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늘을 삼킨 느낌 난 가끔 너의 말이나 태도가 불편하고, 그렇지만 그 불편함이 결국은 쓸데없는 내 민감함 때문일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다. 그리고 그 문제는 항상 다시 돌아와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따금씩 이런 상상을 하곤 해. 내가 만약 나는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뭐라고 반응하실까.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스스로 자각하기에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소위 여성스럽다고 하는 옷을 입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 했다면 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비슷하게 상처받을까, 역시 그렇구나 할까. 비슷하지..
"나는 요기 있어요. 그리구 이거는 집이 아니고 요양원이에요. 내 소원은 이렇게 꽃이 많이 핀 요양원에서 꼭꼭 숨어 지내는 거였거든요. 그 욕심에 나는, 내 스스로가 깜빡깜빡 할머니가 됐어요. 일부러, 다 까먹은 척. 한여름에 한겨울 잠바 꺼내주구, 이불에도 오줌 드러붓구, 일부러. 그렇게 하면은, 이집에서 날 받아줄 것 같았거든요. 내가 미친년 행세를 제법 했는지, 그 소원이 이루어질려고 해요. 이 집에서 날 받아줄려나 봅니다. 그런데 인젠 난, 내가 안가고 싶어요. 요 녀석이, 날 세상 밖으로 자꾸 나오라고 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하찮은 늙은이를 필요로 해요. 조 조막만한 게 옷에 단추가 떨어지면 그것도 꿰매줘야 하고, 뒹굴뒹굴 밤새 조잘대면 그것도 들어줘야 하구, 내가 이렇게 할일이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