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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것은, 우리는 왜 끝을 알면서도 부단히 달리려 애쓰는가 하는 것이다. 결과란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어떻게든 노력해봤자 결국 그렇게 끝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 불씨를 끄지 못하고 이내 불태우고 마느냐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달릴 때마다 결국은 결과지점에 일찍 다다르게 될 뿐이지 여타 다를 것이 없는데도 왜 굳이 그것을 고집하는 것일까.
무언가 끝없이 파고들어 열정을 토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렇게 자신의 일에, 아니 자기 자신에 파고들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 랄까. 죽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 마음이 있다는 게 가끔, 아니 항상 부러워서 그들의 땀과 노력에 어쩔 수 없이 작아져 버린다.
위대함이라던가, 혹은 존경심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전부가 그들을 위한 수식어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것이 공부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그것이 아니면 다른 그 모든 것은 포기해도 된다는, 자신에겐 그것이 전부라는 말을 그렇게 아이 같은 표정으로 하고 있다니.
미쳐야 미친다.
그들은 그 자신을 불태움으로써 그것을 실천하고 있구나, 하고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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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수가 아니다.
제일 처음 이 말을 보게 된 건 아마 2,3년도 더 전이었지만, 원문 자체를 읽은 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처음 들었을 땐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어서 갸우뚱했는데, 이제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 듯하다. '나'라는 건 단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 분명히 '나'는 하나가 아니다. 인간은 유한 존재이면서, 또한 무한한 존재이다.
'나'라는 인간은 죽어도, 타인에게 남겨진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면서, 또한 타인의 개개인 속에 남겨진, 수없이 많은 '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은 그의 것이 된다고 했던가. 결코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소유할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은 오직 타인을 위한 것. 그리고 또한 역시 '나'는 영원히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를 지칭할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인간이란 그렇기에 유한한 생명체이면서 무한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지.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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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꿈꿔야 할 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주변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라고 했으니 노력하려 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갖지 못한 노력은 결국 모래성과 같은 것이라서 부서지지 않도록 수십 수백 번씩 다시 흙을 쌓아올려야 할거에요. 그것 전체가 나의 삶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완전하지 못한 것이니, 끝나는 그 순간까지 보수가 필요하겠지만 기초라도 좀 튼튼히 다져둬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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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 Carpe Diem
I am the Captain of my Fate, I am the Master of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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