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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피겨스'(Hidden Figures)의 제목은 로켓 발사에 필요한 수학공식을 의미하는 '숨겨진 숫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알려지지 못한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를 뜻하는 '숨겨진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흑백분리정책이 시행되던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배경으로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등 세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들은 일상 속의 인종, 성차별을 숨 쉬듯 겪으면서도 수학자, 엔지니어로서의 꿈을 향해 유쾌하고 당차게 장애물을 헤쳐 나간다.


하지만 '흑인 대통령' 탄생 이후의 미국에 흑백인종갈등,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이다.


IBM 컴퓨터보다 뛰어난 계산실력을 지니고 있던 존슨은 1969년 달을 향한 여정을 떠난 아폴로11호 발사에 핵심 기여를 했다. 그러나 존슨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은 것은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건 남북전쟁 이후인 1868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19조가 제정된 건 그보다 반세기 뒤인 1920년이다. 첫 흑인 여성 하원의원은 1968년에야 탄생할 수 있었고, 힐러리 클린턴이 첫 주요정당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유리천장을 깬 것은 2016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96년 여성 참정권의 역사를 짊어진 클린턴은 결국 지난 대선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봤다. "나는 96년을 기다렸다"며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의 순간을 그린 '참정권 보장 이후' 세대는 끝내 희망의 로켓이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꿈을 미래의 후대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은 길고, 열매는 여전히 고달프다.


"당신이 남자였어도, 엔지니어가 되길 원했을까요?"는 질문에 "아니요, 이미 엔지니어가 돼 있겠죠."라고 답하는 메리 잭슨의 대답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의 '히든 피겨스'가 마침내 세상에 이름을 불릴 순간을 바라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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