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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5년 상반기

은유니 2015. 6. 26. 15:10

1. bit.ly/1KXf0GZ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인종/민족/지역 정체성까지도 '태어난' 것과 관계없이 정립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는 백인이면서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 아니면서 흑인이다.


2.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나라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줄 구성원을 아꼈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줬어."


3. 섹슈얼리티를 공부(?)하면서 느낀, 깨달은, 혹은 안도한 게 있다면 정체성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거다. 어느 날 동성애자가 된다 해도 그 이전의 이성애자로서 '나'가 부정되는 건 아니다. 에이섹슈얼로 살아온 '나'가 사랑을 한다 하여 거짓은 아니다. 그 무엇도 모르겠다 방황한다 하여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이해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내가 좋아했던 어떤 풍경을 끔찍히 싫어하고 싫어하다 피하고 피하다못해 지워버렸다 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그리고 좋아했던 시기의 '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게 항상 고통인 것만은 혹은 후회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도 온전히 '나', 그저 자연스러운 '나'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안타깝고 행복하고 행복했음 좋겠는 '나'다. 그 모든 순간에, 그 모든 순간이. 말하자면 그건 '자기부정'을 부정하는 순간이었다.


4. 나는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고, 또 희망이 숙청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럼에도 죽지 않는 불씨를 보았고, 결국 불이 되지 못하고 꺼진 불씨도 보았다. 그건 그대로 내 삶의 굴곡이 되었고, 실은 아직 모르겠다.


5. 욕하고/안재우고/(때론)안먹이고. 물리적인 폭력만 행사하지 않았을 뿐 기실 똑같은 폭력이다. 그 앞에 '짬'없는 이들은 너무도 무력하다.


6. 혀끝에 맴도는 말은 많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할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말인 것도 같고 하기 싫은 말인 것도 같다. 말하지 않고 또 그러니 묻지 않는다. 너에게 가는 길은 참 멀다. 그리고 난, 여기 매여 있다.


7. 2주간 왔다갔다 광화문 광장을 서성이면서 나는 할말이 너무 많아졌고 들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아져서 이걸 다 토해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아마 이건 오늘, 그리고 내일, 모레, 이어 한참을 지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을 거다. "언어"로 소화내는 게 힘들다. 하지만 언젠가 이걸 말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되겠지, 하고 숙제가 쌓여 간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즐거웁게' 울려퍼지는 이 노래를 나는 어쩐지 항상 가만히 듣질 못하겠다. 어느 노래보다도 더.


8. 할머니는 여섯살 여덟살 아이들의 내복을 샀다. 손주가 아닌 죽은 아들딸들을 위해.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할머니는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 그에 비해, 1년은 너무 짧다.


9. "기업과 사회는 청년들이 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자기 성찰과 준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줄 것. 잃어버린 청춘과 봄을 누릴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줄 것."


10. 심신이 피로해서 내 할일 제대로 못하고 여기저기 폐만 끼치고 있다. 더 최악인 건 개선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점차 나아지겠지, 가 아니라 점차 악화되어 가는 것만 같다. 그런 불안과 서러움과 그 속에 용기없고 발전없는 내가 퍽 슬프다.


휴식이 절실하다. 몸도, 마음도.


늘 불평불만에 힘들다 지친다 토로하며 이대론 못살겠다 말하지만 3월부터 일적인 '재미'와 그외의 여러 감정들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많이 '느낀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나는 존재한다고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역시 그와 별개로 퇴근이란 게 하고 싶습니다. 후..


11. 어떤 장소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장소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이를테면 대방역을 지날 때면 -그곳을 다른 이유로 수도없이 지나쳤음에도- 먼듯 가깝게 지내며 이따금 수다를 떨었던 녀석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집앞 갈림길에선 늦은 회의를 끝내고 "곧봐 여울"하며 헤어졌던 새벽 한두시의 밤공기가 아른하니 떠오른다.


12. "생이 삶보다 앞선다는 게 생존을 위해 삶을 희생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삶을 누리기 위해 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맞다."


13.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었으면 좋겠다. 마와리 안 돌아서 너무 좋다. 아침에 방치 당하고 푹 자서 너무 좋다. 오후 일정이 재밌는 일정이어서 좋다. 밤마와리 하나만 돌고 일찍 끝내서 좋다. 집에서 잘 수 있어서 또한 좋다. 날씨가 풀려서 좋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어서 좋다. 잘자고 잘먹고 잘쉬고 아프지 않는 것에서 오는 평범한 행복이 요즘 제일 값지다.


14. 하루에도 열두번씩 때려치고 싶고 그래도 내일을 준비한다는 건 열세번째의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걸 처음 들을 땐 우와 멋있다 하고 철없이 생각했는데 결국은 걍 참고 견디는 거 + 어쨌든 그게 현실인거를 벗어날 수 없는 듯.


15. 내가 나아간 건지는 모르겠는데 돌아갈 순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건 때론 위안이고 행운이면서, 때론 설움이고 불운이다. 오늘 받은 모든 축하의 말이 다 감사하고 행복한데 뭔가 뜬금없이 제일 인상깊은 건 "바쁘지만 덕질도 계속 하고, 건강도 잘 챙가시긔 >_<" ㅋㅋㅋㅋㅋ


16. 표현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지만 때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건 당신이 타인이기에, 그래서 존중받아야 하기에, 그리고 나 역시 나 자신이고 싶기에. 물론 더 옳은 것은 서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겠지만 때론 옳은 것보다 좋은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쩌면 그 모든 거리는 양자 사이를 잘 왔다갔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겨진 것들일터다.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가깝다는 일종의 확신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실상 전자와 후자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결국 상황이다.


허상을 믿기엔 의심이 많고 그것을 놓아주기엔 울음이 많다. 그 바탕에는 다시 이기심이 있다, 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이기심의 기저에 있는 생존본능이 아릿아릿하다. 그건 잘 살고 싶다는 긍정적 발상이 아니라 너의 평화를 그리고 나의 안식을 모두 앗아가고 이 상황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무로서 가만히 살고 싶다는 부정적 발상이 강하다. 그게 날 비참하게 만든다.


17. 어떤 매체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를 비교해보는 건 항상 재밌는 일인데, 그 '지칭'이 가지는 정치성을 가장 조심했던 곳은 역시 교지였다. 언젠가는 그런 것에 점차 무감각해지거나 회의하게 되겠지. 그럼 거기서 난 뭘 느낄까. 뭘 생각할까.


18. 친구랑 아저씨 공연 보고와서 감상: 해준배우 본 걸 자랑하고 싶은데 어따 자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19. 스트레스 관리가 안되니까 스트레스 관리가 안되는 나 자신 때문에 또 스트레스가 쌓인다. 휘청, 하는 순간순간 도무지 어떻게 이 매듭을 풀고 넘어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나는 그 언젠가의 나처럼 노래로 도피를 하는데, 그것이 전혀 위로나 힘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화가 없다. 그 언젠가의 언젠가엔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하다.


20. "나 자신을 격리시키지 않는다."


21. 문인과 글쟁이와 기자와 학자 사이의 미묘한 간극과 미묘한 겹침이 아직 어렵고 모호하다. 그리고 결국 내가 바라는 글이란 무엇인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고민만 가득하다. "Questionary"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안도나 공감을 떠올려보면 그거 자체가 하나의 입장이고 범위가 될 수 있겠다 싶다.


22.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23. "안과 밖의 은유는 그 '안'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위계로서 성립한다. 안과 밖의 은유, 그 위계의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의 한편에서는 배제의 논리가, 그 반대편에서는 모방과 추격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리고 두 논리에 공통된 것은, 물신의 논리다."


24. "직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라는 류의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데, 나는 한 사람의 대체 불가능함이란 그 사람의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직장이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나를 적어도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내가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내가 퇴사해야 할 이유로 다루지 않고 함께 풀어갈 문제로 다루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서 나를 ‘세일즈’하지 않고 살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여기에 필요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어필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가진 게 없어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도 맞지만, 어떤 건 가지고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도 맞다는 것을. 언제든 엉덩이 붙이고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여기저기 씩씩하게 싸돌아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런 부빌 언덕도 없는 사람들더러 자꾸 도전하라고, 한 곳에 머물지 말라고 부추긴다."


25. 거의 한달을 벼르다가 어제 드디어 공무도하를 봤다. 낙엽으로, 눈으로, 강물로 장난치는 모습이나,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모습,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잊지 못해 마음에 담아둔 그 이름과 옷가지를 품은 모습들이 오래간 기억에 남는다. 결말을 알고 봤는데도 먹먹함이 사라지지 않는 건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서도 있고, 할아머지 장례식 때 정말 곱게, 절하시던 할머니 모습이 아련히 남아서도 있고, 영화 속 두분이 픽션보다 더 픽션처럼 아름다워서도 있을테다.


대개는 <님아...>라고 줄여부르던데 <공무도하>라는 말에서 오는 그 어감과 쓸쓸함이나 간절함이 퍽 좋다. 물론 한글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온전히 부를 때가 더 좋긴 하지만 :).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죽음 이후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죽음 이전에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먼저 갈 당신이 그 강 너머에서 혼자 있을 죽음 이후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는 처음이지 않았을까.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만큼의 온전한 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온전히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가. 그것이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성격의 것일까.



6개월간의 수습일지는 다시 정리해야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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