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러고보니 참을 수 있게 된 지가 좀 되었다.
―
사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쉽게 ok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이 고착화된 상황에 변화를 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고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이 약이 되어서 진정할 수 있게 되면,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시간은 지났지만 생각했던 만큼 나는 성장하지 않아서 오히려 응어리져 버렸다. 놓아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잊어버릴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긁고 긁고 긁다가 결국 덧나버린 그것이 모른 척한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하루만에 회복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지나치게 회의적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앞에서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조금은 어색하게 하지만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대답한다. 우습지만 그럴 수 없을 거다. 그 대답에 대해 너희들이 비난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기엔 지나간 시간이 있고, 그 이전에 경험했던 무언가가 있고,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용서받고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과거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있다. 화해하거나 다시 만날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과거라고 생각하는 현재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자신이 없다. 쓸데없는 기억력만 좋아서, 의미없이 되감기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변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버리고 나니까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놓아버리고 말았다. 멈추어서서 나아가지 않는다- 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관심과 눈길을 보내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제와 또 다시 나부터 먼저 말을 건네기엔 웃기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어서.
되돌아가기 위해 부딪히는 것은 무섭고 두려워서.
너희들도 모르잖아, 어떻게 생각해왔을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아니 생각이나 하고 있을지. 쉽게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을지, 아니면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고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지.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아마 좋아할 것이다.
존경했던 사람이었고 지금도 존경한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보고싶은 사람이지만 또한 보고싶지 않기도 하다.
그만큼 잘 맞는 사람, 그만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렸던 사람, 수없이 많은 취향과 취미와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거하고 행동하는 거 하고 다를 수 있듯이, 생각하는 만큼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제 나도 잊고서 버리고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한 달하고도 보름쯤 전 1년 만에 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 거의 정확히 1년동안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냈던, 이따금씩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던 누군가를. 그 전까지만 해도 만나면 나는 곧바로 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한참을 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상상과 실제의 간극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어. 아니, 말조차 할 수 없었어. 그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던 거야. 시간이, 어쩔 수 없이 흘러버린 시간이.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또 다른 기억들이. 그러니까 자신이 없다. 다시 이야기를 건네고 웃고 떨어졌던 만큼의 추억들을 다시 한번 공유하는 것이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사람을 사귀기까지, 마음을 털어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마음을 정리하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그 걸린 시간을 하루만에 되돌리기엔 자신이 없다.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지만 또 그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이해해버렸기에 자신이 없다. 예전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거란 장담도 할 수 없고, 그런 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없다.
어쩌면 순간 어긋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여있었던 것이 그 당시에 펼쳐진 것이라면?
상황때문이 아니라 오직 단순히 '너'와 '나' 사이의 관계 때문이었다면?
…모르겠다. 나는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끝내버린 사람이었는데. 이제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는지. 웃을 수 있을까.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 앞으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