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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7.11.28.

은유니 2017.11.28 18:31


1.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전에는 뭐 똑같지, 라거나 그냥그냥 지내,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최근엔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해"라는 대답을 찾곤 종종 그렇게 답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 조용한 나날들이지만 내 마음을 챙기고 즐거우려 노력한다.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들이 있다. 잠들지 못해 뜬눈으로 뒤척이며 밝아오는 새벽을 맞고, 속이 안좋아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일도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텅빈 상태가 못견디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즐겁게 지내려 노력해. 노력하다보면 또 괜찮아질 때가 있으니까. 행복하다, 행복하네, 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때도 오니까. 오늘은, 지금은 잘 안되더라도 또 다음은, 내일은 즐겁게 지내자.


2.

쉬는 동안에는 쉼없이 영화를 보러 다녔다. 혼자 보러 다녀온 영화 세편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 기록해본다. 서로 다른 배경의 서로 다른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상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닮았다. 


<몬스터콜>

암투병으로 생명이 스러가는 엄마, 그 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무너져 내리는 악몽을 쉼없이 반복하는 아이 코너. 그리고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몬스터는 이젠 네번째, 너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코너를 몰아세운다. 코너는 엄마를 구해달라고, 차라리 자신을 벌해달라고 소리치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심을 토해내듯 말한다. "그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실은 "엄마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너무 힘들어서 그냥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용기 있는 너는 아마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나는 너희 엄마가 아니라 널 구하러 온거야"라는 몬스터와 "혼을 내서 무엇하겠니"라는 어른들 사이에서 코너는 달아나고 싶은 진심과 마주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을 오롯이 안고 살아갈테다.


<다시 태어내도 우리>

인도 라다크에서 아이로 다시 태어난 티베트 고승 '린포체' 앙뚜와 그를 모시는 노승 우르간의 이야기. 서로를 스승으로 모시며 친구로,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는 아이와 노인의 천진난만하고 따뜻한 눈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렸다.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서 가닿지 못하는 티베트 땅을 향해 나팔을 불던 아이의 시린 손과, 3000km의 긴 여정으로 굳은 아이의 발을 따스하게 매만지던 노인의 손길이나, 이미 녹아 없어진 눈을 뭉쳐 허공에 대고 눈싸움을 하던 두 사람의 마지막 울음이 가만가만 맘에 남았다.


"우리 함께여서 참 행복했어요" "그럼 제가 계속 모셔야겠네요"

"린포체가 돌아오면 저는 늙어서 다시 아이가 돼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땐 제가 스승님을 모실게요"


두사람은 다시 만날까. 다시 만나서 또 함께 남은 삶의 여정을 같이할까. 카메라에 아직 담기지 않은 몇년 뒤의 두 사람을 너무도 만나고 싶어서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관엔 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았는데, 나도 훌쩍훌쩍 울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참을 흐느끼며 일어나지 못하시는 분들도 몇 있어서 깜짝 놀랐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신 것일지, 어쩐지 나로선 잘 알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땐뽀걸즈>

조선사업이 쇠락해가는 거제를 배경으로, '땐스 스뽀츠'를 배우는 거제여상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거제라는 지방 도시에 불어닥친 경제적 어려움 속 아이들이 겪고 있는 각자의 삶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나이대 아이들의 지닌 고민과 즐거움과 또 나약함과 강인함을 꾸미지 않은 그모습 그대로 오롯이 담아내주어서 고마웠던 영화.


여러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가장 좋았던 건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시종일관 따뜻하고 다정했고,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웃는 장면이 많이 담겼다는 점이다. 힘들어서 울고 싸우다가도 춤출 때만큼은 자신만만하게 웃음짓는 너희들은 진짜 반짝반짝 빛난다. 영화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맘 한켠이 시큰하고 눈물이 났는데, 나만 그랬던 게 아니더라. 그냥 내가 학교다닐 때 친구들 얼굴도 자꾸만 자꾸만 떠오르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너네들이랑 보낸 시간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


3.

끔찍하고 참담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난 회사다닐 때 회식자리에서 선배한테 "너는 왜 술자리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하냐. 좀 풀어져도 되지 않겠냐. 완전히 취할 정도로 마시기는 하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리 오조억번 들었고, 그때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선생님이 "미혜씨 혼자 여자인 자리에서, 친하지 않은 남자 선배들만 가득한 자리에서, 어떻게 '풀어져라'는 소리를 할 수 있냐"고 화를 내시자 그때서야 그렇구나 화를 낼 수도 있는 말이구나 했다. 직업적으로 당연히 선배 말처럼 그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술자리라는 게 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운 좋게도 강권없는 대학문화를 지냈고, 여성주의를 적극적으로 배우진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히는 공간을 살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공간과 그걸 부정하는 공간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우연히 살아남았다. 눈을 뜨니 모르는 남자가 내 바지를 벗기고 있던 장면이나, 뭔가 이상해 잠에 깨니 어둠속에서 내 엉덩이에 무언가 닿아 있던 장면이나, 퇴근길 집앞 현관까지 쫓아오던 남자의 웃는 얼굴이나, 그런 '사소한' 걸들조차 나는 영영 잊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퇴사한 이후로 지금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벌써 삼개월이 지났다.


4.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을 6년만에 학교에서 다시 듣는다. 다가오는 의미도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5.

도쿄여행을 다녀왔다. 겨우 여행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도 준비하는 동안 한참을 '그냥 가지말까'하며 스트레스받기도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대했던 것만큼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2박3일간의 일정을 보내고 왔다. 애인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신이 우리의 여행을 응원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여러가지 운이 겹쳤다. 찾아보던 항공권보다 훨씬 싼 알짜 항공권 취소표가 우연히 풀렸고, 11월 중 마침 우리 여행일정이 있는 3일간만 예약이 비어 있던 코타츠 있는 일본 다다미방을 구했으며, 오르내리던 엔화 환율은 1000원 이하로 떨어졌다. 즐거울거니까, 걱정말고 다녀와!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것처럼.


도쿄타워에서 내려다 본 일본의 야경, 선물처럼 펼쳐진 늦가을 쨍한 햇살 속 우에노 공원에서의 여유, '신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경외감으로 가득했던 메이지 신궁. 이것저것 찾아보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들렀던 이름모를 식당들의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던 식사들이나, 편의점에서 사먹은 투명한 밀크티&레몬티의 신기함, 마지막 500엔 동전털이를 한 것치곤 눈이 번쩍 뜨일만큼 맛있었던 간식들까지. 소소하고 즐거운 기억들로 한껏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잔뜩 사진을 찍고, 잔뜩 웃고 놀았어.


다음엔 또 어디를 갈까? 너와 함께 경험하고 싶은 일들이 여전히 많다. 자연스럽게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한다. 네가 없는 미래를 이제는 상상할 수가 없어. 사랑받고 사랑하는 나날들, 어느덧 1200일이 훌쩍 지났다.


6.

꿈에 당신이 나왔다. 당신이 꿈에 나온 건 몇년만이었다. 아니 사실은 5년 전 그때도 지금도 어쩐지 나는 꿈 속에서조차 당신을 만날 수가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당신을 기다렸지만, 끝내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어. "미안해"도 아니라 "글쎄 왜일까"라고 하더라. 나는 기다렸는데. 당신과 만나기로 한 그곳에서 하염없이 당신을 기다렸는데. 당신은 나타나지 않고, 얼굴도 비추지 않고, 그저 목소리로만 "글쎄 왜일까"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는 꿈 속에서조차 당신에게 화내지도 못하고 "그렇구나"하고 말았어. 뒤늦게서야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


지난 5년 동안 내가 자라지 못한 것만 같아서. 여전히 열아홉의 나와 마주하는 것을 지독하게도 두려워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당신이, 내가, 여전히 불행하고 우울해서 그만두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만 같아서. 왜 나는 꿈속에서조차 혼자여야 했는지. 왜 당신은 꿈속에서조차 그때와 변한 게 없는지. 나 없이 온전해졌어야 하는 당신의 삶은 왜 어린 나의 굳건함에 기대고 있는지. 꿈일 뿐인데, 왜 나는 또 이렇게 쉽게 무너져버리고야 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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