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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진주에서 친구가 만개한 벚꽃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내온 적이 있었다. 마침 눈이 내리고 있던 그 날의 관악에서 나는 한참을 그 사진을 바라보며 웃었던 것 같다. 하긴, 이 때쯤이면 벌써 동복을 벗고 산듯한 마음으로 춘추복을 입고 싶어서 바등바등 거리고 있을 때겠구나 싶어서. (일전에 찍은 사진을 보니 3월 말이면 벌써 춘추복을 입고 있었다... 참, 이년 사이에 고것도 까먹었구나.) 어제는 같은 친구가 이번에는 만개한 개나리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벚꽃이 곧 절정에 달할 그곳은 벌써 개나리가 늦었다고 한다. 봄을 일찍 알리는 매화가 2월말부터 피기 시작하던 곳이었으니 이제 그렇게 되었겠구나 싶었다.

버스로 3시간 40분, 눈이 온다던가 명절이라 차가 막힐 땐 5시간 반도 넘게 걸리던 그 거리. 한겨울의 추위도 그랬고 수'십' 센치씩 쌓이던 눈도 그랬고 혹은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두 공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감을 가장 강하게 느꼈던 것이 바로 봄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나 역시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스무해의 봄과 겨울을 그곳에서 맞이했었다. 때문에 이맘때쯤- 하면 생각나는 풍경이랄게 존재했고, 4살 무렵부터 살던 집 뒷산에 봄이면 피어나던 매화나 개나리나, 벚꽃이나, 목련이라든지, 봄의 마지막을 알리며 피어나던 배꽃이라든지, 혹은 학교 화단의 들꽃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늘 달뜨곤 했었다. 봄이면 집에서 이십분 쯤 걸으면 있던 시립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는 것도, 책을 빌리러 가는 것도 아닌 하늘을 가득 메운 벚나무들 사이에서 광합성을 하러 가곤 했으니까. 4월이면 벌써- 한 손에 검은 봉지, 한 손엔 칼을 들고 쑥을 캐러 가곤 했었다. 길, 거리거리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을 시기. 풍경마다 보슬보슬한 망울들이 있고 옷과 마음은 가벼워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해 바깥으로 나가곤 하는 그때.

그런 봄을 맞이하지 못한 지 이제 겨우 두해째. 아마 앞으로는 이전만큼 많이 누리지 못할 그 당시의 봄이, 특유의 나른함과 여유로움에 가득차곤 하는 그 시기가 문득 떠오르고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이 생각나는 것은 다만 친구가 보낸 사진 한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의 봄은 너무나 더디게 오고, 겨울은 너무 서둘리 와, 몇 주나 감기를 앓고 기운없이 지낼 때가 많다. 여기와, 여기에 있는 나와, 여기의 풍경과 시간들이 익숙해지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하고 혼자 웃는다. 아직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탓이다. 예전부터 쓸데없이 고민은 많고 밤은 길고 해결은 되지 않곤 했으니까. 첫타자로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뻘글을 쓰자!! 하고 눈을 빛내며 다짐했는데 새벽까지 답이 나오지 않는 글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며칠 전 누군가에게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 허실히 머물던 웃음이 다시 한번 터졌다. 맙소사, 누구한테 하는 말인거지!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 알아차리지 못했단다. 서울 사람같은 분위기라고 느꼈다고 한다. 음, 서울사람 같은 분위기라는 건 뭘까 잠시 망설인다. (말투야 원래 부산 가면 부산말투, 광주가면 광주말투, 서울에선 서울말투 배워오던 사람이었으니 넘어간다 치자.) 이제 겨우 만 일년하고 일개월을 여기서 지냈을 뿐인데,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올 줄이야. 그 말에 떠오른 것은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는 나와 여기 내가 있을 곳을 찾는 나와 그곳에 익숙한 벤치에 앉아 햇볕에 기대고 있는 나였다. 그립다거나 보고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여기에서 앞으로 반복될 계절과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람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전보다 더 더뎌지고 있는 걸음거리를 다시 원상복귀시키길 바라는 마음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어 마음 졸였던 지난 4월처럼- 봄이, 과거의 봄이 아닌 지금 다가올, 내가 기다리는 그 봄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목요일엔 비가 온다고 한다. 방사능 비라는 무서운 말도 들리지만... 내리는 비가 지나가려는 겨울을 붙잡는 대신 더딘 걸음으로 저만치 서있는 봄을 재촉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 든다. 그러면 소풍을 가야지 :-)... 여기서, 지금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하니. 어딘가 녹지 않은 눈들이, 어서 녹기를 기다릴 밖에.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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