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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7.12.22.

은유니 2017.12.22 16:31

1.

3년만에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저번달부터 내년엔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써볼까 생각하다가 이번달 초에 몇개 사이트를 뒤져가며 적당한 다이어리를 고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새해를 맞기 전에 새 페이지를 펼쳤다. 빳빳한 새 종이에 이번달 일정과 매일매일의 일기를 적어 내려가며 무언가 '새 출발'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고작 다이어리를 사는데도 기분이 사실 묘했다. 어릴 때부터 정리벽이 있어서 중학교 땐 시험기간 한달 전부터 노트에 공부계획을 짰고, 고등학교 땐 스터디플래너를 사서 매일매일의 일정을 정리해왔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는 플래너에서 다이어리로 옮겨가 공부 계획, 교지 회의, 약속, 과외일정 등등을 꾸준히 정리해갔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익숙해 일기장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여전히 플래너에 가까운 사용이었지만, 졸업하기 전까지 매년 이맘때쯤이면 무슨 다이어리를 살까 고민하며 디자인과 내지 구성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재미가 있었다. 매해 쌓여가는 기록은 어쩌면 내가 지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이면서 동시에 하루하루를 반추하며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내 중심이 되었다.


그 기록은 2014년 12월 3일, 입사 직후에 멈췄다. 이틀간의 사내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인 출입처로의 첫 출근을 했던 날, S의 생일도 잊어버리고 새벽같이 집을 나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악몽같은 수습생활이 시작한 그 날이었다. 다리어리에 쓸 만한 건 하루종일 일한 거밖에 없었고, 그건 손으로 정리해나가기엔 너무 벅찬 것들 뿐이라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게 됐다. 나의 하루는 그날 내가 간 취재, 그날 내가 쓴 기사 내용으로 대변됐고, 그외의 친구들과의 소소한 약속들은 너무 적고 또 가변적이어서 글씨로 남길 수조차 없었다. 블로그를 방치하게 된 것도 딱 그맘때였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그리고 하루하루 똑같은 기분과 마음상태. 지난 3년간 고민의 결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점차 내 생각이 무엇인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도 모르게 됐다. 글 쓰는 게 직업이었지만, 일이 아닌 내 글을 어떻게 쓰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어.


마침내, 꼬박 3년만에 돌아왔다. 부채감이 아닌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펜을 잡고 종이를 넘기게 되기까지. 이전에는 일정 정리를 위해 다이어리를 썼지만, 이번에는 좀 더 긴 일기를 쓰고 있다.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 내 마음은 어땠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그리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선생님께서 조언하셨듯 매일 오늘 하루 내가 잘한 일들, 나를 기쁘게 한 일들, 혹은 슬프고 화나고 힘들게 했던 일들조차도 모두 정리해가면서 좀 더 나를 이해하고 보듬고 버티어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목표는 언제나 꾸준히 쓰기.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꼭 매일 쓰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많이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를 빠지더라도 이틀은 빠지지 않으려 애쓴다. 덕분에 블로그에 더 안오게 됐지만..ㅎㅎㅎ 블로그는 또 다르게, 정리해가야지 :).


2.

한달 새 또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도쿄여행을 다녀온 뒤 애인님이 지원했던 신인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조금씩 삶의 경로가 바뀌고,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한 선명한 상을 그릴 수 있게 되어간다.


퇴사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깨달은 점들이 있다면 나는 그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고, 그래도 잘 해내고 싶다는 완벽주의적 성향과 책임감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많이 힘들고 우울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고,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을 하며 다이내믹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오늘과 내일의 하루가 머리속에 그려지는 안정적인 일들이 맞고, 몇시에 출근하고 몇시에 퇴근하며 주말에는 일로부터 완벽히 단절되는 내 일상의 라이프사이클을 지키는 것을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 따위. 그래서 무슨 일을 해야 내가 덜 불행하고, 조금 더 즐겁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벌고 적당히 여유로울 수 있는 일이란 역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걸까? 싶기도 했지.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일에서부터 결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일까지 여러가지로 찾아보면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간이 어땠든 관계없이, 결국 나는 콘텐츠를 다루는, 글을 쓰거나 글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끝끝내 버릴 수 없었다는 것을. 기자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직업군에는 결국 끝까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조금 더 넓게 다양한 일들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여기에도 원서를 넣고 저기에도 원서를 넣으면서 그래도 그곳엔 차마 넣지 못했던 그런 마음들이 둥둥 떠다녔다.


'적'이 없는 생활은 생각보다 불안감이 컸다. 어쩌면 그동안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아무런 할일이 없는 일상은 상담을 받는 한두달간은 나를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한두달은 도무지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도쿄여행 중 본 점이 '대흉'이었을 땐 좀 충격을 받기도 했어. 액운을 묶어놓고 돌아온 뒤엔 스스로 점을 보기도 했다. 점은 내게 지난 선택이 대단히 용기있는 일이었으며, 지금의 일은 원하는대로 잘 풀릴 것이라고, 미래의 나는 어쩌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우습게도 나는 내가 친 점에 도리어 위로를 받고 말았다. "괜찮아, 너는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액운을 잘 묶어놓고 왔기 때문일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삶의 길이 열렸다. 출판사 일은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내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 카페에서 일하게 될줄이야 알았을까. 그간 방문했던 그 책방과 북카페들에 대한 기억이 내게 새로운 일자리를 인도해줄 줄이야 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밤늦게 이력서를 낸 지 30분만에 연락을 받았고, 다음날 찾아간 면접 자리에서는 나를 시험하는 말들보다 기대하고 환영하는 말들이 쏟아졌고, 그 자리에서 채용이 결정됐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은 정신없고 놀라웠고, 얼떨떨해서 이게 맞는가 싶기도 했지만, 실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거나 이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기쁘기도 했다. 원하던 대로 마침내 내년부터는 새 직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책을 다루는 일, 정해진 내 자리가 있는 일,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일, 재밌게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원한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내 생활의 절반 이상,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일이라면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함께갈 수 있기를.


3.

운동을 내 일상으로 끌어들인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태권도는 여전히 힘들지만 재밌고, 사범님이나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도 가까워지면서 즐겁다 후흐. 여름에 두달을 쉬고 다시 돌아온 뒤엔 이제 태권도는 많이 해봤으니 다른 운동을 알아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밌고 또 정든 만큼 한동안 더 꾸준히 다녀볼 생각이다.


어제는 사범님이 "미혜씨 내년엔 국기원 가셔야죠!" "여기 이분이랑 같이 가실거예요"라며 강제로 품새 연습을 시키셔서 정규 운동을 마친 뒤 30분 정도 아이들과 함께 품새 연습을 하다가 돌아왔다. 스파르타로 이어진 품새 연습은 생각보다 힘들고 사실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는데, 로딩이 오래걸려서 그렇지 이젠 진짜 거의 다 외웠고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알 것 같은 기분. 내년에는 사범님이 말하신대로 1월말이나 2월쯤에 승단심사를 나가야지. 담달에 직장 다니기 시작하면 또 시간이 언제 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보려고 한다. 내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드를 받았다! 전에 여름에 보라매공원에 놀러갔을 때부터 "나도 보드 한번 타보고 싶다" 말하고 다니다가 가을 즈음엔 "보드 한번 사볼까", 그리고 초겨울에 접어들면서는 "내년 봄에는 보드 사야지"로 바뀌었고 결국 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사달라고 질렀다. 선물받은 보드는 생각보다 크고 무겁고 또 생각보다 튼튼하고 예뻤고, 아직 타는 건 무섭고 긴장되지만 언젠가는 능숙하게 타고 다닐 수 있을거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따뜻한 날에는 본격적으로 연습해야지. 연습 장소도 물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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