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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멍해야 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는게 돼 있거든.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대신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다 온전한 참도 거짓도 아닌 말을 던진다.


-아빠랑 왜 헤어졌냐고?

-응.

-음... 생각이 달라서?


재이가 뜻밖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말을 훈계조로 이야기한다.


-그럼 토론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리는 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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