. 다만 우리가 삶에 있어서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은 조금 절망스럽다. 하지만 이 절망이 헤어질까봐가 아니라, 계속 사귀어야 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계속 걱정해야하는 숙제인 것 같다."

54. "지는 건 안무서워요. 졌을 때 혼자 있는 게 무섭지."


'Yunee: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상반기  (0) 2015.06.26
2014년 하반기 ~  (0) 2015.01.02
2014년 상반기 ~  (0) 2014.07.11
2014.05.12  (0) 2014.05.12
댓글
댓글쓰기 폼
«   2019/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241,363
Today
0
Yesterday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