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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끌어안듯이 우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부터였는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울음소리도 어떤 기척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을 끌어안고 알처럼 웅크려서, 아 그렇구나 나는 혼자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고 말아버리는 거였다. 이렇게 점점 작아지기만 하다가, 작아지다가 작아지다가, 아예 없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나버렸다.
파고들고, 곱씹어서 생각하다보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곱씹고, 곱씹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미부여를 해버리고 나면, 결코 다시는 그 의미를 잊어버릴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그저 그런 일이 있었지 하는 정도로 넘길 수도 있는 일들을, 어느 순간부터는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견딜 수 없는 의미가 부여되고 말아버리니까. 그런 것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무서운데도 또 다시 떠올리게 되어버려서,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주저앉아버리게 되어서.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것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에 기대어 수없이 되뇌어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 상황에 대해 극복할 수 없다는 마침표를 붙여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그건 내게 트라우마구나, 하고. 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인데도,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하찮고 쓸데없고 작은 사건일 뿐인데도, 그 한마디를 결코 다시는 잊을 수 없게 되는 거. 그래서 더더욱, 거기에 스스로 상처를 덧씌우는 거.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나중에는 숨이 콱 막혀오는 순간이 있다. 그래, 그저 하나씩, 하나씩,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해나가듯이 작은 것부터 조금씩 해나가다보면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나중에는 그 모든 것들이 풀 수 없을 것같은 거대한 산처럼 다가와서 도저히 '하나씩 하나씩'이라는 자세로 거기에 임할 수가 없게 된다. 막상 설거지를 시작하면 잠깐이면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것처럼, 조금씩 치워나가면 금새 깨끗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씩 더렵혀나가기만 하는 것처럼, 나는 어쩐지 이불속으로 웅크러들고 만다. 이 작은 방이, 너무도 크게, 이 넓은 세상에, 나는 너무도 작게, 티끌이 되어버릴 것 같이. 근데 그 티끌과 같은 일이, 내게는 거대한 우주와도 같아서. 숨이 콱 막혀와, 어떻게 하면 숨을 쉴 수 있었는지조차 막막해져 버려.
무언가를 알고 나서, Ctrl+z를 눌러 그것을 알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한 번 의미부여가 되어버리면 결국은 그 의미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를텐데. 아, 그건 트라우마구나. 하고 한 번 이름붙여지고 나니, 이미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그것으로부터 난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다보면, 한참을 밤새 울다가 보면, 끝내는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무엇때문에 힘들었는지도, 무엇이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른채 그저 지쳐버리고 말았다. 지쳐서, 지쳐서, 다시 그 지쳤다는 사실에 울음이 터져나와서.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모든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하다보면, 역시 그럴 수 없겠지 하고 또 다시 한 번. 쌓여가는 건 시간도, 설거짓감도, 그 무엇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이 만들어낸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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