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Yunee:/Diary―

2013.03.22.

은유니 2013. 3. 23. 01:59


Eva Besnyö



1.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마지막 교지가 나왔다.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일 거라고 예상을 하고 시작하기는 했으나, 하는 중간중간에도 끊임없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 앞으로 한 학기를 앞으로 한 권의 책을 더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오다가 마감을 끝내고 기획사 작업을 할 즈음에 아 이게 내 마지막 책이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것일까를 고민해왔던 거 같은데, 막상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기소개와 편집후기를 쓰면서 갈팡질팡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제 와서야 처음으로 무슨 말을 적으면 좋을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일주일 간을 써내지 못했던 거 같다. 결국은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은 말들이었겠지만, 그것으로 하여 내가 교지에서 하는 마지막 말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묘했다. 친구에게도 한 말이지만, "교지관악 편집위원 여울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없으리라고 생각하니, 그걸로 내가 지금껏 해온 대학생활 중 일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처음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듯, 항상,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를 망설여왔었다. 입 안에 한 가득 하지 않으면 못배기는 말들이 정말 한가득인데, 그걸 어떻게 남들에게 조리있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그리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한 줄의 글이, 한 장의 단어가 가지는 힘을 믿는다고 스스로 몇 번이고 곱씹어 다짐하고 몇 번이고 되새겨왔지만, 실은 믿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끝맺으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무엇이었을까. 끝내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배겼던 것일까. 그 한가지를 붙잡아내고 그것을 토해내듯 글로 써나가야 했던, 그 마지막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내가 이번 교지에서 한 이야기들이 그 "마지막"이라고 할 수는 없을테지만,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은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수습으로 교지에 들어올 무렵의 내가, 지금 이제 교지를 졸업하는 나와 어떻게 다르고 또 얼마나 닮아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계기였는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그때의 내가 있었고, 어떻게 변화해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짐작하지 못하는 내가 여기 있다. 어쨌든 그 모든 게 온전히 나였기를. 지금의 마음이,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이, 앞으로도 영영, 그 순간순간이 모두 온전히 나이기를.



2.

몇몇 사람들에게만 알리고,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자연스럽게, 나는 학교를 떠났다. 실은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고, 또 여러 사람을 걱정시켰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갉아먹어갔던 시간이었다. 벌써 2학년 즈음부터 휴학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늘 입에 달고 살기는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결심하고 아버님께 말하고, 당시의 나를 보여주기란 쉽게 말했던 그때와는 달리 생각보다 쉽지도, 그렇다고 어렵거나 힘들거나 한 일도 아니었다. 멈추어 있는 것을 두려워 해본 적은 없었고, 언제나 지금 내가 원하는 것, 혹은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 혹은, 정말 혹은, 지금 내가 가장 피하고자 하는 것에 매달려 왔었기에 별 거 아닌 일이라 생각했고 어렵지 않은 결정이리라 생각했었다.

정작 어려운 것은, "괜찮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주변에 호소하는 일이었다.

겉으로만 웃고 속으로는 늘 울기만 하던 녀석에게 나는 억지로 웃지말라고 했었는데, 아마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 것은 나였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 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스물도, 스물하나도 아닌 스물둘에 폭발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서러움과, 얄미움과, 애처로움과, 외로움과, 그리움과, 그래도, 그래도 하는 사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더해져 나는 몇날 며칠을 잠들지 못해 했었다. 해결되지 않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을 붙잡고 그것을 풀어헤치지도 혹은 버려버리지도 못한 채 마냥 손에 붙잡고서는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이곳에 서있는 것은 분명히 나이고, 이곳에 서있기로 결정한 것도 분명히 나인데, 어쩐지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도 혹은 그런 나를 지탱하고 있는 과거는 어떤 것인지도 분명히 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소리내어 울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즈음 나는, 오히려 숨을 들어삼키듯, 스스로를 끌어안는 듯이 우는 버릇이 생겼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잊지 못하는 버릇이었다. 사소한 문장 하나를 넘겨보내지 못하는 잔혹함이었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웅크려보면서, 그 좁은 방에서 가장 작은 공간 하나를 차지하며 숨을 들어삼키듯 스스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아, 혼자이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 벗어나고 싶다.

-고,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도망치듯 개교기념일을 핑계삼아 진주행 버스를 탔고, 예고에도 없이 시험을 빠졌고, 아무것도 아닌 마음의 병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중학교 무렵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울었다. 우울증, 이라는 단어를 부여잡고 병원을 찾아야하나 하는 생각과, 정작 필요한 해결책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 사이에서 헤매었다. 그 감정이나 그때의 생각은 실은 설명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그저 단지, 아, 멈추어서고 싶다- 고 생각했다. 나를 부여잡는 이 모든 '해야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리라 생각했다. 가족문제며 공부며 진로문제며, 그 모든 것은 실은 핑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일까, 친구는 "참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포기하는 법을, 그리고 실은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혀보고 싶었다.

휴학신청서를 내는 것은, 그리고 학교를 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몇 자의 글자와 종이 한 장으로 끝. 그리고 걱정하는 이들과 혹 부러워하는 이들과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 때 이후로 아마 정말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하루, 그렇게 반년을 지내왔다.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부여잡고 나는 다시 여기에 섰다. 시간은 흘려 어느새 스물셋이 되었다.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 가장 근본적으로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기 위해 결정한 휴식이었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낭비하듯이' 보내는 하루 하루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애써 부여잡고 있는 그것으로부터의 포기를 익히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곧 봄이 시작할 뿐이니까.

그러니까 당분간은,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금과 같이 누구의 비난이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늦잠을 자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게 아닐까 고민하면서 또 놀러 다니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지내지 않을까 싶다. 그러는 사이에 필요한 것은 이제 하나씩 놓아주는 것과, 그리고 그간 애써 무시해왔던 것을 마주하는 일이겠지만.



3.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이 있었다.

열아홉의 그때, 주말의 조용한 학교 복도에서 나는 당신의 전화를 받고 울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당신의 목소리 역시 떨고 있었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 이야기는 와닿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갔다. 너무도 조용한 학교 안을 나는 견디지 못해 했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하루 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내 세상은 무너질 것만 같았는데, 어째서일까 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음은 나오고 또 왜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수험생활을 지속해야 했던 것인지.

그때부터, 나는 묻고 싶은 것을 묻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 그 질문들에 아무렇지 않음을 가장하며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그저, 그 시간을 지나쳐 가는 것만이 그리하여 그때의 울음을 끝맺는 것만이 목표였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 번의 만남이 이어졌다. 만나면 무슨 이야길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까 고민하고 긴장했던 처음의 만남으로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일그러진 표정만이 남은 다음 만남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슥, 하고 떨어져나간 삼 년의 시간이 참 야속했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당신에게 가장하지 않은 웃음과 꾸며내지 않은 표정과,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여전한 그네들이 싫었다. 변화하지 않고 마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네들이 정말이지 싫었다. 그리고, 또한, 증오스러웠다. 무너져버린 내 발밑을 손가락질하며 그네들을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아이는 어른이 되고, 미움과 증오와 분노만이 가득찼던 대상 역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게 되었다. 약함이나 어설픔이나, 그 폭력과 분노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을 얼핏 봐버리고 난 이후에야 난 마냥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필요한 것은 그들과 나의 차이를, 어디까지 그 차이가 날카롭게 벌어지는 가를 내보이고 분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일 따름이었음을 알면서도 무시해왔던 것일까.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슬픔으로만 얼룩진 그 시간이나 공간 따위가, 마냥 벌어져 있어 돌이키지 않으려 하는 그대가 나는 어쩐지 애처로울 밖이었다. 공포도 분노도 사그라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한 사람이었다.

아마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역시 두려워하고 화내고 증오하고 혐오에 떨며 어떻게, 어째서, 라는 말을 붙잡고 늘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 이전의 내가 믿었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잊어도 되는 기억따위는 없다"는 것을 믿고 있으리란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아마, 그럴거다. 지금까지 하나, 하나의 시간들이 그 기억과 생각과 감정들이 모여 지금이 이루어져 온 것이듯,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러니 세 번째의 만남이 몇 번을 이어지고 혹은 몇 번을 뒤엉키더라도,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4.

단 한 번도 삶이라는 것을 직선적으로, 하나의 길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역사의 순환이나 혹은 진보나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은 있으나 정작 나 자신의 삶이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깊게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요즈음 깨닫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나는 아마 지금껏 한번도 목표나 계획 따위를 세워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장래희망이나 꿈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고, 혹은 남들처럼 10년 후나, 20년 후, 혹은 나중에 언젠가-에 대한 상상이나 바람같은 것을 정해둔 적도 없었다. 예전에 멘토링을 가서는 각각의 시기에 따라 그리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적어보라는 질문지 같은 것을 나누어준 적은 있지만 실은 그런 질문 앞에서 가장 할 말이 없어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학교 공부 이외에 다른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던가, 어떤 직업을 염두에 두고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던가, 혹은 정말 우습게도 수능 때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선택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지금 내가 졸업 후 무엇을 하면 좋을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공부나 글, 그림, 사진, 따위의 전문성을 갖추지도 그렇다고 아예 손대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 지점에서 자기만족에 가까운 일들을 해나가는 것 역시도. 어떻게 보면 회의주의에 가까워보이는 "Carpe Diem"이란 말을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것도 전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기록했다던 어린 시절이나, 그리고 여전히 해야 할 일들보다도 지금 하고 싶은 사소한 무언가(오늘의 웹툰보기 라든지, 낙서하기 라든지)를 꼭 먼저 해버리고 마는 습관같은 것도 역시.

현재를 사는 것이, 과거에 매달리지도 미래만을 바라보지도 않고, 일전에 했던 생각처럼 "하늘을 바라보지만 발은 땅에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면 몸도 하늘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늘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10년 후의 모습이나 20년 후의 모습은 커녕 당장 1년 후, 5년 후의 모습조차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상상할 수 없음이, 별 거 아닌 일이라 생각했던 그 상상하지 못함에 대해 처음 부닥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였고, 그랬던 내 삶의 태도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려는 내 모습에 섬짓 놀라게 된 것은 근래의, 휴학을 결심하게 될 무렵의 일이었다.

학업계획서라는 말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나에겐 지금 듣고 싶은 수업이나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이 중요했고, 지금 내가 하고 싶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은 굳이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를테면 운전면허나, 혹은 영어시험이나, 자격증이나, "돈을 모으는 것" 따위. 그러다 처음으로,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공부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이, 혹은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나 익혀나가는 지식들이, 앞으로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고, 그 순간이 문득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애써 그 생각을 지우려 했다. 어떤 활동에 목적이나 이유를 부여하는 순간, 그 시간 자체의 의미가 소멸해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언론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도 없지만 교지에 들어왔고, 주변에서 흔히들 하는 외교관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 외교학을 전공했다. 지금 이 순간, 의 의미를 퇴색시키면 안 된다고 믿었다. 아니, 믿으려 했다.

아마, 그것은 걱정때문이었다. 언제나 대학생이고 싶어했지만, 이제 언제나 대학생일 수 없는 위치에 놓인 나는, 이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는 앞으로의 모습을 만들어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고, 그 속에서 내가 한껏 거부해왔던 무언가를 부딪혀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에, 그때 그때의 목적이나 방향성을 찾으려 하는 내 모습이 과거의 나에 대한 배신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그건 배신이었다. 현재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해왔던 과거의 나에 대한 배신.

하지만, 실은 삶은 언제나 길이었다. 언제나 그것은 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랐고,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던 과거가 있었다면, 그것을 고민하고 혹은 멈추어서고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지금껏 걸어온 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지금이 있을 뿐이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배신이라 생각했던 그 감정 역시 과거를 그대로 현재에 이어붙이려 했던 내가 잘못이었을지 모른다고 깨닫게 되었다. 한번도 무언가를 위해 준비해본 적이 없었지만, 설사 내가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고 지금의 행동에 목적을 부여한다 한들 그것이 온전한 내 결정이 아니게 되는 것 역시 아니니까, 그렇다면 괜찮은 게 아닐까, 하고.

음, 실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 내게 삶은 하루, 하루로 이어져왔던 거 같은데 주변에선 늘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건데? 하고 물어온다.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기엔 곤란해져가는 걸 느끼고, 이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5.

얼른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곧, 봄이 오고, 여름이 시작되겠지.
 

'Yunee: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하반기~  (0) 2013.03.23
2012.12.07  (0) 2012.12.07
2012.12.03  (0) 2012.12.03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