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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마음이, 시간이, 사람이

은유니 2011. 6. 23. 03:46

유월, 이라는 울리는 어감을 좋아했던 그 날들도 어느새 지나가고 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종강을 했습니다. 과연 해야하는 모든 일들을 종강하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진지하게 걱정했던 시간도 어쨌든 다 지나가버리고 말았어요 :-). 역시나 사람은 코앞에 닥치면 무엇이든지 다 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걱정하고 어려워했던 일들도 어찌어찌 다 해결하고, '이건 대체 무슨 말일까?'를 곱씹으며 내려다보았던 시험지도 답안지도 이미 제 손을 다 떠나버렸으니 이젠 가만히 앉아 학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_ㅜ

사실 학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니 수강신청을 할 때부터 그런 느낌을 받기는 했었지만 이번 학기 내내 조금은 붕 떠있는 기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시험 일주일 전에도, 이틀 전에도, 간혹 하루 전에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정작 해야하는 것들에는 집중하지 못한 채 한 학기가 지나가버린 것 같아요. 여유를 부리지 않아야 할 시기인데도 부려야 할 여유는 잔뜩 부리고, 그러고는 또 며칠을 내내 밤을 새우다가 새벽 공기에 익숙해져서 낮밤이 바뀌어버리고... 당장 마음이 급하다 싶으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건 못된 습관이고, 그래서 평점도 걱정되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사실 별 거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후회되기도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때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한 학기를 마쳤다는 사실에 감사를. 대신에 신경쓰지 못한 많은 나와 그대들의 일들에 사죄를.

주변 애들은 '네가 아무리 학점 걱정해봤자 안 와닿아 ^_^' 라고 웃지만- 학점 그 자체에 대해서 별 다른 미련이 없을 뿐 사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마찬가지 일텐데... 조금은 다른 일면들도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었던 것들도 이제는 찬찬히 더 돌아보고 싶어요. 하지만 또 아버지께는, 할머니께는 죄송하니까 공부도 마찬가지로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만요.



유월도 벌써 하순으로 접어들더니 일 년 전 그때와 같이 여기는 또 비가 내렸다. 후텁지근하고 따가울 정도의 햇살이 내리던 지난 며칠과 다르게 그때도 이렇게 비가 왔었고 여름 치고는 선선한 날씨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장마도 소나기도 태풍도 아니었던 그 비는 마침 사나흘이 지난 후 말끔히 개었고 돌아가는 날씨는 제법 다시 여름다워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아니 정확하게는 어제도 온종일 장맛비가 내리더니 오랜만에 바람도 많이 불고 선선하니 여럿이서 지내기 좋은 날씨가 지속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밖으로 뛰놀지 못해 아쉬워했고, 이제 갓 두어달 되었을 뿐인 새끼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무서워 비를 맞으면서도 구석에 숨어있어야 했지만 어쨌든 손님을 맞이하고 지나가던 그림자를 되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썩 좋은 날씨였다.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달콤한 낮잠을 즐겨도 끈적지근하지 않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문제의 시작은 나에게 있었다. 집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고 오랜만에 만나 인삿말을 나누는 목소리와 먹을거리는 한아름 가득 풍성했지만, 나는 사실 그 곳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헤매어야 했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많은 것은 싫었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척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어서, 집안 어른들에게 차려야 하는 예의를 나는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말았다. 무섭고 답답하고 어디로든 벗어나 숨쉴 틈을 찾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오후 나절까지 지켜왔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나는 다시 한 번 깨버리고 말았다.

그냥 거기엔 내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위로를 건네줄 만큼 마음쓰는 이가 없다는 것도 알고, 여전히 가부장주의와 권위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 우리 집에서 오빠가 없는 집안에 첫째 '손녀'로 태어난 이상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여기저기에 많다는 것도 알고, 이전에 그 모든 것을 누구에게도 쉬이 털어내지 못하고 혼자 참고 묵묵히 견뎌왔을 이도 안다. 때문에 사실 별 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저 고향에 내려와 어디든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래서 즐거워했었다. 하지만 집으로 내려오는 일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면서도 반대로 끊임없이 갑갑한 마음을 준다. 포기하지 않는 당신도 싫었고, 당신의 그림자로 가득한 집안도 싫었고, 벗어나지 못한 채 묶여 있는 이곳도 싫어했으니까. 어쨌든 돌아올 수밖에 없는 모습이 마치 내가 이전에 그려놓았던 그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서, '이제 괜찮다'라고 스스로 위안삼으면서 또 없는 척 벗어나려고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어버려서. 그 마음이 갑갑하고 그 시간이 답답하고 그 사람들이 무서웠다.

내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다른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던 이곳에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이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마음 편히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집이고 내 고향이었는데도 없었다. 가장 가깝고 가장 마음 깊은 곳에서 타자화되고 소외되고 이방인으로 남아있는 기분을 언제고 언제고 벗어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이건 또 하나의 트라우마인 건가. 그 굴레 속에서 끝내 어떤 일이 있어도?

왜 이곳의 내 시간은 항상 정지해있는 것일까. 도저히 고쳐지지 않을 만큼 낡아버린 시계태엽처럼.



당신은 알고 있을까.
그대들은 잊어버린 걸까.
모르는 척, 잊어버린 척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언제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고 현실 속에서 그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 음 :-)




방학 땐 다시 계절학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좋아하는 선생님의 교양도 듣고, 작년부터 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주일에 세 개와 네 번의 서로 다른 회의를 한다는 건 뭔가 끔찍(!)할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딱히 남들처럼 영어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음도 없는 주제에 고시같은 걸 생각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애매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요 ㅎㅎ 음 과외도 할 것 같고. 얼른 과외를 두어 개 구해야 할텐데!

그렇지만 놓치지 않고 사진공부도 해야겠어요. 사진찍으러 많이 다녀야지 :-)
파더스데이 준비도 빼먹지 않고 ^_ㅠ 악악 사실 제일 걱정되는 건 이건데 말이에요!

그 이전에 일단 이 낮밤 바뀐 생활부터 청산해야겠지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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