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보고 싶었고 너무도 만나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늘, 언제나, 그리워했었다고. 그저 웃는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 다시금 두 눈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은 점점이 공중으로 사라져가고 말을 잃어버린 입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말보다 더 값진 체온을 전할 뿐.
―
처음으로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이 충동적인 살인의 이유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한 시간이었다. 그저 그 한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당신을 죽이지 않고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응어리지고 응어리진 마음이 얼어붙어 수십 번도 넘게 심호흡을 하면서 괜찮아, 당신 따위의 사람 때문에 내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하고 되뇌이며 간신히- 간신히- 버티어 냈다.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아니 지금부터 앞으로의 언젠가까지 당신을 결코 좋아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욕하는 건 웃어넘길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던 그저 웃으며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왜냐하면 당신은, 적어도 그 누구도 아닌 당신만큼은 그들을 욕할 자격이 없으니까.
글쎄 나는 이십여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그들과 당신 사이에 있었고, 또 그 지나간 이십여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떠한 감정, 어떠한 대화들이 오고갔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당신과 그들의 과거이고, 나에겐 오직 현재만이 중요한 사실이니까. 때문에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궁금했을 뿐이야. 그렇다면 왜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실은 누군가의 희생 아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겠지. 그래, 당신은 첫째였고 그들은 당신 때문에 미래를 강탈당한 동생일 뿐이었으니까. 당신에 의해 강탈당한 그들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는 기회는 오직 당신에게만 주어졌지.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불쌍하다고 여겨왔다면 왜 당신은 희생이란 단어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까.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여겨왔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지? 그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을텐데?
우스웠다. 나라는 한 인간의 존재이유 자체를 묵살하면서, 혹은 욕하고 비난하고 힐난하고 헐뜯으는 한 사람과― 오직 나라는 인간의 껍데기, 타이틀, 혹은 이용가치에만 주목하는 한 사람이. 우스웠다, 모른 척하는 그와 자신밖에 모르는 그들이.
그냥 문득- 그렇구나, 당신들은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는 법밖에 배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
불쌍한 사람들, 타인을 힐난하는 법 말고는 상황을 개선시킬 다른 방법은 찾지 못한 사람들.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자신의 미래에 얽매여 타인의 현재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알고 있을까, 그 따위 의미없는 당신의 성공때문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알고 있을까, 스무 살의 풋풋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만을 간직한 채 스무 해 동안의 삶을 떠나와야 했던 그 누군가의 쓰라린 기억을. 알고나 있을까, 당신의 그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죽는다라는 단어가 아닌 죽인다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는 내가 당신의 뒤에 있다는 것을.
오직 앞을 바라보는 법 밖에는 배우지 못했겠지. 왜냐면 그들은 당신의 뒤에 있는 존재고 당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이니까 당신의 인생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겠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 내가 알고 있는 건 당신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 뿐이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단 몇 초라도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만은 확실해. 적어도 기억력 하나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글쎄,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많이 웃었고 많이 즐거워했고 또 많이 행복했어. 물론 그만큼 많이 울고, 슬퍼하고, 아파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을지도 몰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그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가진 '자산'의 가치이지 당신 자신의 가치는 아니잖아? 당신의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자신하길래? 내 눈에는 불과 얼마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데?
이십년만에 당신과 내가 처음 나누었던 대화가 고작 그따위 것이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깝다. 그런 일만 없었다면 당신따위와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을텐데. 당신에게 '나'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이었잖아? 아, 그렇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을 표시하지조차 않았던 거구나? 난 왜 쓸데없이 당신을 불편하게 여겨왔을까.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하등의 가치도 없다고 여겨왔을 뿐인 개자식에게 준 눈길조차 아깝다. 왜 쓸데없는 감정을 낭비해왔을까.
이걸 기록하고 있는 건 다만 더 이상 당신이라는 사람조차 되지 못한 놈 때문에 더 이상 내 감정을 낭비하는 것이 하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이제 그만하자. 사실상 그 무엇도-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테니. 나만 상처입는 건 그만하자. 맙소사, 죽인다- 라니.
―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냐?
응.
그래, 그거면 됐다.
...응.
―
두렵고 무서웠던 시간이 지나가고, 잔인하고 가혹했던 시간도 지나가고 다시 일상을 시작하자.
웃고 웃고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나는 세상보다 나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거든.
'Yunee: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Adios! Hola :-)! (4) | 2011.01.02 |
---|---|
ㅠㅠ 오랜만이에요 (2) | 2010.12.22 |
10일! (4) | 2010.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