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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속이 쓰리다

은유니 2011. 2. 6. 03:56



그래도 삶은, 나 없이도 참 잘 지속되더라.



사실은 가는 길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고,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하고 어떤 인사를 건네면 좋은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냥 까마득해 졌다. 혹시나 갔다가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나 갔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나.. 미움만 받고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나를 이루고 있는 다른 무언가를 싫어해서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섭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그 순간을 미룰 수 있다면 영원히 언제까지고 미루고 미뤄서 맞서고 싶지 않았어.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더 두려웠던 거야.
계속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어.
마주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정말 좋아했던 장소였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좋아하는 시간들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무섭고 두렵고 짜증나고 싫어하는 것들로 변해가는 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 변화는 사실 내 의지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닌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는데도 변화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싫었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그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싫어. 응 무서워. 두려워. 겁이 나.
그 순간이 미치도록 무섭고 도망치고 싶고 다가가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러고 싶지 않은거야.

알고 있잖아. 거기엔 내 편이 없잖아. 오직 나 혼자서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잖아. 옆에서 같이 웃어주고 적어도 이야기해주고 내편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같이 견뎌줄 사람도 없잖아. 오직 나 혼자서 그 모든 시간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거잖아. 이겨내야 하는 거잖아.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신기한 거라고 생각해.

내게는 그렇게 잔인하고 지독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군가에겐 착하고 대단한 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 그렇구나-하고 납득하게 해버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신의 눈에는 양쪽 모두가 소중한 자식들이구나, 하고 납득해버렸다. 그 아이들의 자식이 또 자라나서 어떤 사람이 되어 당신의 눈 앞에 서 있든 간에, 그래도 그 동안 견디어내고 참아내었던 그 세월이 대견하게 여겨졌던 거구나. 슬프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처음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떤 인사로 맞을 수 있을까.

한참을 울고 한참을 고민하고 한참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다 간신히 만난 것인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잘 지내셨어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화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그래도 그렇게 그저 웃어주셔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밥상이 너무 푸근하게 행복해서 도리어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 안에 온갖 말들이 맴돌고 맴돌아서 이제 어떤 것이 먼저 것이었고 어떤 것이 나중 것이었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 되었을 때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른도 역시 그냥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는 여전히 어리고 나약하구나.
그리고 조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구나.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구나.

당신은 그를 원망했을까. 당신의 자식을 당신의 품에서 도망치도록 만들었으면서 당신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만든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을까. 그래도 당신의 자식이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맞이할 수 있으셨던 걸까.

내게서 당신과 그 장소와 관련된 기억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몇 살부터였을까. 몇 살부터야 겨우 당신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그래도 두려움과 슬픔과 원망과 미움과 아련함과 쓰라림의 장소이기 이전에 따스하고 여유롭고 포근한 장소였음이 분명한데. 그러한 장소를 나는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언제쯤이나 되어야 다시 웃으면서 죄스러운 마음 없이 예전과 같이 달려갈 수 있을까.


응, 참 어려운 문제야.
아마 평생을 짊어지고 갈지도 몰라.
그래도 도망치지는 않을거야 : )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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