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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ee:/Diary―

2017.10.16.

은유니 2017.10.16 16:55



1.

가만히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기 좋은 계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하늘이 아름다운 시월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서 어디든 산책 나가기 좋아, 무작정 걷고 싶어진다. 엇그제는 선유도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고 애인님과 함께 캐치볼을 하고 돌아왔다. 공놀이에는 재주가 없지만 잘못 던져서 공이 빠져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쳐도, 즐거우니까 좋다. 가볍게 땀이 나고 한껏 불어온 바람은 기분 좋게 흩날려서 지금의 시간을 쭉 늘여놓고 싶어져. 어제도 손을 맞잡고 도림천 산책로를 걸었다. 행복으로 충만한 주말. 내 일상에 당신이 있어 좋다.


2.

6주간 이어졌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상담이 끝났다. 찾아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먼 길을 돌고돌며 방황하면서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주어진 그 시간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상담 기간 선생님이 내게 제일 많이 해준 말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였는데, 정말 부끄럽게도 그렇게 말해주실 때마다 매번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그렇구나 그렇게 힘들었구나 하고 인정을 얻는 것에 위로가 됐다. 남들은 다 잘해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별거 아닌 일인데 왜 나는 그걸 털어내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간직해야 했던 걸까. 잘못된 선택에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자기비판과 자기검열같은 생각들을 거치지 않고 그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에 감사했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잘 지나왔네, 대견하고 장하다,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그런 말들.


나는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고 성공에 대한 야망은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신중하며 완벽주의적이라서, 그러면서 남들보다 무능감이 높아서, 그 모든 상황 상황들이 내게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나는 그냥 '그런 나'라서 힘들어도 견디어 해내야만 했고(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그런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매번 힘들고 쉽게 지쳤더라. 선생님은 내게 이런 기질과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거라서, 그런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어.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지 않고, 나 또 이러네 하고 한템포 쉬어갈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마지막 상담 때 "이젠 미혜씨가 잘못했던 거 말고 잘한 거에 대해서 생각해요, 어떤게 있어요"라고 물으셔서 아무거나 툭툭 던졌는데, 선생님께서 자꾸만 "대단하다. 강단도 있고, 결의도 가지고 있고, 멋있는 사람이네"라고 말해주셔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속으로는 에이 그런가 하면서도 괜히 어깨가 쭉 펴지고 힘이 들어가는 게 재밌기도 했어. 선생님은 역시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잘 지내보라고 하셨다. 언젠가 우연이 있으면 또 보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다른 상담소를 찾아가 보라고. 그래도 역시, 잘 지내길 바란다고.


괜찮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고,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을테지만. 그래도 그동안 많이 힘들고 많이 울었으니까 이젠 힘들지 않고 싶다. 울지 않고 마음 편히 살고 싶어.


3.

생각해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힘들 때마다 안아주는 애인도 있고, 같이 화내고 울어주는 친구도 있고. 내 결정에 반대하거나 무작정 충고하고 혼내기보다는 그간의 나를 잘 알기에 그렇게 하라, 너라면 잘해내겠지,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아비어미도 있고. 너는 아직 어리고,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많이 생각하고 쉬어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라고 해도 너랑 안맞으면 꼭 안해도 되는 거고 네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이들도 있다.


요즘은 내가 뭘 할때 즐거운지, 그리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그것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해주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다른 무엇도 아닌 내게 의미있고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잡아가야지. 이를테면 같이 밥을 먹고, 저녁놀을 배경으로 짧은 산책을 하고, 우스갯거리를 주고받으며 별거 아닌 말에 함께 웃는 것.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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