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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내일은 추우니까, 집에 있어요.” 이런 말을 들었다. 밤이었고 오래 걷던 중이었다. 춥나. 그런 것도 같아서 알았다고 답하려는데 기침이 났다. 자꾸 입이 얼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없는 걸까,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걸까. 추워서 말조차 얼어붙은 걸까. 문득,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무나 추워서 말이 얼음알갱이로 변해버려 겨울 동안은 아무도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하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 살던 한 처녀가 죽기 전에 남긴 말도 예외 없이 얼음알갱이로 남았다. 이웃에 살던 부자는 그 말을 가난했던 처녀의 가족에게서 사들였다. 봄이 되고 날이 풀리자 말들도 풀려나 들어줄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지만, 뒤늦게 돌아온 처녀의 연인은 그 말을 돌려받지 못한다. 늦었으니까.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굳이 찾자면 춥다고 해야 할 일을, 말을 미루지 말라는 것 정도일까. 겨울이니 추운 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얼어붙지 않고 차가워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있는 일이니까.



서대문구에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 있다. 먼저 보낸 딸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지가 만든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사라지지 않을 기억의 상징이니,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기억의 자리도 또 없지 않을까. 도서관이 세워지는 동안 그 모습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찍어 전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진과 함께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좋았을 것이나 그럴 수 없었기에, 돌아올 수 없음에 대한 증거로 도서관이 생겨났다.


애도는, 누군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는 마음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사라졌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은 없는데, 마음만이 남아서 그 사람을 향한다. 그러니 기다린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이를 살게 한다. 그가 여기 있었고 그것을 안다. 그러니 기다린다. 곁에 이렇게 슬퍼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그가 그러는 이유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때가 분명 오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오래, 그렇게까지 슬퍼하는지, 알 수 없다. 이유를 모르고, 모를 것이다. 슬픔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나치다고 여길 것이며,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마음들을 간직한 채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이 살기를 바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울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니 곁에서, 기다리는 일을 기다려 주자. 그들이 슬프지 않을 때까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들을 기다리자. 그러니 당신들은 기다려야 할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말하자. 네가 없는 세계, 그렇게 무너진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그렇게 서로를 기다리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그것뿐이다. 슬픔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실패를 견디면서, 그가 그 시간을 걸어서 넘어올 때까지 손을 내민 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그들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을, 우리를, 나를, 너를, 살게 두”라고 말해야 한다. 



4월 17일. 나는 어떤 소설의 문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있지, 내일, 이 세상이 끝난다고.”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겐지와 겐이치로>에 수록된 <가죽 트렁크>라는 단편에 있는 문장이다. 아빠와 어린 딸의 대화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 딸이 아빠에게 말한다. 만약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내내 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딸은 아빠에게 묻는다. 이 세상이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에 있지. 대답할 수 없는 아빠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생각하기 시작한 아빠에게 딸은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뭘 하고 있으면 좋아?”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뭘 하고 있으면 되는 걸까. 질문은 답의 형태로 주어졌다. 세상은 끝난다. 내가 사라지는 식으로 끝날 수도 있고 세상이 사라지는 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뭘 하고 있으면 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기다려야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무엇을? 끝나는 것을?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네 옆에 있는 거다. 나는 너를 기다려야 한다. 네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기다린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직 추워 떨고 있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로 인해 끝나버린 세계에 대해서도. 그 세계에 살게 될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 엄청난 발견을 했어.”

“어떤?”

“그 사람들의 사진이 있거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 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인 거야.”

“흠, 그렇군. 그것도 하나의 견해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사진이 없거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들은 없는 거야.”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12월 19일. 지금 그들은 어디 있을까. 그들의 말을 얼게 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산타클로스도 아닌데 말을 전하기 위해 굴뚝에 사람이 올라가게 하는 이런 세계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을까. 끝나지 않은 기다림과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끝내 얼어 있지 않기를, 너무 늦기 전에 그 말들이 전해지기를, 그 마음들이 여기 있었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일이므로 바란다.


언젠가,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추우니까, 집에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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