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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8년 하반기

은유니 2019. 2. 1. 18:37



1.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라는 작품은 나한테 대체 뭘까. 처음 본 뒤로 매번 무대에 올라올 때마다 2-3번씩 보러갔고, 열번쯤 넘게 봤으니 이젠 그만 볼 때도 됐나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올라왔을 땐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솜이니까' '그래도 연말이니까' 하고 예매를 했다.


막이 오르고 첫 등장씬에서부터 대사와 넘버 작은 디테일 연기까지 거의 외우다시피 했는데, 그보다 더 수십 수백번을 더 ost를 들었고 무대영상을 찾아봤는데, 이젠 정말 새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지 않나 싶어서. 엘빈과 토마스라는 두 캐릭터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아서. 그래서 이젠 진짜 아무 감흥없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짧은 순간- 난 놓친 걸까"하고 토마스가 첫 넘버를 부르자마자 어 왜이러지 싶을 만큼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이내 손수건을 챙겨오지 않은 걸 후회할만큼 펑펑 울었다. 내가 그동안 솜을 어떻게 봤는지 잊어버릴만큼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부 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흡수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동안 어떻게 내가 이작품을 보고 이해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새로운 방향에서 새로운 넘버가 쿡 쿡 박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났다. 너무 새롭고 충격적이라서 엉엉 울어버렸다.


2. 2018.12.24~29.

혼자 밥먹고 혼자 카페가고 혼자 서울나들이가고 혼자 영화도 공연도 봤지만 혼자 여행가는 건 처음이다.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


이번 혼자여행의 키워드는 바다와 책방이었다. 지난 나흘간 일곱 군데의 책방을 들렀고, 네 권의 책을 샀다. 어쩐지 책을 샀든 사지 않았든 들르는 곳마다 이것저것 받고 또 환대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컸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겠지만 혼자만의 추억이 되었다. 널 데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 생애 처음으로 해운대와 만난 날 마주한 책. 이수지 작가의 경계 3부작 중 하나라며, 책방지기님께서 한장한장 넘겨가며 너무도 신나게 애정을 담아 설명해주시던 그 잠깐의 대화가 오래도록 한켠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3. 그 누구도 아닌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개인 한 사람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곳에 대한 회의감도 동시에 느낀다. 체계화해나가는 것도 결국 제몫이다.


4. 나는 이제 회피하지 않고 용감해지려고 해. 더 이상 도망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어. 목소리를 일부러 높이고 눈을 더 크게 뜨고 네가 손을 올리면 나도 맞받아치려고 해. 얼굴이 째지고, 머리가 터지고 이빨이 부러질지도 몰라.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그때도 너희들은 너희들만의 세상에서 “맞을 만한 짓 했다”며 우릴 조롱하겠지. 그래 나도 알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적폐, 가장 오래된 갑질,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통제의 역사는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고, 내적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까지 우리는 밟혀도 밟혀도 일어나고, 죽어도 죽어도 되살아나, 아무리 늦더라도 다시 너희들 앞에 나타날 거야. 이 글을 읽는 너희들은 지금도 찌질한 댓글이나 달고 있겠지만,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님을.

-이나영 교수님, 정동칼럼: https://t.co/XupaSKMiIX


5. 2018.10.13.

ㅇ이겼따!!!!!퓨ㅠㅠㅠㅠㅠ 자력 탈꼴 ㅠㅠㅠㅠ

우리 창단 첫 탈꼴 창단 첫 4할 승률...


뭔가 시즌 내내 엄청 힘들고 질리고 화나고 짜증나고 서럽고 억울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기쁘고 놀라운 순간들은 언제나 있었고 시즌 끝났다고 이제 또 언제 야구보나 벌써 아쉽다.


생각해보면 시즌 초반에 커감독님이 5할 승률 5강 가을야구 이야기할 때 코웃음치면서 우리 아직 4할 승률도 못해봤다고 실질적인 목표는 탈꼴에 4할 아니냐고 했는데 진짜 딱 그만큼만 이뤘네... 9위에 4할 승률... 그래도 60승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 지난 주말에는 박지리 작가 원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뮤지컬을 보고 왔다. 책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상당히 큰 인상을 남긴 공연이었는데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는 카피보다 "그렇게 아이는 죽는다" "그렇게 아이는 죽었다"는 대사가 심장을 관통한듯 아리게 다가왔다.


사실 원작 다윈영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헝거게임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소수자에 대한 시스템적인 차별과 억압을 다룬 판타지적 배경의 학원소설이자 한 사람의 죽음의 배후를 뒤쫓아가는 범죄스릴러물이고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로도 읽혔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그 무수히 많은 생각의 갈래들을 두고 약간은 방황하듯 헤맸는데, 뮤지컬은 "그렇게 아이는 죽는다"는 말로서 이 방대한 소설을 정의내리고자 했고 공연을 보고난 뒤에는 어쩌면 그말만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한 말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죽었고,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이를 죽게 했는가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시 어른에게 향한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저 하늘이 지금 얼마나 새파란지

풀냄새가 얼마나 숨 막히게 진한지

어린 새가 이 순간 어떻게 날았는지


어린 새가 이 순간 어떻게 날았는지 알려 하지 않았던 어른에게.


생명은 불가능에 대한 질문 이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

죽음은 어두움에 대한 질문 너는 이 세계를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가


이 세계를 견딜 수 없었던 아이는 죽임을 당했고, 또 스스로를 죽였다. 타인을 혹은 자신을 죽여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 세계는 그럼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마지막 장례식 장면은 그래서 그저 슬프기보다는 참담하고 또 비참했다. 3대에 걸쳐 비극은 되풀이되었고, 풀리지 않는 매듭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족쇄를 채운다. 결국 아이들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언젠가 이 세계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러너 영의 차가운 손을 잡아준 그 누군가의 관심과 온기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게 뮤지컬 다윈 영이 놓치지 않고 있는 희망의 씨앗일테다. 여전히 죽음은 돌이킬 수 없고 생명의 불씨는 희미하리만큼 옅지만.



7.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대사 아카이브 中

그렇게 반짝이던 한 소년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졌어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관 위에 쌓여가는 꽃잎들은 누굴 위해 눈물을 글썽이나

묘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지금 누굴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저 하늘이 지금 얼마나 새파란지

풀냄새가 얼마나 숨 막히게 진한지

어린 새가 이 순간 어떻게 날았는지


생명은 불가능에 대한 질문 이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

죽음은 어두움에 대한 질문 너는 이 세계를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검은 하늘 아래 역사는 시작되고

비에 젖은 풀밭에 악취 속에 자라나

어린 새가 추락할 때 완성된다는 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으며 시간은 관문을 통과한다

어른이 된다.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그렇게 아이는 죽는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리

저 하늘이 지금 얼마나 새파란지

풀냄새가 얼마나 숨 막히게 진한지

어린 새가 이 순간 어떻게 날았는지



8.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보고 왔어요. 흔치 않은 노년 여성 중심 서사에 따뜻하고 감성적인 넘버가 인상적이었던 공연. 뻔한 모녀 이야기인가 했는데 사랑했던 너를 기억하는 이야기, 혼자여서 상처받았을 너를 잊지 않는 이야기, 무엇보다 나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로 읽혀 좋았어요. 어제 본 영화 '타샤 튜더'와 함께 삶이 저물어가는 그 노년에 지난 인생이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좋았던 기억을 안고 간다고, 아팠던 기억을 보듬고, 잊고 싶었던 나와 화해하며 '땡큐'라고 인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뮤지컬이었어요.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다시 나아갈 용기를 고민하게 해요.


한편으로는 아니영 작가님 웹툰 '엑스트라 데이즈'나 윤필/재수 작가님 웹툰 '다리 위 차차' 생각도 났는데, 그건 아마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로봇, 내가 사랑했던-나를 사랑했던 이의 모습을 간직한 로봇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9. 꿈에 워터 페스티벌 직관을 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예매한 자리에 4DX처럼 흔들거리는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멀미나서 못버티겠단 생각에 도망나와서 다른 자리를 갔는데 진짜 대포에서 좌석을 향해 물대포가 발사되고 있었고... 그래서 케이티가 이겼는지 졌는지 모르겠고 내 살기 바빴음. 야구장에 4DX 좌석이라니 흠터레스팅... 내가 야구장이 아니라 놀이공원에 놀러간 줄 알았따..



10. 오늘 모님에게 "그 사람 좀 정신병 있는 것 같아 정상은 아닌 거 같아"라는 말을 듣고 너무 불편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도 조금은 정상이 아닌 걸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말을 했어야 했는데.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신경쓰지 않으려고 스트레스 상황은 되도록 피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이정도면 잘했지 괜찮아 이야기해본다. 하지만 그러는 척 하는데서 그치는 건 아닌지 다시금 무너질까 실은 겁난다. 겁내는 성격인 것을,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곱씹어보는 성격인 것을 어떻게 할까. 내가 또 이러는구나 생각하고 선을 넘지 않고 견디려 애쓰지만 언제까지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걸까 궁금하고 지친다. 무던하게 지내려 하고 실제로 무던하게 살고 있지만, 자기 전엔 왜 항상 불안할까.


금새 또 피곤해져 버리고 말았다. 자야지. 자고 일어나서 내일은 또 맛있는 거 먹자. 나는 나를 좀 더 돌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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