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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하- 에취잇-!"

요란한 재채기 소리에 뒤이어 주치는 소매끝으로 얼굴을 훔쳤다. 타닥- 하고 피어오르는 장작더미 옆에 앉아서 담요를 둘러쓰고 떨고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비 맞은 강아지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눈만큼은 자신의 승리라는 듯이 반짝이는 것이 기고만장했다. 뒤돌아서며 옌은 나즈막히 한숨을 내어쉬었다. 몇 시간 전의 눈싸움에 말려든 것은 그의 잘못이었지만 저렇게 감기에 제대로 걸린 듯 연이어 콜록이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불 가까이로 다가가 옌은 주치에게로 준비한 차를 내밀었다.

"자- 이거라도 마시며 속 좀 풀어."

주치는 씨익 웃으며 찻잔을 잡더니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으앗, 뜨거워!"

이내 뜨거운 차의 열기에 놀라 혓바닥을 낼름 내밀며 오히려 옌을 향해 뭐 이리 뜨거운 걸 바로 주냐는 힐난의 눈초리를 보낸다. 옌은 '아까의 복수-'라고 자그맣게 입모양으로 말하며 마주보고 웃었다. 손 안에서 전해져오는 차의 온기에 흠뿍 젖었던 몸이 절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휴전을 선포한 뒤에도 눈은 계속해서 내리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포근히 순스를 덮어가는 그 투명한 빛에서 무언가의 이야기를 전해 받는 듯이 그들은 온 몸을 휘감는 차향을 느끼며 희미해진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지막까지 주치와 함께 등 뒤를 쫓아 달리며 따라붙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하나 둘 제 집을 찾아 가더니, 마을은 눈 내리는 풍경이 주는 특유의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소리와 색채를 잠들게 하는 위력으로 겨울은 시작되고, 그 손을 따라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는 건가.."
"…애인이라도 기다리는 거에요, 옌씨?!"

주치의 엉뚱한 질문에 도리어 그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대답없는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주치의 표정에서 제 나이 또래의 몇 곱절은 될만한 호기심이 듬뿍 묻어나왔다.

"그런 거 아니야."
"흐응-... 소문나도 전 몰라요? 에에에취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옌은 모르는 척 차를 홀짝였다.

"아앗, 좀 있으면 시작될 연말 행사 때 같이 춤 출 짝이구나! 그런거죠?"

홀짝이던 옌의 손이 흠칫 떨렸다. 이러다간 주치의 끝없는 상상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누구일까,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정해놓다니, 나도 얼른 알아봐야 하는 건가? 궁금하잖아요! 예뻐요?"
이정도면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아니래도-."

좀 더 환하게 씨익 웃는 모습이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마을 곳곳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릴 듯했다. 부디 저 순수함만으로 뭉쳐진 흰 빛이 그 소리를 모두 잠재워주기를...


"그나저나 벌써 새해가 다 되어 가네요. 어느새 지나가버렸어요, 한 해가."

짧은 갈색 머리카락에서 떨어져내린 맑은 물방울이 주치의 으슬으슬 떨고있는 작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무빛 머리만큼이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 속에 한가득 느껴져왔다. 첫눈은 항상 모두를 젖게 만들곤 했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 고요함 속으로 다 어루안았다. 얼굴 위로 피어올라 뭉글거리는 보얀 김을 바라보는 눈에 찻잎의 녹색이 물들었다. 그 녹빛이 들이킨 차를 통해 몸 속으로 퍼져나가 발 끝에도 닿을는지.

"차는 얼마든지 있으니 많이 마셔. 그래야 감기 걸려도 빨리 나을 거 아니야.."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그는 집안을 뒤적였다. 이윽고 좀 더 두꺼운 담요를 하나 꺼내어 오더니 주치의 머리부터 푹 둘러씌웠다. 왓, 담요 사이로 빼꼼 내민 그녀의 얼굴이 열기로 붉어져 있었다.

"놀랐잖- 으에취이!"

자그맣게 위안을 담아,
"가는 해는 잘 보내주고 오는 해는 기쁘게 맞으렴."
앞으로 네가 밟아갈 발자국들이 어디로 이어져있든,
"괜찮으니까."

어리둥절하게 올려다보는 주치의 눈에 옌은 조금 안심한 듯 미소지었다.
제대로 웃음을 보여주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차 한 잔 더 마실래?"







:상현님께 받은 선착에서 살짜쿵 이어집니다 :D 에투겐도 연말 분위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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