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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은 아니라고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아까 소월길에서 들었던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떻게 내 영혼에 생긴 상처를 어루만졌는지, 그 아리아를 들으며 멀리 보이던 도시의 불빛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순간, 어떻게 갑자기 지난 일 년 동안의 외로움이 물밀듯이 내게 밀려왔는지, 이별의 기억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었는지, 그 아리아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아리아가 끝나고 난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 그 다음에는 종현이 얘기했다. 택시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여겼는지,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어떻게 자신을 위로했는지, 또 옆좌석이나 뒷좌석에 앉아 있는 동안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지, 어떤 경우에도 앞만 바라보면서 그저 냄새만으로 그 사람들이 먹은 식사와 그 사람들의 경제적인 상황과 그 사람들의 직업을 짐작하는 일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에 본 그 불길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얼마나 참혹했는지, 또 자신의 미래는 얼마나 어두운지에 대해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무척 귀를 기울이며. 또 그의 두려움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한편으로는 집에까지 가는 길을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택시가 서울에 한 대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라고, 또 집에 가면 당장 그 양철상자 속에 든, 소학교 시절 할머니의 보물이 무엇인지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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