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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적이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작은 단서만 하나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찾아올 거란 얘기잖아.


그 별자리들은 내게, 이 세상이 신비로운 까닭은 제아무리 삼등급의 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사자도, 처녀도, 목동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별자리교실의 설명대로라면 저 별이 베가니까 직녀별일 테고, 저 별이 알타이르니까 견우별이겠구나. 어떻게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멀리 떨어진 두 별이 서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까? 그때도 세상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걸까? 아무리 외로워도 여름밤이면 다들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됐겠네. 저렇게 멀리 떨어진 별들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겠다, 그지? 고개만 들면 거기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별들이 보였을 테니까.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보호색을 지녀 자기를 감추는데, 반딧불이는 왜 그렇게 환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걸까?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먼 지구까지 빛을 보내는 저 별들처럼 반딧불이들고 고독한 걸까? 그렇기 해서라도 서로 연결되려고 보호색 따위는 기꺼이 던져버린 것일까?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유럽에 가면 안트베로펜에도 꼭 가봐. 우리 외할머니에게는 평생 그렇게 멀리서 반짝이는 별 같은 곳이었으니까. 외할머니 표현에 따르먼 거기 가면 여기 금강보다는 좀 크지만, 어쨌든 스헬데 강이라는 게 있고, 여기 무주 사람들보다는 역시 키가 조금 크지만, 어쨌든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벨기에 사람들이 있어서 몰래 연애도 하고 사기도 치고, 그래서 배를 타고 멀리 아프리카로 도망도 간다고 하니까. 세상은 그렇게 넓다고, 그렇지만 또 사람들은 그렇게 어딜 가나 똑같다고 하니까. 네가 거기 가서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게 돌아와서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들려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리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 인도의 시인이었던 카비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카비르. 신분이 뭐냐? 카비르. 직업이 뭐냐? 카비르. 나는 이 세 번의 카비르라는 대답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나 역시 몇 번을 스스로 물어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물라 나스루딘이 마당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어서 이웃사람들이 뭘 찾느냐고 물었다. 물라 나스루딘은 바늘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이웃사람들도 물라 나스루딘과 함께 바늘을 찾았다. 하지만 마당을 아무리 샅샅이 뒤저도 바늘이 나오지 않자, 이웃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아무리 찾아도 바늘이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물라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바늘을 잃어버린 곳은 집 안이니까. 그럼 집 안에서 바늘을 찾아야지, 왜 마당에서 바늘을 찾는 것인가? 그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바늘을 찾는단 말인가.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자, 눈을 감아봐. 그리고 가만히 느껴봐. 그 막막한 어둠이며, 계속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며,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마치 지금 막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들을 느끼듯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부분에는 '인간의 수명이 70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인간의 수명이 70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

1. 38300리터의 소변을 본다.
2. 127500번 꿈을 꾼다.
3. 2700000000번 심장이 뛴다.
4. 3000번 운다.
5. 4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6. 400000000000개의 정자를 생산한다.
7. 540000번 웃는다.
8. 50톤의 음식을 먹는다.
9. 333000000번 눈을 깜빡인다.
10. 49200리터의 물을 마신다.
11. 563킬로미터의 머리카락이 자란다.
12. 37미터의 손톱이 자란다.
13. 331000000리터의 피를 심장에서 뿜어낸다.

할아버지는 4번과 7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손수 종이에다 계산을 했어. 이번이는 곱하기 문제가 아니라 나누기 문제였어.

54000÷3000=180

하루에 사십일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게 된 '나'와 '너', 그 사이를 이어줄 동사는 오직 '사랑해'뿐이라는 사실을.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 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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