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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물어간 늙은 노을은 오늘의 탄생을 낳으며 서서히 우리의 머리 위에서 사라져갔다. 그 어제의 노을의 열정을 받아 태어난 오늘의 하루는 어느새 세상의 손을 맞잡고 삶의 곳곳에 어제의 시간에서 찾아온 그 마음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다시금 전해주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의 웃음소리도, 혹은 울음소리도 어디에선가 들려왔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다시금 죽고, 다시금 새로이 시작하며 우리에게 시간을 전해주었다. 그 시간속에서 우리는 웃고 또 울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만에 우리들의 시간에 활기가 돌았다. 모두가 그 생명의 숨결을 조금은 어색해 하면서도 다시금 잃지 않겠다는 듯 평소보다 더 들떠있었다. 드르륵, 세월의 시간을 살아온 죽은 나무의 마찰음이 들리며, 이젠 더이상 소년이라 부를 수 없을만큼 이미 세상 속에서 뿌리내린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내려뜨린 짙은 흑발 사이로 보이는 무표정의 눈동자는 그 어디를 향하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모두들 잠시동안 그 눈동자를 마주하더니 이내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 속으로 돌아갔다. 그들 사이에서 가만히 그를 지켜보는 소녀의 모습에 그는 묘하게 미소지었다. 그렇게 서로의 눈을 가만히 지켜보던 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만큼은 모두 잊고 웃자. 사라져간 한 생명을 위해서 우리들 만큼은 웃자.
"말은 다리가 없어도 살 수 있다지만, 말로 태어나 달리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저 무슨 말이냐며 웃으며 넘어가 버렸지만, 어쩌면 그 때 이미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말로 태어나 달리지 못했던 그는 그런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으려 했었던 것이라는 걸,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부단히 애썼던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아차려 버렸기에 애써 웃으며 넘어가려 했었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늘에 나리는 햇살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는 자신의 다리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달렸었던 것일까.
그 녀석이랑 있으면서 항상 생각했어, 그 녀석의 '희망을 전해주는 것'은 미래를 두려워 해서가 아니라 단지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어린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희망을 전해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항상 들었었어. 그래, 그런 아이였으니까. 그런 마음을 가졌던 녀석이었으니까. 자신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애썼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래서 그때 나는 은연 중에 결심했었어. 그 녀석과 함께 그 별에 나의 희망도 함께 전해주자. 매일 밤 전해지는 그 녀석의 희망과 함께, 나의 희망도 전해주자. 그렇다면, 언젠가 그 녀석이 그 별로 가버리게 되더라도 나의 희망을 안고서 그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을테니까.
그를 이해했다고 자만하지는 않겠어. 그 녀석 역시 이해받길 바랬던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그 녀석은 말했었지. 자신은 말로 태어났으나 다리가 부러져 달릴 수 없는 말이니까, 애써 건강한 말인 네가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만, 그 말이 희망을 다 소진할 때까지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고 그녀석 곁에 머물려고 노력했고, 결국 희망을 다 소진한 그 녀석이 그 별로 떠나갈 때까지, 나 역시 희망을 전해주며 마음을 맞닿아 있으려고 노력했을 뿐이야.
아직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나는 그 별로 떠나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매일같이 세상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고 있으려고 해. 언젠가, 내 희망을 다 소진한 그날 그 녀석을 만나게 될 때, 그 옛날의 열정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전해주기 위해서…
나는… 그걸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쓰고 싶은데 더이상 쓰지 못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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