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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By.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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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니 2010. 12. 24. 04:06



그러고보니 꼬박 일년 전이었다. 12월 25일, 우리는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었다. 오빠가 군대를 가기 전 마지막 학기를 막 끝냈던, 그리고 내가 아직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괜스레 마음 졸이고 있었던 시절. 사실 가족여행이라던가,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낸다던가 하는 것이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가 처음으로 이런 시간을 보내고자 했었던 것은 그리 따스한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닐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조금은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카메라를 챙기고, 충전기를 챙기면서, 비록 얼마 전 친구와 함께 갔다왔던 경주였다 할지라도 아빠의 차를 타고 다시 '함께' 떠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사실 특별할 건 없었다. 한번도 불국사와 석굴암을 가보지 않은 나를 위해 차를 한참 타고 경주여행을 시작하였고, 사진을 찍느라 뒤쳐지는 나를 위해 그들은 걸음을 조금 늦추곤 하였다. 얼마 전 낮에 친구와 함께 보았던 첨성대와 안압지는 밤에 불빛을 받아 또 다른 느낌이었고 하지만 그만큼 무언가 허전하기도 하였다.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박물관 관람을 세시간 동안이나 함께 해주었던 것은, 그리고 그동안 참아주었던 것은 단지 내가 그렇게 좋아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일출이 아닌 일몰을 맞기 위해 포항을 향해 달려가고, 그저 딸과의 사진 한장이 아쉬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던 것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일년이 지난 뒤의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가능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좋아했을까- 행복해했을까-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힘들어했을까- 못견뎌했을까-

절반쯤?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수능 성적표를 받은 그 날, 가장 먼저 받은 전화가 고모였던가 엄마였던가 아빠였던가 분명하지 않았다. 아마 고모가 먼저였던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모두에 대한 나의 반응이 달랐었다는 거? 포토샵이 설치되지 않아 아무 이유없이 사진폴더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저 사진에 먼저 떠오른 것은 아빠였을까 오빠였을까 아님 엄마였을까.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그 모두에 대한 나의 반응이 이번에는 다르지 않았다는 것.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전화기 너머로 건네오는 그 질문에 대해 사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건 개체로서의 '너'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나'의 대답을 바라고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진심과 진솔된 반응을 바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고 있었던 상황 자체가- 아무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도 하지만, 나의 대답이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니면 나 자신의 온전한 대답이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허실히 웃었다. 무의미한 웃음. 그런 나의 심정을 그는 어느 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거짓말을 일삼게 된 이 상황 속에서 더이상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의 위치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짐짓 모르는 척 대답하고 말았다. 잘 모르겠어- 글쎄 어떻게 해야 좋은걸까.

그냥... 지금은 조금 어긋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정말 그럴까? 미안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겠어. 당신은 더 이상 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당신이 그리고 있는 미래, 혹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는 더 이상 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거 같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이, 혹은 우리가?

혹시   게 되거든 이야기 좀 잘 해봐.

알았어, 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꺼렸다. 나는 여지껏 한 번도 그런 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무서워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그것을 현실로 직시하기 싫어서였을까. 둘 다 맞을지도 모르고, 사실은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단지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테니까. 무언가를 바라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만 그냥 생각했었으니.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걸 알리면서도 그들이 그것을 생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늘상 거짓말을 일삼다가 그것을 들켜버린 기분이라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구나,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어. 당장 크리스마스 저녁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는 생각을 하고 보니까 덜컥 집에 가는 것이 겁이 났다. 만나고 싶어. 이야기하고 싶어. 오랜만에 웃음을 보고 싶어. 그런데 겁이 나... 어째서일까? 나는 왜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못할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 속에서 과연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은 또 어떤 얼굴을 하고 나를 맞을까. 그리고 그들은 내게 어떠한 답이 나오길 바라고 있을까. 나는 무슨 답을 얻어가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문제.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문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들이 묻어나온다.
선택지가 주어져있는가. 아니면 답은 이미 내려져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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