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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2년 하반기~

은유니 2013. 3. 23. 03:00
1. 가끔씩 내가 쓸데없이 예민해서 과민반응 하는 건지, 사람들이 무심한 건지를 구분 못하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넌 감각이 살아있는 게 아닐까? 라고 하더라.

난 솔직히 아직도 내가 어떤 상황에서 웃질 못하고, 그 한 단어 한 표현때문에 혼자 울다가 화내다가 하고, 그 불편함이나 그저 '참을수없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게 남의 무심함이 문제라면 그를 탓하고 이러이러하니 잘못이다 라고 말하면 되겠지만, 나'만'이 그렇게 힘겨워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거라면 내가 이상하고 내가 잘못된 건가? 하고 자기비판에 들어가버리다보니, 결국 결론은 내가 문젠가? 하게 되는 거.

맞부딛혀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오해나 잘못을 해결해나가고 그걸 인식하고 이해하고 설득해나가면 되는 문제겠지만, 그 과정에서 견디지 못해하고 힘들어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 결국 내가 되어버리니까. 아 그래 내가 떠나면 되는건가? 하게 되어버려서.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보다는 할수있는 말을 고르게 되고, 화나고 짜증나고 답답한데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고, 그러니 하지못한 말들은 자꾸 쌓이고 쌓여서 봇물이 터지질 못하고. 그게 또 무한히 반복되서 문제는 공유되지 않고 나만 계속 고민하고.


2. 사실 해리포터 책/영화 7편이 나왔을 때 1편으로부터 10주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해리포터를 통해서 알게된 친구가 '우리 곧 있으면 처음 만난지 10년이야...'라고 말했을 때 식겁했던 기억이 난다. ㄱ,그,그래 우리 벌써 그만큼 나이먹었구나. 꼬꼬마 열네짤이었는데 내후년이면 둘다 대학도 졸업하겠네?


3. 요즘 1) 하루에 책 1챕터 이상 읽기 2) 하루에 글 한 페이지 이상 쓰기 3) 하루에 그림 한 장 그리기 4) 하루에 30분 이상 걷기... 같이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지키고 있는 게 3번이랑 4번!ㅋㅋㅋ 여유롭게 걷는 거 너무 좋다! 주로 걷는 거리는 집~신림역 아니면 집~학교. 요즘은 학교 갈 일이 없어서 보통 신림역 쪽으로 도림천 따라 걷는 중 :) 모님은 녹두에서 신림역까지 30분 이나 걸리냐며 내 걷는 속도를 비웃지만 30분도 빨라진검니당.. 아 그리구 날씨 조금만 더 따듯해지면 카메라 가방 사서 5) 하루에 사진 한 장 찍기 (혹은 일주일에 사진 다섯 장 이상 찍기) 목표도 실천해야징 ~_~


4. 나한테 밥 먹는 건 의무적인 거라서 밥이 되어가는 냄새는 약간의 스트레스가 함께 되어 있는데, 물 끓는 소리는 참 좋다. 얼른 따뜻한 보리차 컵에 담아서 책 읽고 싶다.


5. 슥슥 그림그리다가 생각나는 대로 날짜를 적었는데 달력을 보니 오늘은 3월 2일이 아니라 3일이더라. 그리고 아이들은 내일 개강을 하겠지. 하지만 난 아직도 갈팡질팡하며, 이 장 위에 서서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어떻게 넘겨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뿐.


6. 풍족하게 사는 이를 그다지 부러워한 적 없고, 내가 부족하게 산다고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과외아가를 보면 참 뭐랄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게 자신의 의지라는 걸 밝히는 데 익숙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만약 그 나이의 나도 그 녀석만큼 솔직하고 담백했더라면 지금의 길은 많이 달라져있지 않을까. 이곳에 있는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썩 즐거워하는 편이지만!) 그런 실현불가능한 과거 선택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7. 희망식당 기획 때문에 자꾸 이것저것 쌍차 소식도 접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무언가 가슴에 꽝꽝하고 맺히는 것만 같다. 지나간 기획을 돌이켜볼 때마다, 길 위의 삶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그들과의 대화가 자꾸만 자꾸만 떠오른다. 여의도 앞 시간강사 농성텐트도 벌써 2천일인데... 숫자만 자꾸 커져가는 게 소리없이 쌓이는 눈처럼 매섭게 느껴진다.


8. 안쓰럽다. 짜증난다. 웃었으면 좋겠다. 멈추어있는 게 싫다. 눈치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겠다. 싫다. 좋겠다. 싫다. 싫다. 싫다.


9. 본가 내려올때마다 싸우지 않기 위해 삼키는 말이 늘어나는 것 같다. 감정적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꾹꾹 참으며 논리정연하게 말을 다듬는 것과는 다르게, 이 문제는 결국 모두 비이성과 감정의 영역이고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이 전제되는 것일 수밖에 없어서, 항상 하지못하고 할수없었던 말들만 쌓여가는 것 같다. 과거와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건 너무 어렵당...
 

10. 하루에 딱 열두번 밖에 다니지 않는, 평균 배차간격 1시간 12분에, 잘못 놓쳤다간 세시간까지 기다려야 히기도 한 버스.. :)


11. 이 사람이 이런 역할의 연기도 하는구나! 이 사람이 이런 느낌의 소설도 쓰는구나! 이 사람이 이런 색감의 그림도 그리는구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너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 사람 특유의 분위기(문체? 그림체?라고 표현하기도 미묘하게 글이나 그림마다 또 달라지는 거 같아서, 그냥 붕 떠서 분위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듯한?)는 남아있는 게 또 너무 좋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

장편소설을 처음 접한 사람의 단편소설을 읽을 때 느낌이 다르고, 그 사람이 쓴 시를 읽을 때 느낌이 또 다르고, 만화를 처음 접한 사람의 일러스트를 볼 때 느낌이 또 다르고, 흑백사진으로 접한 사람의 컬러사진을 볼 때 또 느낌이 다른 것처럼. 그런데 그 전반을 통틀어서 흘러가는 분위기~는 어쨌든 유지된다는 느낌. 그건 정말 '느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 그 사람 냄새가 난다"는 정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만.


12. 휴학해서 좋은 점은,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중고등학교 때처럼 많이 표현하고 싶어진다. 물론 절대적인 그 양이 늘어나지도, 그 깊이가 더 깊어지지도 않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은 기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지만, 많이 "보고"...에 정말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는 게 문제지만ㅋㅋㅋ 휴학 전과 비교해 많이 보는 것으로는 웹툰과 영화와 연극/뮤지컬이... 그리고 그와 비례해 내 누적지출이..

요즘은 모 언니님의 영향으로 그림도 다시 그리고 있다. 물론 예전에 그렸던 것에 비해서 완성도는 훨씬 떨어지지만ㅋㅋㅋ 고등학교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연습장 사서 낙서하고, 물감이나 색연필 가지고 자주 놀았었는데 대학와서는 읽고 쓰느라 바빴지.. 초등학교 땐 만들기랑 종이접기를 좋아했고, 중학교 땐 정형화되지 않은 미술시간을 좋아했었고, 고등학교 땐 미술=서예라서 싫어했지만 친구들하고 연습장 하나 가지고도 몇 시간씩 잘 놀았었는데, 대학 와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지..


13. 미디어와 미디어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효과란 가끔씩 깜짝 놀랄 정도로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
 

14. 가끔씩, 아 내가 이 사람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노래나, 작품이나, 어떤 장소나, 기타 등등에 대해서도 모두. 내가 해리포터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내가 걷는 걸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밤의 동해바다를 보았어서 참 다행이다. 뭐 이런 것들. 물론 다행이 아닌 경우도 많이 있지만은, 그 다행인 것들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시너지효과나, 혹은 예기치 못했던 행운이나 만남같은 것들이, 이따금씩은 그때의 나를 완전히 사로잡거나 변화시키곤 한다.
 

15. 항상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내가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는 것인데, 대체 언제까지고 섬뜩해하고 무서워하면서 과민반응을, 지나친 상상을, 근거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껴안고 가려는 것인지 스스로도 한심스럽다. 근데 한심하면서도 그 고민을 놓치 못해서..

힘들다고 도망치는게 뭐가 나빠. 하고 생각하는 주의인데, 그것이 내가 죽지 않는 이상은 도망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사실 그 모든 게 내 근거없는 두려움으로 인한 상상이고 나의 지나친 과민반응으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이다"라는 걸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라서, 무한히 극복해낼 수 없는 두려움을 스스로 재생산해내는 기분이 든다.
 
감정이입하지 않기. 깊이 생각하지 않기. 지나치게 상상하지 않기. 예민하게 느끼지 않기. 쓸데없는 의미부여하지 않기.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여기게 된 걸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도 되는" 존재인 걸까. 난 어째서 단 한걸음도 나아진 점이 없을까.

어떤 이야기 속에서 지나친 '감정과잉'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내가 느끼고 표현하려 하는 감정들이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내뱉는 것을 주의할 것! ;)


16.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보다도, 혹은 당신을 "진짜로"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보다도, 벌써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다시 한번 더 당신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


17.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이따금씩 생각나는 어구들이 있다. 그 말들 덕분에 그 잉여부리던 시간이 의미가 있어지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 한 마디의 말 덕분에 다른 말들에 숨죽일 수 있을 만큼 또 꾹꾹 그 시간이 채워지는구나 싶기도 하다.


18. 지금처럼 폭설이 내릴 때면, 그리고 지난 여름처럼 연이어 태풍이 온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문득문득 내리는 저것 사이로 포이동과 대한문이 떠올랐다. 길 위에서 쌓이는 건 비와 눈만이 아니라 그네들의 삶이기도 했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이불 속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며, 와 오늘 눈 진짜 많이 오더라, 하며 너스레를 떠는 게 얼마나 행복한 풍경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 만남과 관계맺음은 중요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다 무엔가 싶기도 하고, 참, 손끝이 시리다. 겨울이 많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너에게 당신에게 그대들에게도 전부. 견딜 수 있는 만큼 또, 견디어갈 힘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얼른, 이 추위가 끝나기를. 많이 쌓이지 않고 곧 녹아 없어지기를.


19. 고등학교 때 친구가 2주 뒤에 결혼을 한다. 녀석이 12월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한달 쯤 전에 접했는데, 아 걔는 그 사람이랑 결혼까지 할 거 같더라 싶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막상 진짜 결혼식이 다가오고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 친구 카톡 프로필에 청첩장이 올라와 있었는데, 거기에 아기그림이 있어서 설마?했는데 며칠 전에 청첩장을 직접 받아온 다른 친구가 임신한 거 맞다고 그러더라. 그것도 벌써 8개월! 결혼식 하자마자 이제 애기낳는단 소리 들리겠다. 그래도, 소위 속도위반이라고 남친네 가족에게서, 친구네 가족에게서 나쁜 소리 안듣고 행복하게 결혼식 올리는 거 같아서 좋아보인다고 해야할지. 그래도, 역시 빨리빨리 결혼시켜서 싱글맘으로 안만들려고 하는 거 같아서 웃프다고 해야할지.

졸전도 끝나고 이제 졸업식만 기다리고 있을 녀석이, 졸업하고 나서 뭐하고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랑 아빠랑 함께 어쨌든 행복하길.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어서 많은 것을 묻지는 못하겠지만 :)... 정말 애기같은 아이였는데, 애가 애를 키우겠구나 프흐ㅠ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이 얼른 보고싶다. 예쁘겠지, 예쁠거야. 응.
 
고등학교 때, 어째서 우리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먼저 접해야만 하는 걸까, 어째서 우리는 누군가의 행복보다 누군가의 죽음을 먼저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붙잡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꼬박 몇 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는 다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구나 싶어서, 설레고 나도 덩달아 행복하고, 그리고 또 덩달아 슬퍼졌다. 어째서일까?..
 

20. 잘 자다가 3시에 눈이 떠졌다. 세상은 아직 고요하고, 잠들어 있다.
 

21.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기 이전에 "괜찮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기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실은, 괜찮기도 했다. 하지만 꺼내어보지 않아도, 굳이 잊으려 해도, 혹은 끊임없이 침잠해보아도,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무섭다던가,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왔던 거 같은데 실은 무엇이 무서운 건지도,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로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기분에 휩싸이고 말 때가 있다. 결국, 도망치지도 못한채, 그렇다고 마주하지도 못한채. 내 걸음은 자꾸만 자꾸만 느려지고, 빗겨가는 풍경은 어느새 아침이었다.


22. 그런 상황이 있었다. 그래, 내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원래의 이유는 그게 아니었는데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 가장 핵심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그래서 괜히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며, 웃음으로 무마하려 하는.

나는 언제쯤 내가 가장 어렵다고 여기는 일을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될까.


23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매였다.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거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24. "세상은 극적인 드라마나 하늘의 계시가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답다"


25. 누군가의 행복이 또 다른 누군가의 행복과 trade-off 되어야 한다면, 나는 정말 그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물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당신은 행복을 찾으셨냐고.


26. <보통의 연애>
"형 몫까지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요? 그렇게 살라는데.."
"꿋꿋하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요? 그렇게 살라는데.."
 
"그냥 평범하게, 보통으로 하는 연애같은 거, 해야겠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그런 게 뭐 따로 있나요. 사랑하니까 보고싶고, 보고싶으니까 자꾸 만나고, 그러면 다 보통의 연애죠."
 
"김윤혜 보아라 너는 잘못하지 안했다 니 갈길 가라 괜찮다"

"당신은 누군가의 딸이기 이전에 그냥 당신인거에요"


27. "그 옷이 아무리 좋은 양털로 지었다고 해도 그 양털로 입고 있던 것은 양이었으며, 양이 아무리 좋은 양털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양은 양 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8. 언젠가 취업하란 소리가 남친 없냐는 소리가 결혼과 아이로 이어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끔찍했다. 이건 친구/교지와의 술자리에 익숙해져 있다가 처음으로 교수님과의 술자리를 가졌을 때 느꼈던 소름끼치는 불편함과 마찬가지. 내가 거부해왔던/할 수 있었던 그 무언가들이 내 눈 앞에 진짜 펼쳐지게 되고, 그것이 멀지 않게 다가왔음을 자각해야 할 때.
 
당신들이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건, 그리하여 이렇게 북적북적하게 모여 지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이 맞는데, 내겐 그 가족체계가 애만큼 증이 강해서, 본가는 편하면서 동시에 도망가고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항상 모르겠는데, 가족이라는 굴레와 특히 '대가족'에 좀 유달리 가깝게 지내는 이 관계가 아니었다면 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티어내는 것일까. 애라서? 증이라서? :@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그 이상하기 짝이 없는 가정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ㅋㅋ?'하고 생각해왔지만, "언젠가 내가 피할 수 없는 강권/성폭력적 술자리를 마주하게 된다면?"과 같은 질문엔 어쩐지 심각해지고 만다. 응당 피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 시간이 또 내겐 가족하고도 비슷한 불편함과 아득함으로 느껴졌어서 사실 도저히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눈감고 싶어졌다.

머리가 클수록 싫어하는 상황과 싫어하는 사람의 태도만 늘어나서 -_-; 내가 너무 스스로를 구별짓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거기에 녹아들고 싶지는 않고. 끌끌.. 어떻게든 한번 생겨난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게 되어버리니.


29. 내가 이미 충분히 흐름에 물들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는 거다, 라는 말을 들었다. 으하,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라는 말에는 지금이 지속될 수 없으리라는 의심과 변화가 내게 적응을 요구하리라는 불안이 담겨있으니. 그것을 나는, 거부할지 회피할지 수용할지, 아니면 넘어설지도 역시, 결국 마음의 문제. 인식과 태도에 의해. 아니면 지금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면 될 일. 끄아 :@ 밍숭맹숭 싱숭생숭.

정답이 없는 길인데, 정답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답은 내려야 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싫은 거 같다. 나는 언제까지 결론을 유예할 수 있을까. 끌끌.


30. 조금 더, 천천히 가도, 괜찮은 걸까. 이 이상 천천히 간다는 건, 실은 괜찮지 않은 걸까.



휴학을 전후한 즈음부터 트위터 기록 중 일부. 블로그가 더 찾아보기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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