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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무언가가 나의 삶에 개입하기를, 그래서 바꾸어 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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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정신이 어딘가 한 군데 빠져있어서, 해야 할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시험을 치고, '어떻게든' 과제를 제출하고, 어떻게든 약속엘 가고 어떻게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지내고 있는데, 결코 만족스러운 것도, 결코 완전한 것도, 결코 괜찮다 싶은 것도 아니라서 씁쓸하다 :(. 과제는 제출하지 못하거나, 제때 제출하지 않거나 하기 다반사고, 시험은 망치기 일쑤고, 약속에도 늦기 버릇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온전히 다 하지 못했다.
일단 이걸 해야지, 그래 일단은 이걸 먼저 하자,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내일로 미루되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이러다 보니까 정작 중요한 것들은 송두리째 놓치고 있는 기분이다. 애초에 그만두면 좋았을 것을, 왜 포기하지 못하고 늘어져서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까. 하지만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다라든가, 그만둘 걸 그랬다 라든가,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 후회할 게 분명하다든가, 하는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해 나간다.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는 말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래. 일단은 이걸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머지는 '일단' 그 다음에.
나를 붙잡는 의무들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어쩐지 포기는 빨라지고, 그만큼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런 답답함이 쌓일 때의 스트레스는 어쩐지 잠으로 풀게 되고, 방 안은 내 정신상태만큼 어지러워진다. 인터넷이 안 된다. 아, 학교나 가야지.
어떻게든 하루가 간다. 참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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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눈길을 주지 못했다. 그저 몇 가지 소식을 흘려 듣고 몇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만, 이내 제자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늘 100%의 열정을 다하고 살아가지 못한다. 나의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에 온전히 나를 다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러지도 않고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내게는 나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 영역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니까.
실상, 잘 모르겠다.
그런 나를 누군가는 비난했지만, 나는 그 앞에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100%를 다하며 사는 그대의 모습이 대단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그다지 닮고 싶지는 않다고. 나는 이따금 내 체온을 충전해야 하고, 이따금 그대들에게, 그것들에게 온전히 다하기 앞서 스스로를 챙겨야만 한다. 이건 이기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라고, 나를 보호하지만 사실 비난하는 그로부터 나를 그렇게까지 보호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런 사람도 있나보다, 그런 일도 있나보다, 하고 일면 포기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마 그건 인정하고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포기해버리는 거였다. 그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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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11월이 되기 까지만. 일단은 12월이 오기까지만. 일단은 당신의 얼굴을 보기까지만.
11월 1일에는 영화제를 가고, 11월 2일에는 사진을 찍고, 11월 3일에는 회의를 하겠지만, 11월 4일엔 소풍을 가자. 누구와 같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갈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갔다가 책을 읽자. 그래, 서점도 들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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