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Works:/Harry Potter

Someday

은유니 2008. 8. 17. 22:44

   Someday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빛도 주변에 드리워진 어둠을 전부 없애지는 못했다. 오랜 시간동안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분명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애써 무시하려 애썼으나,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한 가지 생각을 차마 떨쳐낼 수 없었다.
  마치 십오 육년 전의 그때와 같은 분위기였다. 모두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온기를 유지하려 했으나 이미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짙은 흑의 색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점차 떨어져가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언젠가 이 한기가 끝나고 다시금 봄이 시작되지 않겠냐며, 흐릿한 웃음을 나누었었던 그때의 그 불안감. 이제야 겨우 그 밑도 없는 불안감이 지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명한 감각을 통해 되레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불안감을 느꼈다. 불티에 데인 흔적처럼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고 더욱 진해지는 그런…. 벽난로 쪽에서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오려나요?"
  그에게는 너무나 눈부시게 밝았던 그녀. 벽난로 불빛이 일렁이는 그 눈부심 속에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엄습해오는 한기가 주는 불안감을 그녀도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는 안에서 웅크리고 잠자고 있을 작은 생명에게 그런 불안을 전해주고 싶지는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던 것일까. 마치 신성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간신히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기운이 좋지 않은 게 금방이라도 무언가 일어날 듯이…."
  연분홍 머리 빛이 일순 그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가 그가 그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기를 바란다는 듯이 다시 밝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몇 년간 알지 못하게 그녀를 조심히 살폈던 그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그가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숭고한 그녀의 행동이 조금이라도 자신에 의해 멈추어지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겨울이란 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끝나버리는 거니까, 눈도 그렇게 모든 생명을 덮다가 어느 순간 새싹의 힘에 못 이겨 녹아버릴 거예요, 님파도라."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 불안감을 해소한 듯 안정을 되찾더니,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였다.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리무스는 평소와 같은 그녀의 부루퉁한 표정에 그제야 평소다운 자상한 미소를 얼굴에 드리울 수 있었다. 그리고는 조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제 '루핀'이 되었으니까 제가 달리 부를만한 호칭이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녀는 반박할 말을 찾아내려 애쓰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리무스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기의 이름을 아직 짓지 않았잖아요. 리무스가… 지어주시겠어요?"
  "제가 아기의 이름을요…?"
  리무스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리무스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조심스레 자신의 배에 가져갔다. 그녀의 배에 손이 닿는 순간, 리무스의 손이 움찔하고 떨려왔다. 그녀의 사랑을 한사코 거부했었던 것도, 아이를 가지길 원하는 그녀의 마음을 몇 번이고 거절했었던 것도, 그저 그렇게 몇 년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그 자신의 결함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자신의 손길을 느끼고는, '나 여기에 있어요!' 하고 존재를 호소하듯 움직이는 이 작은 생명에 다가가는 것조차 무언가 죄책감이 느껴져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향해 그녀는 항상 다가왔었다. '늑대인간'이라는 게 대체 무슨 상관있냐며, 단지 자신은 리무스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리고 이번에도 도망치지 않도록 그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떨리던 리무스의 손이 점차 안정되더니 어느새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에 손을 대고 있었다.
  "…우리들의, 님파도라와 저의 아이…"
  "네, 당신과 저의 소중한 작은 보물."
  그들의 곁에서, 바깥에 드리워진 어둠과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그 모든 세상을 비출 것 같은 그런 빛을 가지고서 그녀의 품안에서 빛나고 있다. 그래, 끝없이 가까이 다가오는 한기도 여기서 피어오르는 봄에는 다가가지 못 한다. 아니 자신이 그런 어둠을 거두어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마지막 희망이었기에.
  "도라 아버님의 이름을 따서 테드… 라고 무르는 게 어떨까요, 테드 루핀…"
  그의 조심스런 대답에 그녀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오랜만에, 그야말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태양을 닮은 분홍빛 미소였다. 자신이 달 아래에 존재한다면 그녀는 태양 아래에 존재한다고, 그렇게 여기게 만들었던 그 분홍빛… 그러나 이제 그렇게 피해왔던 그마저 어루만져 주었다.
  그녀는 한층 더 밝아진 분홍색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가야, 아빠가 너를 테디라고 부르고 싶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녀의 말에 웃으며 리무스가 물었다.
  "아기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러자 그녀는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리무스 못 들으셨어요? 엄마 아빠, 이제 저의 이름을 알아차리신 거예요? 저는 언제쯤 엄마가 제 이름을 불러주실 지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자, 늦으신 벌로 이제부터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저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던걸요?"
  "하하하… 미안하구나, 테디. 수십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이라도 너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줄게."
  그녀의 손에 의해 조금씩 그녀의 배를 쓰다듬던 리무스는 이제 조금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의지로 살며시 손을 움직이며 아이의 몸짓을 느꼈다. 정말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가탔다.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테디, 테디, 테디… 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않으려는 듯이 되뇌었다. 테디 루핀… 그녀와 그의 아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미래로 연결된 희망의 빛.

  님파도라는 겨울의 어느 날 리무스의 곁에서 아이를 낳았고, 둘은 그 작은 아이를 보며 아무런 말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흩날리는 눈발도, 점점 더 차가워져 가는 세상도 그리고 그 시간 자체도 잊어버리고서 한참동안이나 울었다. 발갛게 달아올라 울고 있는 아이를 어루만지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허공에 불린 아이의 이름이 그들을 에워쌌다.
  17년 전 제임스도 이런 기분이었으리라고 리무스는 생각했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희망과,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지배하는 한기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을 탄생해내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울던 날이었다. 그 흩날리는 하늘의 눈물이 시야를 방해해왔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리라고 그가 어렴풋이 생각한 순간 눈발 사이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좀 더 힘을 내어 발을 내딛었다.
  '끼이이'하고 낡은 문 경첩의 마찰음이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귀에 울렸다. 방문객이 전혀 없었던 그곳에 대체 누가 찾아온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모두의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한바탕 눈과 씨름하고 온 그의 새하얀 머리를 발견한 순간, 해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무스!"
  그는 잦은 숨을 고르며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의 얼굴에서 놀라움과 함께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나왔다. 어느새 부쩍 자라버린 친구의 아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어둠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두려움을 오히려 지적하며, 다른 사람에게 그 대신 힘겨운 싸움을 하게 두고 싶지 않아, 혼자라는 두려움도 이겨내고서 이제 나아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둠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아아 그래, 너도 더 이상 보살핌만 받고 지낼 나이는 아닌 때가 되었지. 이제 다른 사람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른이 되었구나….'
  "리무스, 여기까진 무슨 일이에요…?"
  걱정하는 어조의 말.
  "해리…"
  그는 잠시 숨을 내쉬더니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테디의 대부가 되어줄래?"
  해리는 리무스의 말을 듣고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잠시 동안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대부가 되어달라니 그게 무슨…'하고 생각하던 해리의 얼굴에 돌연 환한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열성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옆에 있던 론과 헤르미온느, 빌과 플뢰르는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당혹해하며 둘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모두들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리무스의 아이라니, 그들이 모르는 사이 어느새 새로운 빛이 태어났다는 말인가. 그는 헤설피 웃어 보이며 주머니에서 아이의 사진을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리무스를 닮은 연갈빛 짧은 머리를 하고서 사진 속의 아이는 울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울음을 그치고서 방긋이 웃으며 그를 향해 손짓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미소였다.
  "정말 예쁘다!"
  사진을 보고서 플뢰르가 탄성을 질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빌은 혼자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고, 그런 둘을 보며 아이들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도 신혼부부가 한 쌍 있었지 하는 듯이.
  "테디 루핀."
  해리는 자신이 그 아이의 대부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이 그렇게 이름을 혼자 되뇌었다. 테디, 테디하고서. 저번에 리무스와 말다툼을 하며 돌아선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자신의 대부가 그러했듯 자신도 그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인지 해리의 눈이 의지로 반짝였다.
  "해리."
  테드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신기하다는 듯 보던 해리가 그의 말에 그제야 사진에서 눈을 떼고서 그를 쳐다보았다. 리무스는 분명한 의지로 가득 찬 해리의 눈을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그래,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고맙다."
  해리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고 여기기로 했다. 지금은 밤이지만 머지않아 새벽이, 그리고 아침이 올 것이다. 그는 깊은 숨을 내리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구름을 잔뜩 뒤집어쓴 하늘에서는 별조차 보이지 않았고, 주위를 흐르는 공기마저 긴장한 듯 파르르 떨려왔다. 오늘 밤엔 아마도 폭풍이 일어날 것이다. 그 폭풍이 지나간 뒤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 뒤를 볼 수 있다고도 장담할 수 없겠지.'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기사단에서의 부름이 있었다. 그는 그 부름이 아마 결전의 날이 당도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호그와트라…. 그가 이 곳을 마지막으로 온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그리워지고, 그곳에서 이젠 그들 모두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씁쓸했다.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 씩 곁에서 떠나갔다. 제임스도, 릴리도, 시리우스도- 이젠 피터마저도 어둠에 모습을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그리고….
  '세베루스 스네이프…'
  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스네이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 그를 탓할 수는 없다. 리무스 역시 그림자를 피해 이 전장에서 도망가려고 했었고, '겁쟁이'라는 말을 듣고 말았지 않은가. 어디선가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그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리무스!"
  뒤를 돌아보니 호그와트의 대연회장 쪽 건물에서 막 뛰어나오는 프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안에서 다같이 아직 호그와트에서 대피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전투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느라 꽤나 바빴던 모양이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하는 그의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대체… 아이는 어쩌고 이곳에 오셨어요."
  여타 사람들과 같은 태도였다. 이제 겨우 누리는 그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상냥한 이들은 갓난아이가 있는 그가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끝내 기사단의 부름에 응한 그를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오히려 평온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기사단에서의 부름이 있었고, 나 역시 기사단원으로서 그 부름에 응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 아이의 대부가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으니 별 수 없지."
  "해리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거예요!"
  프레드가 안타깝다는 듯 소리쳤다. 리무스는 문득 씁쓸해졌다. 갓 성인이 된 이 녀석들도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그가 도망칠 순 없었다. 그들의 모든 염원을 담은 그 녀석, 테디의 대부가… 이곳에서 애쓰고 있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그녀석이 바라지 않는 일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 이곳은 호그와트다. 우리들 모두의 소중한 보금자리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세계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와 함께 했던 이들 모두 해리를 지키려다 죽었어. 나 역시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들 여한은 없다. 나의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이니까."
  "… 그럼 테디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내가… 죽는다면-'
  그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님파도라 역시, 그와 함께 몇 번이고 곱씹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론은 결국 하나로 맞아 떨어졌다. 그렇기에 슬픔의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 역시 불사조 기사단의 단원이었고, 그 목적이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좀 더 밝은 미래를 남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 세상에는 죽음을 초월한 무엇이 있다고- 난 믿는단다."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저 속에서 그들도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이라면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프레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쾅-!"
  "동쪽 성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위즐리씨! 스프라우트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이봐, 롱바텀군, 조심하게!"
  호그와트 여기저기에서 폭발음이 들어오고, 붉은 빛 녹빛의 주문들이 옷깃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전쟁이다. 이것은 해리-그들의 마지막 살아남은 아이-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기에 앞서서, 본디의 그 체온을 지키기 위한 16년 전의 그 어둠을 다음 세대에 다시 물려주지 않기 위한 싸움이었다.
  "후우…"
  리무스는 잔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즐리네 형제들은 서로를 방어하며 여러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저 멀리서 찰리를 향해 청빛이 쏘아졌고, 네빌이 그걸 막아서며 그 곳에 합세했다. 루나와 초 등, DA 역시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주기위해 애쓰고 있었다. 교수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호하는 쪽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긴 했지만, 그 훌륭한 마법 솜씨로써 두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를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크고 작은 싸움으로 초기의 멤버들 중 몇몇이 죽고, 큰 전력이었던 무디 역시 존재하지 않긴 했지만, 기사단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역시 대단했다. 그 사이에서 리무스와 님파도라 역시 서로를 지키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엄습해오는 묘한 압박감에 긴장하여,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서 뒤를 휙 돌아보았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 머리카락을 칼바람에 휘날리며 그 여자가 그곳에 서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키려는 듯, 다시 한번 지팡이를 꽉 부여잡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힘을 주기를 바라며.
  "이야, 이게 누구야."
  "…벨라트릭스."
  벨라트릭스는 그런 리무스를 보더니 별안간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뭐야, 우리 블랙 가의 수치인 그 더러운 자식 생각이라도 나?"
  "……."
  그는 그저 묵묵하게 벨라트릭스를 응시했다. 그녀가 뭐라고 하건 그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문득 든 생각이 이 여자를 상대함으로써 그의 모든 역할이 끝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이미 그렇게 끝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는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침착한 자신에게 감사하며, 리무스는 벨라트릭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벨라트릭스는 도리어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그 빌어먹을 녀석이 너와 결혼을 하면서- 어둠의 주인님께서 나에 대한 믿음을 얼마나 잃어버리셨는데…! 톡톡히 갚아주겠어, 늑대인간 씨!!"
  그는 벨라트릭스의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님파도라의 어머니는 블랙 가의 사람이었고, 벨라트릭스와 자매 지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결혼이 볼드모트의 화를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그래, 그녀와 내가 결혼을 한건 분명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감히 결혼 따윌 할 생각은 말았어야지!"
  벨라트릭스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젠 떨지 않는 손을 지팡이를 온 힘을 다해 꽉 부여잡고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해리의 목소리가, 그를 향해 겁쟁이라고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부터 줄 곳 도망치지 말라고 단호하게 소리치던 그의 목소리가 맴돌았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대부를 닮은 눈으로 그를 향해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리무스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더 이상 도라와 결혼한 것을- 테드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의 의지적인 목소리에 벨라트릭스는 당황한 듯 보였다. 그녀는 부여잡은 지팡이를 그를 향해 휘둘렀다. 붉은 빛이 그를 향해 쏘아져왔다. 그는 그 빛을 피하며 벨라트릭스를 향해 되받아쳐 지팡이를 휘둘렀다.
  "쾅!"
  건물에 빗맞은 주문이 큰 폭발음을 내며 건물의 파편을 주변 여기저기로 쏟아냈다. 파편 중 일부가 리무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입안이 씁쓸한 피로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벨라트릭스를 향해 주문을 쐈다. 그렇게 몇 번의 주문이 오고 갔다. 그들이 알고 있는 무수한 주문들이 상대를 향해 쏟아져 나왔고, 찢고 베어진 망토 사이로 피가 흩어졌다. 망토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고, 지팡이를 부여잡은 손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벨라트릭스의 눈에 승리의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짓더니 돌연히 그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며 주문이 휘둘러진 방향을 따라가던 리무스의 눈에 님파도라의 모습이 잡혔다. 님파도라는 자신을 향해 붉은 빛이 다가오는 지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크아아악!"
  "리, 리무스!"
  자신의 위험은 생각지도 않고 그는 미친 듯이 달려왔다. 크루시아투스 저주가 그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고 이내 그의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님파도라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서 쓰러지는 리무스를 붙잡았다. 증오로 가득 찬 눈이 벨라트릭스를 향했고, 벨라트릭스는 자신의 조카를 내려다보며 그런 둘을 비웃듯이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크루시오!"
  "아, 안돼!"
  님파도라는 리무스를 보호하려는 듯 그를 감쌌고, 이내 그녀의 비명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신음소리를 내던 리무스는 고통스러워하는 님파도라를 끌어안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벨라트릭스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자지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그게 너희들이 말하는 사랑의 실체냐?"
  "…닥쳐."
  벨라트릭스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리무스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님파도라도 지친 숨을 내쉬며 벨라트릭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손엔 아직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래, 그렇게 같이 죽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이루어주지! 아바다 케다브라!"
  "스투페파이!"
  "에버테 스타툼'!"
  대치하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 다시 주문이 오갔다. 리무스와 님파도라의 지팡이에서 나아간 빛이 벨라트릭스의 가슴 왼 켠, 심장의 바로 위 부근에 와 맞았고,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공포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리무스와 님파도라에게도 녹빛이 휘어져왔다. 번쩍. 죽음의 주문이 그 둘을 휘감았고, 서로를 꽉 끌어안은 채- 그들은 쓰러졌다.

  "저는 리무스가 죽길 바라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아들을 보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미안해요…."
  해리는 그를 향해서 간절히 말했다.
  "나도 안타깝단다."
  리무스는 해리를 향해 슬프지만 작은 미소를 띠었다.
  "테디가 언제쯤 나를 향해 아빠라고 말할 지, 언제쯤 혼자 일어서고, 걷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될 지 궁금하기도 해. 나의 보금자리인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될 때- 테디는 부모와 함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과서를 사러가지도 못할 테고, 테디가 어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지 모르게 된다는 것도 슬프단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가 죽은 이유를 알게 될 거고, 이해해주리라고 믿어. 그 아이가 좀 더 밝고 따뜻한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했다는 걸… 그래서 테디가 있는 동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는 걸… 그 아이라면 알아 줄 거야. 그러니까 나는 괜찮단다."

  쓰러지는 둘의 얼굴엔 이상하게도 고통과 공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감싸고 있는 그 모습은 오히려 평화로워 보였다. 주변의 암흑에는 굴하지 않고서, 되레 강한 빛을 내뿜고 있는 듯, 주변에 흩어지는 주문의 물결도 그들을 피해갔다. 창백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들의 얼굴은, 얼핏 보면 마치 조용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The End

'Works: > Harry Pot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meday  (0) 2008.08.17
비애(悲哀)  (2) 2008.01.31
―Gracie  (0) 2007.06.23
It is not a Magic, but a Heart.  (2) 2007.02.03
댓글
댓글쓰기 폼
«   2021/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245,318
Today
0
Yesterday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