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싫어하고 때론 증오했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었던 믿고 있던 그 사람이 행했다던 그 행동과, 그 속에서 견디어 왔을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시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행복이었던 그 삶들이 더 이상 당신에겐 행복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래도 역시 함께하고 싶어하는 것이 내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나 없고 당신 없는 그 삶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그 가능성과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리라는 그 쓰라림이, 뒤섞이고 뒤섞여서, 결국 나는 그 누구도 미워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또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생각이 멈추지 못하는데 입안과 몸은 굳어서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일으킬 수 없었다.
여전히 그건 내게 무섭고 고통스럽고,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해결해야만 하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임과 동시에, 외로움이었다. 어른도, 당신들도, 결코 완벽하고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당신들의 외로움과 아픔과 눈물이 보이면서, 또 동시에 당신들의 이기심과 증오가 보여서, 나는 그 누구에게 기대지도, 그 누구에게 나는 괜찮다고 당신은 괜찮냐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웃어보이거나 먼저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한 올 한 올 비집고 나오는 감정들이 매일 생각나지 않을 만큼은 괜찮아졌다가도, 그래도 조금은 이야기하고 싶어졌을 만큼 편해졌다가도, 다시 한번 왈칵하고 솟아나오는 그것은 모든 것이 와르르 하고 무너져내리듯이 옆에 누가 있고 내가 어디에 있으며, 그동안 어떠했는가와 관계없이 주저앉게 만든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잔인한 행동이었을까. 차라리 속시원하게, 말했어야 했을까. 무섭고, 두렵고,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할 결심까지 했다가, 그러다 또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릴 만큼 약하고 다시 한 번 죽고싶다는 안 좋은 생각까지 해버리게 되었다고. 혹시 나 때문에 당신이 그 모든걸 참아왔다면, 혹시 내가 조금 더 좋고 강한 사람이여서 당신들을 보듬을 수 있었다면, 혹시, 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하고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내 생각과 당신들 생각과, 그 모든 생각들에 파묻혀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하지만 끝내 나는 그 모든 것이 무서워 외면했고 소리질렀고 벗어나고 싶었고 도망쳐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당신들은 울었고, 그리고 다시 웃었다. 그 간극이, 너무도 무섭고 소름끼쳐서, 난 언제부터 집이 무서웠고 불편했고, 그러다 언제부터 다시 집이 편해졌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무섭고 두려워 자리를 피하고만 싶어질지, 언제쯤 정말 '괜찮다'는 것이 진심이 되어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었다.
정답이 없는 길. 내겐 너무도 큰 문제로, 큰 어려움으로, 외롭고 서럽고 지치고 죽을 것만 같은 일로 다가오지만, 누군가는 비슷한 일을, 누군가는 더 힘든 일을 겪고 있을 이 모든 일들. 그래서 난 가족이 무엇인지 끝내 답을 찾지 못했고, 그럼에도 왜 나는 다시 가족을 찾고 싶어하는지, 그런데도 나는 왜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고' '함께 한다'는 게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또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함께 하고 싶어지고, '즐거운 우리 집'을 바라게 되는 것인지. 불가능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언제쯤 이 모든 이야기들을 객관화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모든 감정들이 무뎌질 수 있을까.
모든 감정에 진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턴가 알 수 없이 시작된 균열은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퍼져나갔고, 난 그 모든 확신을 담은 감정들이 신기했고, 그 모든 감정들이 불안하고 위태로워졌다. 이젠, 정말, 모르겠어서, 안쓰러운 그대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가도, 그 행복이 내가 이루어줄 수 없는 것임을 직시하게 될까봐, 혹은 나만이 이루어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될까봐, 또 다시 두려워진다.
가족은 뭐야? 사랑한다는 건 뭐야? 좋아한다는 건, 함께하고 싶다는 건 뭐야?
진심은 존재해? 내가 행복하고 싶다는 게 이기심이라면, 그럼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해?
그럼에도 이기적이지 못하게 되는 나는 그럼 그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인간의 잔인함에는 끝이 없어. 나도, 당신도, 당신들도. 어째서일까,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걸까.
나는 그래도, 내 졸업식에, 당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또 다시 바람을 품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