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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Harry Potter

―Gracie

은유니 2007. 6. 23. 14:33
 

―Gracie _1편

by.유니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깨질 것만 같이 그렇게 닿지 않는 곳의 그 평화에 그는 씁쓸히 미소 지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는 하늘이지만 그렇게 너무도 멀어 전혀 닿지 않을 것만 같아.. 눈이 감겨왔다.

‘잠들면 안돼’ 그는 억지로 깨어 있으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에 난 피 묻은 상처는 그에게 수면을 요구했다. ‘하아, 하아’ 저 높은 곳의 하늘이 자신을 향해 덮쳐왔다. 그리고 그는 이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으음..”

그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걸까, 어느새 주위는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고 지면으로부터 한기가 밀려올라왔다.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만큼 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문득 움직일만한 힘은 없으나 어느새 팔 다리가 끊어질 듯한 아픔이 사라져 있는 것을 느꼈다.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위의 모습이 좀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득 그의 옆에 앉아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어둠에도 개의치 않는 듯 그의 상처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소년의 눈은 꽤나 진지했다. 그가 깨어난 것도 모르는 듯 그저 그렇게 차분히 앉아있었다. 소년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 달빛을 닮은 은은한 빛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법이구나.. 치유마법’

그는 이렇게 어린 소년이 마법을 행하는 것에 놀라며 그저 묵묵히 소년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소년의 눈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하늘의 별과 같이 그렇게도 순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년의 손길에서 반사된 빛이 눈에 일렁일 때면 그 포근한 회색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맑은 눈을 하고 있구나..”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소년은 그의 목소리에 놀라며 반사적으로 마법을 멈추었다. 소년의 눈은 놀라움과 공포로 이내 그 포근한 빛을 숨겨버렸다. 소년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내 그는 눈길을 돌려버렸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소년의 가슴에 가져갔다. 아픔이 사라진 후 한참 움직이지 못하던 손은 웬일인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었다. 소년은 한층 더 놀라며 이번엔 뜻밖에도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선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이 안에.. 모두를 살릴 그런 힘이..” 그가 말했다.

‘느껴져, 나와는 다른 그런 힘이..’

그 자신과는 다른, 그저 순수하고 따뜻한 힘이 그렇게 소년에게서 느껴졌다.

소년은 한참을 그렇게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소년의 눈에서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왔고 그리움의 한 조각이 소년의 눈가에서 머물렀다.

‘이 녀석도 사연이 많은 녀석인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히 미소 짓고는 좀더 손을 들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서 -넌 이 소년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 라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지금만큼은 그 가슴속의 녀석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싶었다.

소년은 그의 손길에 그저 묵묵히 앉아만 있다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는… 악마래요. 이런 힘은 악마의 자식이기에 가지고 있는 거래요. 이걸 보고 다들 도망치고, 아이들은 나를 향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어요. 나를 이렇게 대해준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소년은 그렇게 조심스레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말을 하는 사이 소년의 두 뺨이 살짝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뭐니?”


시리우스.. 라고 소년은 말했다. 그리고 그 시리우스란 소년은 그가 머물 곳이 없다는 걸 알자 자신이 지내는 곳이라며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위에 지어진 허름한 집으로 그를 인도하였다. 시리우스는 무리한 마법으로 인해 피곤했는지 이내 잠들었고, 그는 그런 소년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집 밖으로 나와 마을을 쳐다보았다.

‘악마..’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를 마음속으로 되뇌이기 시작했다. 악마라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마법이란 존재를 모르는 것일까. 확실히 마법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시골마을이라기 보단 어느 정도 성장한 도시에 가까운 마을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기에 그런 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야말로 악마잖아, 안 그래?- 그의 가슴속에서 또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목소리의 외침에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애써 외면하려해도 그 속에 담긴 악의 찬 목소리와 심장을 옥죄여오는 고통으로 오히려 그 목소리에 지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그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작은 목소리였고 그 고통 또한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목소리는 그를 지배하려했고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왔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는 소년의 눈을 닮은 별들이 한없이 자신의 빛을 반짝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인 것만 같아, 하늘의 세상은 그렇게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건 하늘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

‘조금 머릿속이 깨끗해졌어.’

잠시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마을을 쳐다보았다. 이곳은 이렇게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마을에서는 빛으로 가득했다. 마치 소년의 마음 따윈 상관하지 않는 다는 듯이..


“저, 당신은 이름이 뭐예요?” 시리우스가 그에게 물어왔다.

“리무스. 풀 네임은 리무스 존 루핀.” 그가 시리우스에게 상냥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시리우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내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는 리무스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언제부터인지 그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서 있었다. 시리우스가 일어나자 그저 그를 향해 말없이 한번 웃을 뿐이었다.

“저, 루핀씨..” 시리우스가 어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리무스는 문득 그 호칭에 시리우스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시리우스는 왠지 무안해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리무스는 그제서야 하늘에게서 시선을 완전히 거두고서 시리우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숙여진 시리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냥 리무스라고 불러. 그쪽이 더 편하니까.”

시리우스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표정을 보더니 장난스레 헤헤 웃었다. 그리곤 조용히 ‘리무스.. 리무스..’하고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마치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리무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리무스는 이.. 그러니까, 마법인가.. 여하튼 이 이상한 힘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시리우스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리무스는 그런 그의 표정에서 조금은 알 듯한 불안의 감정을 느끼며 조금 씁쓸히 웃었다.

“나 역시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뭐랄까, 나는 시리우스처럼 강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어서 직접 사용하진 못해도 무의식적으로 강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마법이 발휘되곤 했어. 그 때문에 아직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고향에서 쫓겨났고 그렇게 한참을 헤매이다 어느 꽤 성장한 도시에 이르렀고 그때서야 그게 마법이란 걸 깨달게 된 거지.”

리무스는 그렇게 말을 끝맺었고,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그저 가슴속에서 삼켰다. 그리곤 시리우스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마법을… 정식으로 한번 배워볼래? 강해질 거야, 아주..”

시리우스는 그의 손을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버렸다.

“사람들에게 증오를 사는 이런 힘 따위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리무스의 다친 모습을 보고선 나도 모르게 다가가 힘을 사용해버렸지만.. 마을사람들의 눈에 띄었다면 난 또 그들에게서 쫓겨 한참을 도망쳐야 했을지도 몰라요.”

리무스는 그런 시리우스의 말에 그저 말없이 미소 짓기만 할뿐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듯이.

“미움 받는 것이, 싫은 거구나.” 리무스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시리우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게 싫어요. 하지만 마을사람들을 미워하진 않아요. 나 역시 이런 힘을 가진 게 별로 탐탁치 않고 그 누구라도 리무스처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피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니까..”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게 싫어?” 리무스가 말했다.

“싫은걸까.. 잘은 모르겠어요, 단지 사람들과 다른 나이기에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버렸으니까 조금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힘들긴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리무스를 치료하기도 하고, 사람을 돕는 힘이기도 하니까 또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는걸요.”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리무스는 그의 웃음에서 무언가에 대한 짙은 그리움의 감정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왠지 모르게 안쓰러워 졌다. 마치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 너는 사람들을 증오하고, 미워했지. 그래서 항상 그렇게 다른 감정 따윈 없다는 듯 행동했잖아, 안 그래? - 또다시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리무스는 이번에는 단호하게 그 목소리를 무시하였다.

‘예전 따윈 상관없다, 다만 지금은 이 작은 소년의 곁에 머물고 세상으로부터 감싸주고 싶어. 예전의 나처럼 되게 하고 싶진 않아. 세상을 살릴 힘이야, 누군가를 죽일 힘이 아니야. 그러니까… 지켜낼 거야.’

“단지… 바라는 게 하나 있어요.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요.. 전에 마을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론 엄마 아빠는 나의 힘에 두려워하며 나를 이곳에 놔두고 떠나버렸다고 했어요. 믿지 않을 거예요, 난.. 그럼 난 사람을 돕기도 했던 이 힘을 그저 증오할 수밖에 없는걸요. 단지 무슨 일이 있어서 떠난 거라 믿고 싶어요..” 시리우스가 힘없이 말했다.

리무스는 시리우스의 회색빛 포근한 눈동자에 일렁이는 그 그리움의 조각이 누군가를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예의 그 심장을 옥죄여오는 그런 아픔이 아니었다, 단지 어느 한 소년을 향한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감정..

리무스는 말없이 시리우스를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았다. 시리우스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안은 듯이 너무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품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조금은 풀어진 것을 느꼈다. 어느 한 사람에 의해..






―Gracie _2편

by.타로



리무스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럴 땐 ‘알로호모라’라고 해주는 게 훨씬 편하단다.”

“그.. 그딴 마법은 안 배워요!!”

햇살이 따뜻했다. 리무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마치 괜히 생떼 쓰는 시리우스가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시리우스’라고 불리는 소년은, 예전에 리무스와 소년이 만났던 그 날의 밤하늘처럼 새까만 블랙머리와 그레이 빛의 맑은 눈은 그대로였지만, 이젠 사춘기인 듯 반항적인 말투와, 훌쩍 커서 리무스보다 커 보이는 키. 그리고 어른스러운 표정에 제법 훤칠했다. 그 소년은 이제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버럭 소리 지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을사람들의 미움을 받아온 마법이란 능력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자기 집 자물쇠 하나도 못 열잖니?”

“시끄러워요!”

시리우스는 낑낑대며 자물쇠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았다. 이게 다 바보같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반칙 적으로 내 집에 자물쇠를 달아놓은 리무스라는 사람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 걸까.

‘그러면서 정작 변명하는 말이라고는.’ 시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빨리 안 열어? 도둑이 침입 못하게 잠가둔 건데 말이다‥.”

‘....저렇게!!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인 것 마냥 중얼거린다고!’


시리우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리무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재촉하는 듯한 표정에 리무스는 알았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서는, 지팡이로 가볍게 문을 톡 쳤다.

“알로호모라.”

자물쇠가 파란빛으로 번쩍 빛나더니, 곧 달칵 소리를 내며 풀렸다. 시리우스는 자물쇠를 잡아채고 성큼성큼 먼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귀까지 빨갛게 익어서 뭐라고 작게 불만을 내뱉는 시리우스를 보며 리무스는 또 한 번 작게 웃었다.

‘벌써 이만큼 컸구나, 시리우스……. 아직도 어린애인 줄만 알았는데.’

리무스는 얼마 전 식료품을 조금 사러 마을에 갔다가, 증오심에 물든 마을 사람들의 눈을 보고는 놀랐던 기억을 되새겼다. 뼛속까지 깊은 증오심… 익숙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감정이 그들의 눈에 비추어졌었다. - 그건 네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을테지. 왜 안쓰는 거야? 내 힘으로 혼내주면 될 텐데. - 그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비웃는 음성이 리무스의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리무스 고개를 저었다.

‘시리우스 같은 포근한 힘 앞에서 어떻게 그런 악마의 마법을 부릴 수 있겠어.’

그는 잠시 관자놀이 부근을 짚었다가 지친 듯 계속 생각을 이었다. 시리우스는 서랍을 열고 조각칼과 팔뚝 정도 되는 나무토막을 꺼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던 걸까… 마법사라서? 아님 시리우스랑 가까이해서?’

리무스는 의문의 시선을 시리우스 쪽에 던졌다. 시리우스는 이제 무언가를 열심히 조립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조각칼로 나무토막을 토막 내고 또 그것을 작게 해서 이리저리 깎고 다듬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작으나마 미소가 맴도는 듯 했다. 리무스는 작게 중얼거린 뒤, 지팡이를 휘둘러서 생겨난 의자에 걸터앉았다. 리무스가 시리우스와 1m간격을 둔 그곳에서 조각 깎기에 열중해 있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시리우스가 신경이 쓰인 듯 힐끔 그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요?”

“그냥… 많이 컸다 싶어서.”

“싱거워요.”

시리우스는 투덜거리며 조각의 머리 부분을 다듬었다. 리무스는 그게 뭘까 호기심에 고개를 빼들고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한 주먹도 안 되는 크기의 무언가를 조각하는지 시리우스의 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리무스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일어서려 했지만, 곧 문득 난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앉았다. 시리우스의 미간이 꿈틀 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게 하는데, 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아요?”

“후후... 글쎄다.”

리무스는 손사래를 치면서 작게 웃었다. 시리우스가 답답하다는 듯 불만을 토로하며 조각을 팍팍 깎아냈다. - 1m 이상 다가가는 건 너와 그녀석의 사이가 아니란 거겠지. - 리무스는 마음속부터 울리는 음험한 목소리에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네 녀석이 상관할 바가 아니야.’

마음속의 악마는 킬킬 재밌다는듯 웃어대며 말했다. - 사실은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빛의 마법을 쓰는 녀석인데.. 킥. 저번 보름에는 제법 잘 넘어갔지만 말야...-

리무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았다.


‘오지마. 가... 가버리가고, 시리우스!!’

‘리무스를 두고 어떻게 가란 거예요!!!’

- 바-보. 그냥 내 힘을 썼으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거 아냐. 멍청한 놈. -

‘그냥 가...! 위험 하‥’

‘시끄러워요. 지킬거야!!’


떠오르는 만월. 그리고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 힘을 쓸 수 없었다. 악마와의 계약... 그것은 나약했던 나 자신을 그대로 비추는 것과 같아서, 그리고 하얗고 깨끗한 녀석의 앞에서는 절대 쓸 수 없어서. 환한 달빛 아래에 그 아이는 할퀴고 상처내도 꿋꿋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미쳤군.’

- 너야말로 미쳤어. 지금 가지는 감정이 뭔지 알고는 있겠지? - 악마의 속삭이듯이 깊고 어두운 목소리에 리무스는 그 목소리를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얏…”

그 때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서야 리무스는 문득 시리우스를 쳐다보았다. 시리우스의 검지 손가락에서 피가 송골송골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각칼에 잘못 베인 듯 했다.

“...시..시리우스!”

“괜찮아요. 이런 것쯤은 연고만 조금 발라놓으면…”

“가만있어. 내가 해줄게…….”

리무스는 지팡이를 들어 작게 중얼거리고서, 그의 손가락에 갖다 대었다. 상처가 씻은듯이 아물었다. 리무스는 그제야 조금은 안심이라는 듯 창백히 흐르는 땀을 망토자락으로 살짝 닦았다. 시리우스가 그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작은 상처로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예요...?”

리무스는 당연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말하려다가, 별안간 뒤돌아섰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자, 시리우스는 화들짝 놀란 듯 왼 손으로 리무스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리,리무스... 울어요??”

“푸읍... 쿡쿡.. 아니, 안 울어... 아하하!”

리무스는 배를 잡고 눈꼬리가 휘도록 시원스럽게 웃었다. 시리우스가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리무스는 웃음을 애써 그치고는 계속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막으며 생각했다. 작은 상처로 순간 새하얗게 비워졌던 뇌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아, 난 이애 말고는 살 의미가 없겠구나.


리무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리우스가 장작을 패온다고 한 뒤로 주욱,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앉아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 것이 불안했다.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리무스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발걸음이 마을로 향했다.

“저기... 안에 계신가요?”

리무스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마을까지 내려왔는데, 들에 있을 때처럼 공허한 공기가 맴돌았다. 마치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어있는 마을’ 같아서 리무스는 몸을 떨었다.

“저기요. 문 좀 열어주ㅅ‥”

끼이익- 문이 열리고, 불신과 적의에 가득 찬 눈초리가 온 몸을 훑었다. 마을의 촌장 할아버지... 그러나 지금은 마치 적을 경계하는 듯이 시선이 차다.

“무슨 일이냐?”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지금 바쁘다.”

탁. 깔끔하게 문이 닫혔다. 리무스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고, 조금은 조급해진 듯 세게 두드렸다.

“저기요‥!!”

“들어와.”

별안간 간단하게 문이 열려서 리무스는 쿠당탕 넘어졌다. 빠끔 고개를 들어보니, 촌장 할아버지가 걸목의자에 털썩 앉아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움찔한 리무스는 흠흠 목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어째서 마을이 이렇게 고요한건ㅈ...”

“그 녀석 때문이야.”

“예...??”

촌장 할아버지는 잔뜩 살기가 실린 오오라를 풍기며 중얼거렸다.

“그 악마 녀석 때문인 것 외에 별 게 없지... 시... 하여튼 그 못된 녀석 때문에 마을에 재앙이 내린 게다, 분명히. 며칠 째 내리는 가뭄과 쥐떼 때문에 남아나는 사람도 몇 안돼. 우리 마을에 악마의 미움을 받을 녀석이라고는 그 녀석 밖에 없으니...”

“시리우스...말인가요?”

리무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도 마라. 네 녀석도 한 패지?”

촌장 할아버지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리무스는 흠칫 몸을 떨고는, 뒷걸음질 쳤다.

“아... 그럼 전, 이만.”

“거기 서!!!”


리무스는 시리우스의 오두막으로 내달렸다. 헉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와... 빨리 나와, 악마!! 네 녀석 짓이지!?!”

그의 가슴 속에서 서늘한 어둠이 찾아들었다. - 날 불렀어? 악마는 너잖아, 리무 - 리무스는 깨질듯이 밀려오는 아픔에 헉 숨을 들이키고는 우뚝 제자리에 섰다.

“...왜... 너.. 네가 마을에 재앙을 부른거지....?”

- 네가 내 힘을 쓰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어쩔 수 없잖아? 분명히 보름마다 내 힘으로 고통을 줄이는 대신 내가 리무의 생명을 갉아먹겠다고 피의 계약을 했는데 말이지. 키킥. - 리무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악마가 눈앞에 있었으면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 태세로 낮게 읊조렸다.

“그래서...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내 생명을 먹으면 되잖아? 어째서 시리우스와 관련될 짓을 하는 거야!!!”

- 나야 그 녀석과는 전혀 무관하니 상관없지만, 지금이라도 소용없어. 곧 마을 사람들이 너넬 죽이려고 몰려올걸. 믿거나 말거나... - 목소리는 낄낄 거리며 잦아들었다. 리무스는 느릿느릿하게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악마는 최악의 소식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 생각했을까. 리무스는 가던 발걸음을 빙글 돌려,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리우스?”

리무스는 낮게 웃으며 비라도 내릴 듯이 칙칙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리우스는 하늘을 뚫어져라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몰려있는 걸 봐서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리무스가 아직도 그 바위에 앉아 있다면, 틀림없이 쫄딱 젖을 텐데...’

바보 같은 사람. 시리우스는 중얼거리면서 나무에 박혀있던 도끼를 힘껏 뽑았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마법이라는 걸 할 줄 알지만, 일단 비 맞고 있을 확률도 높으니까 이만 내려가 볼까...


리무스는 서서히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잠겼다.

‘어째서 빗소리가 이렇게 커지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분명하게 들리는 걸까. 아마도 죽기 직전이라서...?’

- 죽기 직전이라니? 그 힘을 쓰면 되잖아. 키킥.. 마을 전체가 날아갈 정도로 굉장할걸? 장담해. - 리무스는 머릿속을 지배하는 소리에 나지막하게 웃었다.

“나보고 지금 시리우스를 죽이라는 거야...?”

- 그 녀석은 다른 데로 텔레포트 시키던가. 너 답지 않게 왜그래...? - 악마의 질문이 리무스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도 알 수 없는 의문점이 한 군데에 남아서 풀리지가 않았다.

“리무스!!!”

리무스는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았다. 시리우스가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면서, 커다란 천을 머리 위로 덮어쓰고 있었다. 그가 리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빨리 이 밑으로 와요. 다 젖고 있잖아..!”

리무스는 베시시 웃었다. 그가 문득 사랑스럽게 보였을까.

“갈 수 없어, 시리우스.”

“무슨 소리 하는…”

“저깄다!!”

시리우스의 말을 끊고 어떤 남자의 고함이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서히 몰려들고 있었다. 다들 곡괭이나 호미, 식칼 같은 것을 들고 무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주시했다. 리무스는 마을 사람들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시리우스는 어안이 벙벙해서 마을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리무....스....?”

리무스는 그런 시리우스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빨리 가. 아참... 비오는 날이지만, 미안한데 집으로는 가지 말고 머얼리 딴데로 가겠니? 잘못해서 곡괭이에 맞으면 아프잖아…….”

한 남자가 시리우스를 칼 끝으로 겨누면서 소리쳤다.

“촌장님!! 저기 저 검은 머리 녀석이 악마입니다!”

“저 갈색머리도 한 패예요!!”

시리우스는 그제서야 대충 감을 잡았는지, 하-..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나 혼자 가라는 거예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거야... 정 안돼면 마법을 쓰렴. 도망가는데 쓰는 마법이라면 조금은 괜찮겠지...”

리무스가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결심이 보였는지 시리우스는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빨리 와요. 같이 가요.”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려는 듯이 우와아 달려오고 있었다. 리무스는 망토자락에 숨기고 있던 지팡이를 쳐들며 파직- 하고 바리어를 쳤다. 번개같은 투명한 막이 경계선을 그은 듯 마을 사람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듯 멈칫거리며 서로 웅성거렸다. 리무스도 힘겨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이 하얗게 되도록 지팡이를 꽉 쥐었다.

“하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치? 너와 함께 한 추억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하하. 조금 억울하네..”

리무스는 웅얼거리듯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시리우스... 내가 악마와 계약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너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무슨 소리예요.. 빨리 가요!!”

시리우스는 성큼성큼 리무스에게 다가갔다. 리무스는 갑자기 바리어를 탁 풀더니 시리우스에게 지팡이를 겨눴다. 시리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안돼- 입 모양이 애타게 그를 불렀다. 파직- 하얀 빛이 망설임 없이 반짝였다. 그리고 데구르르.. 무언가가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옴에도 리무스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것을 주워들었다.

“...목각인형...”

갈빛 머리,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마른 체형에 망토.. 리무스를 빼다박은 조그마한 인형이었다. 리무스는 낮게 웃었다. 볼 위로 뜨거운 비가 또륵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으로 뜨겁고 차가운 무언가가 꽃혔다.

“.....하윽........”

풀썩. 그는 시간을 거스르듯 천천히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전신으로 무감각한 아픔이 찾아들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시리우스의 낮고 바람부는 듯한 웃음소리가 아른거리며 들려왔다. 책망하는 듯한 투덜거림도 들리는 것 같았다. 모든게 다 사랑스럽다.

‘한 번도 못해줬는데....’

그는 눈을 감았다. 비가 따뜻했다.

‘....사랑해….’








작년 7월 무렵 타로와 함께했던 릴레이입니다 ..
에구에구, 부끄러워라 ... 하하 ; 이벤트로 냈던 거 같은데,
아마 그때 천방에서 장원받았았죠 <소설부문 참여자가 없던 관계였지만..
제 부분은 되게 미흡한데,타로가 너무 이쁘게 써줘서 감동받았던 거.
친세대의 '마법세계, 혹은 호그와트'가 아닌 배경의 이야기.
색다르지만 꽤 재밌죠, 이겄도?
아 그리고 밑에 모티브가 된 조성모의 Gracie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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