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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늘을 삼킨 느낌
난 가끔 너의 말이나 태도가 불편하고, 그렇지만 그 불편함이 결국은 쓸데없는 내 민감함 때문일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다. 그리고 그 문제는 항상 다시 돌아와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따금씩 이런 상상을 하곤 해. 내가 만약 나는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뭐라고 반응하실까.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스스로 자각하기에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소위 여성스럽다고 하는 옷을 입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 했다면 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비슷하게 상처받을까, 역시 그렇구나 할까.
비슷하지만 또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민족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고, 한국이 좋은 나라였으면 싶으면서도 굳이 한국이어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응원하는 행위가 실은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 거기에 익숙하기도 하다. 친구는 나에게 넌 너무 마이너리티 '지향'적이라고 말했지만, 글쎄 결국은 그 모든 마이너리티로부터 벗어나있고 결국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난 여전히 여성이고,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난 여전히 한국인이고, 아마 한국인일테니.
결국은 '나'의 정체성 문제인데, 그것이 항상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를테면, 나는 언제쯤 아버님께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진심을 담아서 나는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거야. 난 여자를 좋아해, 라고 말하는 건 아마 상상일 뿐일테지만, 난 아마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그리는 그런 평범한 가족의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사실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정말 다른 맥락에서, 나는 아마 진주를 평생 그리워할테고 그곳에서 대가족과 북적이며 지냈던, 동네 친구들과 늦게까지 떠들며 놀았던 시절을 즐거이 말하겠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는 그래도 역시 아마 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건 당신 때문이라기보단 내 성격이고, 그렇지만 아마 난 영원한 반항아였기 때문에 모든 사항에 대해 당신과 대립하길 원했거나 혹은 그냥 서로 다른 사람이었기에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치만 모든 건 '아마'니까 난 말하지 않을거다.
2.정작 공연을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요즘 ost를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건데, SOML이나 NTN이나 둘 다 '앨빈'과 '가브리엘'이라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극의 해석이나 인물관계에 대한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앨빈과 가브리엘 모두 극 진행상 초반에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SOML의 경우 공연 시작 자체가 '앨빈'의 죽음과 그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하고, NTN은 1부의 초반에 죽은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엄마'로부터 사건이 진행되니까) 실제 분명히 '앨빈'과 '가브리엘'의 역할을 하는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가 대사를 하고 다른 인물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관객들한테 보여준다. 때문에 사실 대체 그럼 저기 무대 위에 있는 앨빈과 가브리엘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달까.
그니까 이를테면, 저기에 있는 앨빈과 가브리엘은 실제 죽은 앨빈/가브리엘의 영혼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주체성을 지니고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캐릭터들이 회상(내지는 상상)하는 환상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인지 하는 거다. SOML은 2인극의 특성상 저기 있는 앨빈이 실재하는 것인지, 혹은 톰이라는 인물이 과거의 앨빈을 기억하고. 죽은 이후의 앨빈이 자신에게 '그럴 것이다'는 가정 하에 상상해낸 것인지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고, 때문에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NTN의 경우엔 처음부터 엄마가 죽은 아들을 그리는 환상이라는 전제하에 극이 전개되지만(엄마가 아닌 다른 인물들은 가브리엘과 시선을 마주치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2부의 마지막에 가서는 아빠도 결국 아들을 본다는 게 밝혀진다. 또한 NTN의 아들은 단순히 엄마의 환상이라고 하기엔, 8개월 아기 때 죽은 아이의 영혼이 성인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엄마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 자신의 주체적인 넘버도 가지고 있어서 약간 미묘해진다.
엄마의 자살시도는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엄마의 심리적 방어기재가 작동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빠로부터 엄마를 '내가 아는 죽음의 세계'로 이끌고 가고자 했던 아들의 원망이었을까. 엄마가 바라보는 환상의 존재인 아들의 모습과, 끝내는 아빠 역시 아들의 환상을 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 아빠가 바라보는 '환상'으로서 아들의 모습은 어떻게 서로 다르고 또 어떻게 서로 같았을까. 만약 엄마와 아빠가 바라보는 '환상'이 같은 환상이었다면, 그건 정말 단순히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죽음으로 혼자가 된 아들의 영혼이 극중에서 실제 그 의지를 가지는 양 활동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SOML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고 만다. "내 송덕문 다 썼어?"하고 물어보는 앨빈은 정말 자신이 죽은 이후 홀로 남겨진 친구를 걱정해 지상에 남은 앨빈의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톰의 회한과 슬픔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 만약 전자가 아닌 후자라면, 그런 톰의 모습은 타자가 보기에 그저 자기위안이고 자기만족이었을까, 아니면 NTN에서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친 사람에 불과했을까. 그는 송덕문을 결국, 완성했을까.
만약에 NTN이 다시 무대 위에 올라오고, 이정열 배우께서 아버지 역할을 다시 맡아주신다면 "그래서 아빠가 보는 아들은 엄마가 보는 아들과 같았을지, 달랐다면 어떤 점에서 달랐을지/같았다면 결국 가브리엘은 누구라고 여겼을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엄마는 결국 치료를 받은 후 아들을 보지 않게 되었을까, 아빠는 아들의 환상을 '인정'한 후에 어떻게 살아갔을까. 엄마는 가족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끝내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아빠마저 아들의 영혼에 사로잡히고 말았을까.
그 끝은 결국 To be 였을까, 아니면 Not to be 였을까. 이건 NTN에서도 SOML에서도 궁금한 점.
3. "다만 우리는 우리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애쓸 뿐."
4. 마음이 커질 수록 말은 준다.
그 말로 담아내지 못한 말들은 갈곳을 잃어 둥둥 떠다닌다.
표현하지 않다보니 표현할 수 없게 되고, 표현할 수 없다보니 마음 비스무리했던 자국만 남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전달인데 말이야.
그래서 결론은요,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또 많이 쓰고 많이 말하자는 거.
너와 얼마나 다른지의 끝을 보기 위함이 아닌, 그 차이를, 그걸 굳이 말하는 것이 왜 내게 중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한.
너와 얼마나 다른지의 끝을 보기 위함이 아닌, 그 차이를, 그걸 굳이 말하는 것이 왜 내게 중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한.
5. "이 모든 것을 말하면 짤립니다." 하지만 언니는 그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짤렸"고 책임져야 할 고양이 두마리와 부양해야 할 부모와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한 동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원증도 없는 경리에, 야근수당도 월급인상도 없이 그냥 꼬박 일해서, 겨우 백몇십만원 받는 그곳에서,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만 하는 일들이 참 많았었다. 그런데도, 그딴 말하는 이사 더 이상 안봐도 되서 참 좋겠다고 말할 순 없더라.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앞으로 일할 직장에서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과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기를, 이라고 그래도 작게 빌어보는 수밖에. 당장 7월부터가 걱정일텐데도 언니는 웃는다.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건, 언니 잘못이 아니었잖아, 하는 말도 다 의미없는 위로인 거 같고,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해? 하는 말도 괜한 걱정을 부추기는 것만 같고, 괜찮아 쉬면서 더 많이 고민해보고 찾아보면 될거야, 라는 말은 어린 애의 우스운 소망인 것만 같다. 슬펐다.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앞으로 일할 직장에서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과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기를, 이라고 그래도 작게 빌어보는 수밖에. 당장 7월부터가 걱정일텐데도 언니는 웃는다.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건, 언니 잘못이 아니었잖아, 하는 말도 다 의미없는 위로인 거 같고,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해? 하는 말도 괜한 걱정을 부추기는 것만 같고, 괜찮아 쉬면서 더 많이 고민해보고 찾아보면 될거야, 라는 말은 어린 애의 우스운 소망인 것만 같다. 슬펐다.
6. 어린 아이처럼,
7. 다시 연락이 닿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쁠 줄 알았더라면, 그동안 그렇게 망설이지 말았다면 좋았을 것을. 지나간 시간만큼의 공백이 이제와 너무 아쉬워, 더욱 절실해지게 되는 것같다.
8. "검은 정장 참 진한 향 여기저기 꽃다발과.. 작고 필요없는 그림 하나하나 기억나.. 이런 게 남아있고 엄만 그렇게 사라져.." 엄마의 목욕가운은 마치 엄마의 유산인 것처럼 내 손에 남아있는데, 그 때 그 당시의 풍경도 소리도 모두 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정작 엄마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사라져가서 끝내는 떠올릴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공감했던.
"여을아, 너는 지나간 날들을 추억하는 사람이니? 아니면 잊어버리는 사람이니? 난 네가 추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곱씹고 또 곱십어서 절실해졌으면 좋겠어."
"두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나는 "한 사람"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친구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하고, 부모자식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이기도 하고, 결국은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끝내,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이야기.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 그것은 기억할 수 없는 과거. "못본 장면". 돌이킬 수 없는 사건. 그리고, 결국은 마지막에 가 혼자서 정리해야만 하는 잔해.
이제는 내 몫으로만 남겨진 "끝"에 너의 목소리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랬어. 그것이 비록 나의 자기만족일지라도, 혹은 자기위안일지라도.
9. 빙글빙글거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극적인 일은 실은 없다는 것도, 어쩌면 실은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일도 있다는 것도 안다.
10. 아내의 피를 닦던 붉은 손, 평범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던 엄마, 불을 켜요 라고 말하던 딸, 같이 미쳐주겠다던 남자친구, 이제는 없는- 자신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아들. 이제는, 커버린, 보내줘야 할, 아들. 그 무엇보다도 항상 항상 잘 될거야 라고 말하던, 늘 가족을 기다리며 빈 집에 불을 켜두었던 그. 자신의 슬픔보다도 아내의 고통을 먼저 생각했던 남편. 늘 두번째여야 했던 딸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던 아빠.
11. 감정을 잘 표현하는 만큼, 감정을 잘 추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잘 기억하고 담아두는 것만큼, 잘 망각하고 현재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 To be 하는 만큼, or not to be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
나는 언제나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그래서 그것이 사라져버린다면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걸까, 변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었으니까. 하지만 아마도, 정작 중요한 것은 잘 기억하되 잘 망각하는 법이었지 않았을까. 그것을 붙잡고 끝내는 놓아주지 못하고 마냥 서성이곤 했던 것이, 끝내는 누구보다도 한참 뒤에서야 그래 이제는 하고 발을 떼는 것이 못내 힘들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감정을 추스리는 것이 힘들고, 그만큼 잘 잊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서러워, 그래 이제는 하고 발을 떼버리는 순간 사라지는 그때가 못견디는 것이다.
12. 꼭 아파야지 그 장기가 어디에 붙어있었는지, 그리고 정상적일 땐 어떤 일을 했었는지를 알게 되는 게 참 아이러니.
13. 꿈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고백을 하고 그 사람이랑 데이트도 했다...?
14. 당신의 그 말이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굳이 누군가는 불편해지고 누군가는 불쾌해지는 말을 하고야마는 저의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유쾌한 어조가, 가슴속에 맺혀 토해낼 수 없을만큼 응어리져 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괴롭다 느껴온 것은 아마 형체없는 유령일 따름이었을테다.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내는 적의 가득한 환영에 허우적대며, 하루, 하루를 곱씹을 따름이었다. 때문에, 그곳은, 언제까지고 유령과도 같을 것을 알고, 그렇기에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며, 나는 그저 망연히 그 '앎' 속에서 애써 눈길을, 발길을 주지 않으러 애쓰며 괜찮은 척 지나칠테다.
15. 목이 따끔따끔 시큼새큼
지난 번 이후로 다시 트위터 기록 중 일부.
지난 번 이후로 다시 트위터 기록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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