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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타로 릴레이. Pendant [펜던트] 02 From . 은유니




‘하아.. 하아’

얼마나 뛰었던가. 체력의 한계를 실감할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뛰었다. 어디에 떨어트렸을까, 도대체 어디에 두고 온 거야, 한 율 ! 집과 학교 사이의 길을 몇 번이고 뛰어다니고, 어딘가 들렸을 법한 거리를 몇 번이나 살피고, 또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바보야 !”

율은 신경질 적으로 스스로를 질책하며 그렇게 소리쳤다.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다. 스스로의 잘못에 너무도 화가 났고, 또한 승혁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온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그 게 어떤 물건인데.

안 그래도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마구 휘젓던 율은 문득 손을 멈추었다. 무엇인가 생각이 난 것일까. 멈춰있던 다리를 다시 내딛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 있더라도 찾아내고 말겠다는 듯. 투명한 갈색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햇빛에 흔들렸다.

‘콜록, 콜록.’

갑자기 멈춰서버린 율은 자신의 목을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콜록거렸다.

반짝. 저 어딘가에서 마지막 빛을 붉게 빛내며 태양이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어느 성격 급한 별 하나가 문득 나타나 시간의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내,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 희미한 별빛과 전신주 불빛을 붙잡을 듯이, 그 빛에 반짝이는 갈색 머리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이 녀석, 어디로 간 거야.. ’

같은 시간, 승혁은 다급한 마음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결국에 받지 않았고, 불길한 예감에 어느새 자신은 옷을 걸친 채 율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는데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지.

그러나 도착한 곳에는, 방금 왔다간 듯한 흔적만 있을 뿐, 그 어느 누구의 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헤어질 테니까, 친구가 아닌 거냐?」

율이 외친 그 말이 계속해서 마음속을 맴돌았다. 사실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도. 공간을 초월한 그 마음이 닿은 걸까, 승혁의 발길은 어느새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문득 떠올랐다.

‘아, 율 그 녀석…’


‘콜록 콜록’

가쁜 숨을 내쉬다 말고 이내 기침이 나왔다. 산소가 부족한 폐가 뒤틀린 듯 아파왔다. 율은 그 사이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을 몇 번이나 돌다가, 다시 특별실에 가보았다.

털썩. 다리가 풀려 무릎이 꺾였다.

‘어딘가에는,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하윽..’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멈추며 율은 그렇게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더 이상 지탱할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잃어버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바보같이, 왜.. 왜 ..!

참으려, 참으려 했지만, 또르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복도를 통해 들어온 푸른 달빛이 그의 얼굴에 일렁거렸다.

‘콜록 콜록’

율은 다시금 기침을 했다. 그러다 문득 손을 들어 눈물을 스윽 닦아내더니 다시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둠으로 꽉 찬 복도를, 율은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래.

‘반드시-’


발밑에 어둠이 깔렸다. 그 어둠 속으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늘 보아왔던, 태양이 따스히 내려쬐는 교정이 아닌, 그저 차갑고 어두운 그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승혁은 문득 걸음을 늦추었다. 빠르게 내딛던 발이 서서히 멈추었고, 왠지 모를 예감에 승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율은 그렇게 학교 건물을 나와 운동장 가를 조용히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한숨을 푸욱 내쉬던 율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어둡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문득 하던 율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반짝.

그때였다, 운동장 옆의 철장 가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분명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의. 율은 반짝이는 그 무언가의 자취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듯한 모습으로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율의 표정이 이내 밝아지며, 그곳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철장 뒤의 그것을 잡으려 했다.

‘닿지 않아.. !’

율은 쓴 표정을 지으며 손을 있는 힘껏 내뻗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닿으면 떨어질 듯 아슬아슬 하기만 했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있는 교정, 그 바로 옆으로 강이 흘렀다. 승혁이와 둘이서 같이 놀곤했던..

‘콜록 콜록’

계속해서 기침이 나왔다. 너무 무리해서 뛴 것일까.

‘콜록 콜록’

‘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콜록 콜록’


고개를 숙인 채 한껏 느려진 걸음을 걷던 승혁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 눈길 닿은 그곳에 율이 있었다.

“한 율 !”

승혁은 다시 재차 발걸음을 빨리했다. 두 눈 가득히 율의 모습이 들어오건만, 율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내내 붙잡아 두고 있던 그 예감이 다시금 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한 율!”

다시금 그 이름을 외치며 승혁은 어느새 율의 곁에 와 있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야, 한율.. 왜 그래?”

승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율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율은 그대로 쓰러져 있었고, 짙은 혈향이 가득히 매우고 있었다. 율의 입가에, 그리고 그의 차가운 손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있잖아, 승혁아.」

「으응?」

「만약에 우리가 헤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야?」

율은 아이다운 순수한 표정으로, 무언가 걱정이 있는 듯 근심 깊은 말투로 승혁에게 물었다. 승혁은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에 문득 율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그러다 빙그레 웃었다.

「바보, 어떻게 하긴. 헤어진다고, 우리가 만난 시간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만..」

웬일인지 자신 없는 목소리.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괜찮아. 언제까지고 떠나지 않을 테니까.」

다정한 승혁의 말투에 율은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한 듯 그 특유의 따스한 태양 같은 밝음을 보여주었다. 승혁도 율을 따라 빙그레 웃었다.

「응! 승혁이는 율이의 승혁이이고, 율이는 승혁이의 율이니까 ! 그렇지?」

율은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그렇게 다짐하듯 물었다.

「……응!」



어스름한 불빛이 두 눈에 내리쬐었다. 갑자기 찾아온 빛에 눈을 찡그리더니, 이내 그 빛을 두 눈 가득 받으며 율은 눈을 떴다. 학교에서 펜던트를 찾던 기억까지는 선명한데,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 좌우를 살피니 하얀색 커튼 사이로 태양의 손길이 방안에 들어와 있었고, 자신의 손에는 주사바늘이 꽂혀있었다. 그 위엔…

‘아, 병원인가..’

율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이 쓰러졌던 것일까.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머리가 몽롱했다. 누가 자신을 병원으로 옮겨준 것일까.

“아”

‘펜던트 ! 펜던트는 어떻게 된 것이지?’

율은 순간적으로 되살아난 기억에 화들짝 놀랐다. 잃어버렸던 것, 분명 그곳에 있었는데….

-끼이익-

방안 가득히 울리는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사람 한사람이 들어왔다. 짙은 검은 머리의, 그만큼이나 무표정한 얼굴로서 들어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승혁이었다. 그래도 깨어날 율을 걱정했던 듯, 움푹 패인 두 눈가. 깊이 잠들지 못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 잔을 들고 들어오다 율이 눈을 뜬 것을 발견한 승혁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율의 침대 곁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 차분히 율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던 승혁은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빙글 의자를 돌려 율의 침대를 등졌다. 마치 ‘나 화났어’ 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무, 무슨 일이…”

“급성 폐렴이래.”

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혁이 그렇게 대답했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율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도 그렇게 가만히 뒤돌아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승혁의 반응에 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율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런 율의 마음을 알면서도 승혁은 율의 얼굴을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겁쟁이’

승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질책했다. 늦지 않게 율을 발견했기에 다행이었지만, 쓰러져 있는 율을 보는 순간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로 학교에 갔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 탓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있잖아, 승혁아..”

망설이는 듯한 율의 말투.

“왜..?”

“나… 그 펜던트.. 잃어버렸어.”

작아지는 율의 목소리엔 미안한 감정이 한껏 묻어나왔다. 그걸 찾으러 학교엘 갔었던 것일까. 율은 자신이 쓰러진 일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고서, 승혁이에게 그 말을 먼저 꺼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던 건 그 탓이었을까. 승혁은 그 말을 묵묵히 듣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율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기껏 그 펜던트 하나 때문에.

“나도 강에 던져버렸다, 바보 율.”

승혁의 말에 율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승혁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율은 왠지 그 속에서 승혁이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듯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구나.. 쳇..”

“응.”

승혁은 율의 대답에 겨우 안도한 듯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잖아…”

결심한 듯한, 분명한 목소리로 율이 조용히 승혁을 불렀다.

“응?”

“나, 열심히 할 테니까…”

“……”

“나, 열심히 해서… 너 가는 고등학교 같이 갈 테니까.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해볼 테니까….”

“…응”

율은 조금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꼭 같이 고등학교 가서, 끝까지 같이 해보자.”

승혁은 그런 율에 말에 그제서야 뒤를 돌아 율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율의 눈이 반짝였다. 언젠가, 하늘의 그것을 가져와 저곳에 달아 놓았다고 생각했었던가. 승혁은 그런 생각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네 외로움은 내가 가질 테니까, 내 외로움은 네가 가져.”

율은 승혁의 말에 자신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서로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 꼭, 같이 하자. 언제까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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