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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9.02.11.

은유니 2019. 2. 11. 14:44



1.

일기를 다시 써보자.


몇번째 다짐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금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기분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18년 교지 연말결산 이후부터 꾸준히 해온 생각이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1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데 젬병이었던 나는 그만큼이나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하는 데도 서툴렀다. 이를테면 올해의 책,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일 등등을 곱씹어보고 정리하기에 나는 너무도 귀찮음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정리하기보다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게 더 중요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눈 앞의 일들을 지나간 것으로 잘 넘기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지쳐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고, 그대로 놓아버리기보다는 잘 보듬어 정리해두는 것이 언젠가의 나에게도 좋은 변환점이 될 수 있겠더라. 친구들의 연말결산 발표는 그 친구가 자신의 지난 한해를 돌아보기에도, 우리가 그 친구의 근황을 업데이트받기에도 퍽 좋았고, 사실 즐겁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상들이 그대로 달아나버리는 것이 못내 아쉽고 속상하기도 했다. 내가 어떤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오롯이 기록하고 저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게 중요했던 일들만큼은, 그 일에 대한 당시의 내 마음만큼은 정리해둬야지 싶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나 자신의 성과와 성취를 기뻐해줄 수 있어야 했다. 물론 내게는 트위터가 있고, 이젠 매일의 일상을 공유해주는 애인님이 있지만, 일기만큼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매체는 없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기를 다시 써보자. 우선은 지금부터.


2.

지금 다니는 회사를 이번달까지만 다니고, 다음달부터는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다.


사실 현재 직장을 오래 다닐 수는 없겠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경험 없는 대표의 자질 문제, 체계화된 시스템 없이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는 회사에 대한 문제, 또 업계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이 언젠가부터 가슴 한편에 떠날 수 없는 짐으로 자리하고 앉아 있었다. 퇴사를 고민할 때마다 조금씩 인수인계 파일을 작성해왔고, 언젠가부터 새로운 도전이나 아이디어를 내는데 주저하게 됐다. 그만큼 내 일이 더 늘어날 뿐 성과나 보상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지배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1년은 있어야지 싶어 한해를 버텼다. 일 자체에서 오는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현재를 포기하고 또 다시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 망망대해를 건너는 심정으로 이직 준비를 해낼 자신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연초 연봉협상 문제로 마찰을 빚은 뒤엔 굳이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비전도 보상도 없는 이곳에서, 일말의 소속감조차 주지 못했던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다시 취업포털을 들여다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마침 면담 당일 마감이었던 경력직 공고에 지원서를 냈고, 그곳과 인연이 닿아 면접을 보고 최종합격하게 됐다. 서로의 기준과 상황이 마침 맞아 떨어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입사 시점은 3월 첫주쯤. 아직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지만, 다시 한번 삶이 조금씩 변한다.


바라는 점이라면 체계잡힌 회사에서 오는 안정감. 혼자 모든 걸 기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것이 아닌, 팀이 함께 논의하고 함께 실행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더는 당장의 내일과 내년을 고민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그래도 괜찮다는 안심이 드는 근무환경. 더 나은 조건으로 옮기는 만큼, 더이상 정체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지.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회사에 적응해나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피곤하기도 하고, 다시금 커다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겁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말처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일, 일어날지 말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 먼저부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하자. 일단은 더럽고 치사했던 이곳을 나가서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 기뻐하도록 한다. 어쩌다 삶이 어떻게 흘러 여기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나는 스스로를 조금 더 믿고 안심해도 괜찮다.


3.

최근 또 하나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다. 4년 반동안 함께했던 애인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


이미 조금씩 내 일상과 생활을 공유하기 시작했지만, 진짜 제대로 같이 지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나온 건 반년 전쯤. 조금씩 당신의 일상과 생활이 나에게로 넘어오고, 조금씩 매일매일을 함께 보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서로가 신경쓰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고, 불편함을 해소하고 친숙함을 만들어내는 시기. 그리고 이번달부터 애인님이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이사를 할 명분(?)도 마련되었다. 둘 모두의 일이 달라지는 급변의 와중에 이사를 갈 지역을 대강 정하고 조건을 검토해본다. 아마 다음달부터는 본격적으로 경제적인 부분도 필요한 만큼 합쳐 나가겠지 싶은 요즈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비혼에 대한 결심은 흔들림이 없지만, 이제는 혼자 꾸려가는 생활보다 함께하는 삶에 대한 상이 더 익숙하게 그려진다는 건 색다른 변화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당신이 내 옆에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 길을 함께 걷다 보면 언젠가 끝이 보일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의식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끝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도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생활을 택할 만큼의 용기는 생겼고 이제는 그 변화를 주변에도 조금씩 알리고 싶어졌다. 이런 삶의 형태도 있다는 걸,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퀘스쳐너리한 나는 ‘Love wins, 사랑이 이긴다’는 말을 긍정하면서도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사랑은 그 형태와 빛깔에 무관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긍정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가해지는 시선들을 견딜 수 없었다. 실은 여전히 견딜 수 없다. 나의 삶은 애인님이 없어도 여전히 완전하고, 당신이 있기에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을 알게 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았던 내가 불완전했던 것도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또한 앞으로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테다. 사랑하지 않는 상태보다 사랑하는 상태가 더 위대한 것도, 더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 다만 타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나는 사랑을 긍정하지만, 동시에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한다. 지금은 온힘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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