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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은유니 2005. 10. 5. 23:53
[가을여행]  
    [초.중.고 - 가을여행, 대나무, 소싸움 중 선택]

 물감을 풀어놓은 듯 머리위로 펼쳐진 우윳빛 구름들과 손에 닿을 듯, 그렇게 땅을 보듬어 품고 있는 하늘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늘바라기. 해바라기가 언제나 태양만을 그리워하며 그곳을 바라보듯,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러나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저 높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그리움 한 조각을 종이비행기에 띄워 보낸다. 이렇게 세상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풍경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추억의 손길이 내 눈을 덮는다. 추억.. 이젠 그 손길과 그림자만으로 남아 나를 지켜주는 그들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어느새 눈앞엔 여덟 살 정도 되는, 머리를 곱게 두 갈래로 땋아 웃으며 뛰어노는,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래,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뛰어놀았구나.. 그저 하늘과 땅의 품안에서 뛰놀고, 자연을 닮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추석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외할머니께서 계시는 외갓집으로 떠났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외할머니의 따스한 미소가 떠오르고, 마냥 순수하기만 했던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태양과, 하늘과, 땅과, 물의 보살핌을 받은 논에는 농민들의 땀으로 영글은 벼들이 무르익어가고 그곳의 가을은 나무들에게 ‘떠나보내기’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쉬운 듯, 그리고 보내기 싫다는 듯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들과 바람의 손을 잡고 햇살을 듬뿍 받으며 나무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낙엽들.. 그, 변치 않고 또다시 찾아온 가을의 모습에 뭉클, 왠지 모를 슬픔이 치어 오른다. 또다시 우리를 찾아와 주었구나.. 그렇게 잊지 않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구나.. 시골 가는 아버지의 차 안에서 “안녕”하고 찾아온 가을과 인사하며 다른 의미의 “안녕”을 노래하며 여름을 떠나보낸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달리며 그렇게 곱씹어 가을의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외할아버지 묘에 잠깐 들렀다 가자.” 그러다 문득 아버지께서 말을 꺼내셨다. 할아버지.. 내가 열두 살 철없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간암이라는 병으로 우리들에게서 떠나가시며 세상을 등지셨던, 나의 외할아버지.. 언제나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셨지만 인자하게 웃어주셨던.. 논과 논 사이의 좁은 골목을 지나, 콩밭과 고추밭을 지나 그렇게 우뚝 선 외할아버지의 묘 앞에서 다 못한 가슴속에 묻어둔 많은 이야기를 꺼내어 조곤조곤 말해본다. 배를 깎아 할아버지께 전해드리다 문득 풀 속에 숨어있는 방아깨비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다리를 잡고 손위에 얹어보았더니, 몸을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며 그 작은 손 위에서 방아를 찧는다. 아하하, 환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풀 위에 얹어주었더니 다시 붙잡을 새라 재빨리 사라져간다. -빙긋- 너도 가을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이구나. 반가워.
 다시 차에 올라 얼마 안간 뒤 외갓집으로 가는 골목이 나왔다. 골목 한쪽으로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밤나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저기 밤송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집에서 밤을 삶아 먹으면서도 따끔따끔 밤송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밤의 모습을 잊고 있었다니.. 작은 아기 밤나무가 될 밤송이들을 키워낸 밤나무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꼬맹이 무렵, 그래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1학년 즈음에 사촌동생들과 언니들 오빠들과 함께 이곳에서 밤을 따던 나의 모습이 그곳의 풍경과 겹쳐져 내 눈앞에 사진처럼 펼쳐진다. 언니 오빠들은 긴 나무막대기로 밤송이를 떨어뜨리고, 우리들은 밑에 떨어진 따끔따끔 밤송이 속에서 잠자는 밤들을 깨워 바구니 속에 담고.. “할머니, 할머니”하고 달려가면 “그래, 오냐”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그것을 삶아 따뜻하게 두 손에 꼭 쥐고 나눠 먹었던.. 생생한 어린시절 추억에 문득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아.. 그래 그랬었지. 뜨겁다 하면서도 헤헤 웃으며 조그마안 밤들을 오물거리며 잘도 먹었었지. 머리가 아닌 심장이 기억하고 먼저 두근거렸나보다. 그렇게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촉촉하게 젖어 먼저 두근거렸나보다.
 그 길의 끝부분에 나지막이 자리 잡은 외갓집의 앞마당에 도착하여 나는 “할머니, 할머니”하고 그때처럼 뛰어가 본다. 그곳에서, 이젠 혼자 남아 추억의 장소를 지키시는 할머니께서 그날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 오냐. 우리 새끼들..”하며 맞이해주신다. 할머니..할머니.. 이번 추석에도 저희, 이렇게 왔어요. 수많은 추억의 손길을 따라, 가을의 그리움을 담아 우리가 왔어요. 가을, 외갓집을 향했던 수줍은 그리움들이 미소 지으며 따스한 햇살 아래 우리를 비추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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