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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2: 계절은 다시-

은유니 2008. 11. 3. 01:26


   *계절은 다시-



두 손을 한가득 나뭇잎의 빛깔로 물들이며, 머지않아 나설 길에 팔 장신구들을 매만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귀밑머리를 공중에 날리는 바람은 산듯했고, 찻잎도 제법 성장할 시기인지라 푸른 염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 9일을 보낼 때에는 얼마 남지 않은 염료들을 더 이상 구할 방도가 없어 집안 여기저기에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채 나뒹굴고 있었던 목재 조각들은 이제 색이 입혀지고,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제 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하시르 옌이 한 가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 있음을 발견한 것은 쉬이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무리들 속에 홀로 무채색으로 탈색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어딘가를 향하지 않는 눈길을 한 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묘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마주하고 있다고 여겼을 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예의 이때쯤이면 겨울의 겨를철이 지나 농사 일로 부단히 손을 놀려야 했기에, 무심히 스치듯 쳐다보았을 땐 그에게 무언가의 기구를 부탁하기 위해 온 아이이려니 여겼었다. 그러나 갸우뚱하고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순스에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낯섦을 느꼈다.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다. 옅은 흙색의 머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뜨려져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입만을 바깥에 내놓고서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오른 편 손에는 헹그렉이 들려 있었는데, 마을의 다른 샤먼들에게서 보아왔던 여타 헹그렉과는 달리 그것의 북면에는 아이의 알 수 없는 얼굴과 같이 아무런 형상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가 아이를 향해 조그맣게 미소를 보이며 계속해서 바라보았지만, 아이는 무엇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대답은 없었다. 어디에서 왔어? 이름이 뭐니? 뒤이어진 질문들에도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유일한 부분인 입은 열리지 않아 그는 아이에 대해 어떠한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그는 ‘잠시만 기다려-’ 하고 말하더니 미리 그릇에 담아두었던 물에 손을 담가 씻었다. 이내 그 물도 땅을 짚은 발 옆에 난 풀잎과 한빛으로 일렁이며 변해갔다. 그리고 작업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동안에도 아이는 그의 행동을 물끄러미 표정 없는 가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기분이 문득 들었으나, 그가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숙여 키를 같이해도 목소리 한번 내지 않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선 듯 다가오지 않았다.

‘순스의 아이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길을 잃기라도 한 것일까.’


“어딜 가려던 것이었어?”

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더한 뒤 이내 아이에게 묻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저 우연히 그의 작업실이 아이가 가던 발길에 닿은 것이라면, 아이는 그에게 아무런 볼 일이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처음 보았던 그 자리, 그 행색 그대로만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였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살피다가 작게 한숨을 내어 쉬며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등 뒤로 하고 마을 외곽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발걸음을 따라 타닥타닥하고 이어지는 소리가 있었다. 뒤돌아보니 아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그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의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가 걸으면 아이도 따라 걸음을 옮기고, 그가 멈추어 서면 아이 역시 멈추어 섰다. 역시 길을 잃기라도 한 것일까. 왠지 하시르 옌은 아이의 행동에 빙그레 웃음이 걸렸다. 그저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일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얼마간 그는 아이의 타닥타닥하고 낮게 깔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걸어오다가 뒤돌아섰다. 아이는 여전히 그의 늘어진 그림자의 머리 끄트머리만을 밟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아이의 곁에 다가가 이번에는 손을 내밀었다. ‘자-’ 이번에는 그의 행동에 최초의 반응이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키의 갑절은 될 듯한 그의 눈을 마주하더니, 눈앞의 그의 손을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마주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비어있는 아이의 왼쪽 손을 잡았다. 별다른 저항의 몸짓은 없었다.

“이왕에 따라올 거라면, 이렇게 나란히 가도 상관없겠지?”

아이의 입이 조그맣게 열렸으나, 그는 그 곳에서 말이 흘러나오지 않음을 이제는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그의 손 안에 절반정도 밖에 차지 않는 아이의 손이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온기를 전해주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에게는 어린 아이를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도리어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아이에게도 저 나름대로의 사연이랄 것이 모두 있는 법이었으니.




아이의 손을 이끌고 다 올에게 찾아갔으나, 올은 그와 아이에게 버터차를 내어줄 뿐 이렇다 할 방도를 내어주지 않았다. 다만 아이를 그의 집에 데려가지는 않을 것을 당부했고, 넌지시 나르에게 인도해보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녀는 버터차를 홀짝이며 아이의 가면과 한 손에 걸린 헹그렉을 지그시 쳐다보았고 다른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지 아이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자기 위로 뭉글거리며 피어오르는 김을 내려다볼 뿐이었고 끝내 그것을 들어 마시지는 않았다. 그는 얼마지 않아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거처를 떠났고, 올의 말을 따라 녹색 눈의 소녀가 있을 사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난처한 대꾸만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소녀의 고운 목소리만이 사당 안에서 문틈을 비집고 나와 머물다 사라져갔다.

“하지만 다 올은 아이를 이곳으로 인도하라고 하셨는데…”

끝맺어지지 못한 그의 말이 허공에 흩어졌으나 소녀는 여전히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말만 낮게 되풀이했고, 그는 두 번째 거부를 수용해야 했다. 아이는 그저 조용히 그의 뒤에 서있었다.


령(靈)이기라도 한 것인가.


옌은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없어지지 않는 아이의 물설음이란 그것에 기인하기라도 하는 듯이. 헹그렉에 그려져야 할 형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이라도 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는 이윽고 생각을 쫓았다. 연유가 무엇이든 간에 제자리를 찾아 안주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면 밑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내팽개쳐 버리지 못했다. 한번, 그리고 또 한번, 그렇게 아이의 손을 다시 맞잡고야 마는 것이었다. 짤랑, 하고 헹그렉에 달린 방울의 소리가 바람 속에 나부끼며 사당 바깥에 울려 퍼졌다.


찻잎이 돋아난다고는 하나 그 초록의 형색만큼 온전한 따듯함은 많이 어리지 않았다. 그러나 체온이 전해지는 만큼,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의 두 손 한가득 물들어 있던 그 빛깔은 이젠 어딜 가나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록 손가락 하나 보다도 작고 여린 생명이라 할지라도.


“…어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대로 내가 가는 곳을 따르게 두어도 되는 것인가.”

사당 안은 조용했다.
그는 한번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미소 지었고, 짤랑, 하고 다시 들려온 소리에 맞추어 사당을 뒤돌아섰다. 아이가 처음부터 그를 따라올 생각이었다면 굳이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옌은 아이를 만나기 전, 목재를 구하러 마을 외곽 숲에 갈 생각을 했었던 것을 떠올렸다. 무채색의 아이는 색채 가득한 그 곳에서 조금은 자신의 색을 물들일지도 몰랐다.

“조금 걸을 생각인데… 괜찮아?”

아이는 다만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묘하게 아이는 그저 곁에 있어줌을 바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나이 즈음의 자신이 아버지께서 마방 일을 나설 무렵,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함께하지 못해 홀로 마을에 남겨졌을 때 그러했듯이.




흥건히 젖어있는 봄의 향이 취할 듯이 물밀려왔다. 길을 벗어나 나무들 틈으로 첫 발을 디딜 때 아이는 잠시 멈칫하며 그 향취를 온 몸으로 받았다. 그 거대한 물결이 그의 뼈 안에도 휘몰아쳐 들어왔다가 사그라졌다. 계절이 바뀐 뒤 처음 찾는 숲이었다. 어쩌면 괜찮은 상수리나무 가지를 하나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허락한다면 -대답을 들을 수야 없겠지만- 아이의 허전한 목에 걸어 줄 목걸이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자잘한 상처로 곱지는 않을 그의 손을 묵묵히 잡아주고 있는 아이의 손에 선물 하나 해주는 것을 다 올은 눈감아주지 않을까.

“춥지는 않아?”

채 길어지지 못한 해가 지려는 듯 뺨에 와 닿는 공기가 식어갔다. 그리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아이가 걱정되어 그는 듣지 못할 말임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언 듯 아이는 고개를 저은 듯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입고 있던 덧옷을 하나 벗어 아이의 작은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니야아-”

그 때 문득 반기는 기색이 역력한 울음소리가 그들을 쫓아왔다.

“룬.”

봄볕에 몸을 누이고 단꿈을 꾸고 있던 고양이는 서늘한 기운에 잠을 깨어 옌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듯 했다. 반갑게 다가오던 룬은 그의 곁에 서 있는 처음 보는 아이의 모습에 단박에 경계의 빛을 띠었다. 그의 옷에서 나는 체취가 아이에게서 풍겼고, 평소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피하는 기색이 없었는데 왠지 이 아이에게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이. 그르릉, 하고 룬의 깊숙한 폐 안에서 울리는 경계의 소리에 그는 무심코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놓고 몸을 숙여 괜찮다며 룬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룬은 평소와 달리 세운 털을 내리지도 않고 그의 손길을 잠시 느끼는가 하더니, 이내 그 손안에서 벗어나버리더니 아이에게 몸을 부딪쳐 왔다. 그러고 곧장 아이의 얼굴에 달려들어 가면을 향해 발짓을 했다.


“룬, 그러면 안…”

그의 말이 채 문장을 이루기도 전에, 얼굴을 가리우고 있던 가면은 생각보다 쉽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달그락.


낯설다-라고, 그런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물선 느낌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그 표정은 되레 익숙하게 다가왔다. 어째서-

휘이익. 순간,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길게 늘어뜨린 앞머리가 그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는 그 바람을 통해 무언가의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공기의 떨림을 타고 전해져 온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그의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며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왔다. 옌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해야 할 의무감에 입을 열었으나 바람 사이로 말은 형태를 띠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던 그 헹그렉의 북면과 텅 빈 색채처럼 그 아이는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울려 퍼지던 가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아이의 어깨를 보듬어 주었던 덧옷만이 덩그러니 아이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현듯 벗겨진 그 가면 속 아이의 표정이 그 곳에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그의 내부에서 들려오던 그 주인 없는 목소리와 함께 길게 자리 잡고서 쉬이 가시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애타는 마음에 그는 주변을 살피고, 아이를 소리쳐 불렀으나 그는 아이의 모습을 숲 속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하릴없이 빈 공간만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잠시 숨을 들이쉬며 결국은 덧옷을 집어 들고는 공허만이 남은 그 곳을 떠났다. 룬 역시도 잠시 크르릉 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룬은 고양이 특유의 감각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인식했던 것이었을까. 그의 손안에 애초의 목적이었던 목재는 들려있지 않았으나 그는 비어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반도 채 차지 않던 손 안의 온기는 실재했었기에. 옌은 다만 아이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손에 물들어있던 만개한 봄의 초록의 빛을 간직하고 갔기를 바랄 밖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집 앞의 나무 가지 위에 오늘 막 염료를 물들인 목걸이를 하나 걸어 두었다. 아이의 마지막 표정은 어쨌든 웃음이었다. 그 아이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는 어찌 되었든 괜찮았다. 다시 본디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을 것이기에. 그리고는 옌은 혼자 무언가를 향해 웃었다-.

“나는 이제 괜찮아. 기다림은 끝나고, 계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밤새 바람이 다녀가기라도 한 듯, 다음날 나뭇가지 위에는 새벽의 잔해를 간직한 햇살만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녀석아, 과제 마감 좀 지키고 살자. 매번 이렇게 후덜덜 거리면서 쓰면 어쩌겠다는 거니 제발..ㅠㅠ 세이프하겠다는 생각만을 일념으로 마지막엔 거의 휘갈기듯 써내려간 기분입니다. 매주마다 마감에 시달린 듯한 느낌에 무언가 쓸 기분이 안들어 계속 방치하고 있다가 자정이 되기 다섯시간인가 여섯시간 전부터 쓰기 시작했던가(..)
음.. 다른 분들이 제법 바쁘신듯 해서 이번 과제는 제출자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일주일 연장하겠다는 공지가 뜬 것을- 제출하고 나서야 발견한 저.. 그래도 지각은 아니니까 그나마 마음은 편하네요.. 하하... 일주일 더 주어진다니까 음, 저는 그럼 또 마감에 시달리며 2번이나 3번 과제를 해볼까 합니다. 다른 캐릭터분과의 관계라니 솔깃한데 어디 빌려주실 멋지신 분 안계실까나.

음.. 그러고보니 동아리 마감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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