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헌영(獻詠)
분명하지 않은 시야 사이로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흐르고 무뎌진 마음이 기억을 흐려 놓았지만, 그림자만큼은 유독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가실 형체를 가지고 있어야할 존재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나, 안개 속에 잊혀야 할 그림자는 꼿꼿이 그 잔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니 당혹할 노릇이었다. 아마 그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써 붙들어놓았던 마지막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린 장면은 쉬이 흐트러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러나 어떻다 할 감정이 일지 않는 현재의 마음은- 그러한 실(失)이 가진 운명과도 같은 행로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해하며, 떨쳐내려 했던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있었다.
세상의 전부는 길이었다. 떠남과 되돌아옴의 반복 속에서 무엇을 느꼈던가 하는 것은 걸어온 발자국만큼이나 바람에 풍화되었지만, 머물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열병을 앓듯이 집 안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눈두덩을 무겁게 짓누르는 안개의 무게 속에서도 이유도 알 수 없이 길이 있었고, 또한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고, 끝나지 않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세계를 만드는 인간의 간절함이 꿈속을 헤매는 와중에도 형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자를 굳이 또 이끌어내는 타는 듯 한 목마름이 정신없이 길을 찾았다. 계속해서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비벼 뜨면서 북극성도 보이지 않는 눈발 사이를 헤쳐 다녔다.
ㅡ모든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형체도 없이 그림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웅웅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ㅡ악령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악의란다. 하지만 사실 모두 알고 있어. 그러한 악의는 그리는 마음의 결과이고, 그 형체는 슬픔을 뿌리로 삼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거야.
간절한 그리움을, 바람 속에 떠나보낸 이들을, 태어난 그 어떠한 무엇이든 마지막이 있고 끝이 있고 끝내려 하는 신의 섭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잔혹하고도 당연한 진실을.
ㅡ어떻게 해서라도 삶을 이어가겠다는 누군가의 간절함이 길을 만들어내었고, 생애의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애틋함이 우리 마방들을 만들어 내었단다.
별은 그럼에도 보이지 않게 반짝이고 있었다. 놓치지 않고서 방향을 제대로 따라가라고. 희미해지는 의식의 나락에서 좌르르 미끄러져 내리면서도 끝내 제 모습을 안개 틈 사이로 드러내고 있었다. 바닥이 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하시르 옌은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무겁게 내려앉는 바윗돌이 놓인 마냥 욱신거리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희미해지는 듯했던 의식은 오히려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했다. 악령들의 기운이 옅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달아오른 몸이 후끈후끈했고 안정되지 않는 숨결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바들바들 떨려오는 손끝을 그는 꽉 쥐었다. 질끈 다시 감은 눈 사이로 뜨듯한 열기가 흘러내렸다. 왠지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우스운 일이지, 순스에서는 아이들마저도 한 번 쯤은 겪는 그러한 이유 없는 악의를 그제야 온 몸으로 부닥뜨리고 있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악의가 형상을 만들어내고, 악령은 그 주인을 물어뜯는다. 서걱-하고 뜯겨져 나간 것이 신체가 아니라 정신의 일부라는 것이 그들이 야생의 들짐승들과 다른 점일 뿐이었다. 아픈 곳은 없었다. 다만 심한 열병을 앓고 눈을 뜬 것처럼 주변에의 인식만이 분명하고 몽롱한 경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내려갈 곳이 없음을 알면서도 옌은 바닥 깊숙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떨어져 내렸다, 마치 휴지(休止)를 갖지 않는 시간의 늪과 같이.
"어, 언제 일어났어?"
며칠을 앓으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꿈과 현실 속을 깜빡하며 왔다 갔다 하는 그의 모습에 다들 걱정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옌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에 몸을 일으켰으나 실은 목적지도 모른 채였을 것이다.
"방금 지누안씨하고 겨우 결계를 치고 오는 길인데, 몸은 좀 어때?"
아직 미열이 남아있는 거 아냐? 아이흐는 손을 올려 옌의 머리를 짚으며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마을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을 그 역시 온몸에 피곤이 절여있을 텐데도 자신의 피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옌은 초점 없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작게- 입 고리에 웃음을 만들어보였다. 조금은 허탈하게. 미안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아이흐는 한숨을 내어 쉬더니 피식 웃었다. 아무튼 아프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을 옌이었고,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에 익숙할 사람이었다. 어쨌든 일어난 것을 보니 어느 정도는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가 어쩌다 악령에게 당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술렁이는 마을 사이에서 사라졌다 싶더니 한참 후에야 불에 대일 듯이 뜨거운 몸뚱이를 땅에 기댄 채 쓰러져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을 뿐이었다.
"결계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혹시 에투겐께서…"
아이흐는 움찔하며 뒷말을 흐렸다.
신이 그들을 떠난 것일까ㅡ 걱정하고 갈망하고, 원망하고 원하였을 게 분명했다. 감히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제각기 스스로 답을 구하려 살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고개 숙이고, 보이지 않는 이들을 신이라 부르며.
"아이흐."
응? 언제나 웃는 듯한 모양의 눈동자 끝이 옌을 향했다.
"악령은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만들어져."
"그런데?"
길게 호흡을 들이쉬며 내뱉듯이 말을 이었다.
"옹고드와 에투겐… 마저도 인간들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파편일 뿐이며, 의도를 지닌 존재가 아닌 단지 세상을 잉태하고 난 나머지의 잔열로 만들어진 건가? 악령과 같이 생을 떠돌아다니고, 그러다 그저 잔열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서도 옌은 다시금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 보였다. 보는 이들 마저도 힘을 빠지게 만드는 작위적인 웃음. 아이흐는 대답 없이 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금홍빛이 사라진 눈엔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채 악령의 시달림에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짐작하며 아이흐는 그저 자신의 신께 기도했다. 길 잃고 헤매는 한 마방이 북두의 별자리를 되찾아 마을을 향하는 길 위에 돌아오기를, 하고.
"…우리는 다만 대지의 어머니 품에서 살아갈 밖이야."
그건 변함없어. 옌 역시도 그에 대한 대답은 어느 누구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마치 바람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던 그 시절처럼 결론짓지 못하는 대답을 다른 이에게 갈구했다. 좀 더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냐?
"미안, 난 다시 가봐야겠어. 다 올에겐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할 테니까…."
아이흐는 옌에게 걱정 어린 인사를 건네며 바삐 제 걸음을 재촉했다. 멀어져가는 아이흐의 그림자는 -처음 본 것이었던가― 짧고 짙었다. 그 누구의 길고 옅었던 자취와는 다르게.
후드득, 불안한 새들의 날갯짓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후둑, 뜨듯한 열기가 볼을 타고 옅은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ㅡ아버지
"왜 그렇게 '떠남'에 집착하는 것이냐, 옌."
다 아브락은 마치 무심한 듯이, 그러나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티샨의 깃털을 정리하는 그의 손길은 그를 닮아 있었다. 옌은 그저 말없이 다 아브락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항변이었다. 다 아브락은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또 물어왔다.
"꼭 그렇게 쉼 없이 길을 떠나야만 하는 건가."
"… 저는 큰 의미를 담아둔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덜 자랐군. 다 아브락은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의 눈에 옌은 여전히 태곳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꼬마에 불과했다. 아직 제 발로 걸을 줄 모르고 손을 내미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세상을 곧게 살아가지 못하는 법이었다. 역마살이 끼인 듯 이 마을 저 마을로 걸음을 멈추려하지 않는 옌이 그에겐 상실을 회피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넌 네가 붙들고 있는 것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있어."
푸드득. 티샨이 날개를 떨치며 다 아브락의 손을 떠나고 그 메아리만이 빈 공간에 길게 남겨졌다.
"저는 마방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마방으로 자라났고, 마방의 곁에서 키워졌으며, 제 고향은 순스가 아니라 길 위 그 자체예요.
아비가 마방 일을 떠난 뒤에 그를 돌보아줄 다른 가족이 없었기에, 제 몸을 챙길 수 있게 된 대여섯 살 무렵부터 기실 그는 어린 마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 이미 몸에 짙은 의무의 사슬로 걸리어 있었고, 누군가의 필요에 응하는 것이 옌을 지탱하는 하나의 고리로 자리 잡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것이 어쩌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에 기대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바람과 땅에 기대어 그 속에 하나 되어 살아간다. 떠나고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결코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 밖으로 내딛지 않고 망연히 경계만을 서성이다 뒤돌아서 다시 순스를 향해 돌아온다. 수십 번을 반복해온 일이었다.
"하시르 옌,"
다 아브락의 눈은 숨겨둔 은밀한 생각까지 들여다 볼 듯 깊었다.
"너는 다르한의 그늘에 기대어 벗어나지 않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가 혼자 남겨진 아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듯 너 역시도 잃음이라는 명목 하에 그의 길을 곧이 그대로 따르려는 것에 불과해. 그럼으로써 너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사실을 비껴보려 하는 거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진정한 순스의 마방이었다. 신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그런 마방이었어. 하지만 너는 그에 비해 용기가 없구나. 스스로를 인정할 용기도 없는 자가 타인을 위한 생을 살아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하시르 옌 네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할 뿐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르한의 죽음은 너에겐 헛된 것이었나?"
"다 아브락!"
옌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옌이 이번만큼은 온 몸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저는 그의 자식입니다. 마방 아래에서 자라 마방의 길을 걸어가는 자입니다. 그것 밖에는 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여기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무엇을 해야만 옳은 것인가요? 저는 그저 일을 하고 길을 떠날 뿐입니다."
"… 진정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한 옌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다 아브락은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옌이 안타까웠다. 잔 상처들을 신경 쓰지 않고 놔둬버린 탓에 깊이 팬 주름처럼 남아있는 손이었다. 처음에는 여리디 여려 굳은살조차 없던 아이의 손이 어느새 단단한 어른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질끈 깨어 문 입술 사이로 옌은 토해내듯이 말했다.
"그 밖의 것은…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
헛자란 몸만이 덩그러니 놓여, 시선을 잃은 그의 눈이 대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저는 그저 갈바람처럼 잠시 사이에 왔다가는 한낱 나그네이지 않습니까.
수많은 마방들이 길에서 생사를 가름하더라도, 그것이 어쩌면 그들의 운명의 행로였다 할지라도.
그 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부디 아닐 것이라고.
ㅡ아버지
휘청 다리가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잊어버리고자 했던 기억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헤쳐 다녔다. 불티가 흩날리고, 길이 끊어지고, 귀에 익었으나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환청처럼 들려왔다.
눈발 사이에서 불꽃은 황홀하도록 잔혹하게 치솟아 올랐었다.
"이번 여정은 조금 길어질 것이다. 첫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쉼 없이 움직여야 할 거야."
다 아브락은 행렬을 점검하며 떠날 채비를 마무리 지었다. 아직 어린 그의 아들 역시도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한 해의 마지막 일이었다.
"… 그리고 색목인들의 나라 근처까지 닿을 수 있을 거다, 옌."
옌 앞에 선 다 아브락은 어미를 닮은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결국 다시 그는 오랜 여행의 길에 올랐다. 말수가 더욱 적어진 옌은 여전히 한 손 귀퉁이에 나무 조각을 쥐고 있었다. 말수에 비례해 웃음마저 줄어든 얼굴이 부쩍 수척해보였다. 자신을 놓아주지 못하는 녀석. 다 아브락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스쳐지나가듯 말했다.
"한 번은 너 자신의 길을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
"되돌아오길 잘했지."
가뜩이나 지쳐있는데 겨우 일어났다 싶은 사람이 여전히 말썽이었다. 가만히 누워나 있었으면 걱정이나 안 시키련만,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그 뿌리 깊은 책임감이 옌을 움직이게 하였다. 아이흐는 옌을 책망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물었다.
"어디로 데려다줄까?"
"…마방들이 있는 곳,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곳으로."
"적당히 해도 돼. 너무 무리하지 않더라도 어느 누구도 너를 탓하지 않아."
"응 …고마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눈에 너무 익어버린 미소였다. 아이흐는 일스태로 식량을 구하러 갈 거라던 마방 일행들을 떠올리며 옌을 부축했다. 몸에는 힘이 거의 없었지만 내딛는 걸음에는 생각보다 굳은 힘이 실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마방인 탓이었다. 아이흐 그가 샤먼인 것처럼, 옌은 이미 마방이었기 때문이었다.
내딛는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모여서 사람들은 그렇게 길을 만들어 내었다. 함께하는 가족을 위해서였고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을 위해서였다. 생계를 꾸려간다는 당연하고도 명확한 목표를 위해서, 앞서 많은 이들이 산등성이를 걷고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정착해 살아가는 인간이면서도 유목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ㅡ 그들이 모두 누군가의 아비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며, 어느 누구의 이웃이고, 마을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어디를 향하든 또 어디론가 이어졌고 언제나 대지 위엔 사람들에게 수없이 밟힌 자국자국들이 도처에 있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 존재해. 그럼 우리 샤먼이 있을 이유가 없어. 언제고 샤먼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끈이었고, 옹고드들은 한 번도 그 끈을 놓지 않았어."
그럼 신이 우리를 버린 것일까?
"그럴 리 없어. 그렇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왜…
"왜 기원의 힘이 악의를 이겨내지 못하며 우리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지 않는 것이지? 존재한다면, 지켜보고 있다면- 부디 들려줘… 신의 목소리를.
기원의 목소리를 들어. 곁에 있다면 대답해줘, 망자들의 주검은 잘 거두었는지. 당신이 지켜보는 우리들의 삶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지금 이렇게 묻고 있잖아, 제발, 제발….
이를 악문 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 아이흐는 부축하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옌은 마방들에게 데려다주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기대고 매달릴 것이 필요해 보였다. 몸을 놀리다 보면 잡다한 생각 따위야 다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길은 가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나 끝내 옌은 마을로 돌아왔다, 다시 자취를 따라.
하시르?
"언제 깨어났어? 이제 괜찮아?"
둘의 모습에 반색하며 데오늬가 옌의 모습을 살폈다.
"일스태로 간다고 하던데…."
"아, 응. 저장고가 무너져버려서 급히 떠나게 생겼어."
바삐 일행들의 채비를 돕던 다 아브락은 생각지 못한 목소리에 놀라 주위를 돌아보고는 알지 못할 쓴웃음을 삼켰다. 못 본 사이에 옌의 팔이 제법 가늘어져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 채 며칠을 누워만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ㅡ한심한 녀석.
"…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건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병자는 필요하지 않다."
"제 자신 정도는 가눌 수 있습니다."
다 아브락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옌의 의지는 그의 생각보다 더 곧았다.
"…보내주세요."
그때와 같은 표정이, 대답을 갈구하는 눈이 망울져 있었다. 길게 늘어진 깨질 듯한 하얀 하늘이 그림자를 드리운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저는 이곳에 남을 것입니다, 마방이기 때문에. 그러니 부디 저의 고향으로 보내주십시오. 저는 길 위에서 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망자의 원한이 담긴 길이라 할지라도, 남겨진 자의 기림을 담은 길이라 할지라도, 그곳이 어디로 이어져 있든 저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그 행로의 끝은 언제고 이곳 순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세상 속의 파편이며 흩날리는 잔열 속 문드러진 먼지더미라 할지라도 저의 선택은 그것뿐입니다.
ㅡ그것이 너의 뜻이란 말이냐.
"… 절대 다치지 말거라."
:제가 썼지만 너무 비루하네요..ㅠㅠㅠㅠㅠㅠ 아으 에투겐은 항상 즐겁고도 어렵습니다. 끙끙. 일년만에 만나는 녀석은 성격을 좀체 잡지 못하겠그, 예전 글들 볼때마다 미묘하게 민구스럽고.. 미션 5를 빼먹어서 그런지 너무 아쉬워서 두드리다 보니 되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안되는 느낌입니다... 다음주는 왠지 절대 못 쓸거 같아서 마감 일주일 전을 데드라인으로 후다닥 달렸습니다. ㅠㅠ 에투겐도 수능 끝나고 만나요 !
'Works: > Etug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ssion 7:나무 (0) | 2009.11.18 |
---|---|
오랜만에 에투겐.. (0) | 2009.10.01 |
Mission 4: 회귀(回歸) (0) | 2009.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